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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책이 시키는 대로 사는 어떤 인생

  • 글: 조유식 인터넷서점 알라딘 대표 sindbad@aladdin.co.kr

책이 시키는 대로 사는 어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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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시키는 대로 사는 어떤 인생
나는 사람의 말보다 책과 글에 더 혹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덕 본 것도 있고 손해 본 것도 있다. 책은 다분히 이상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이다. 그래서 책이 하라는 대로 하다 보면 사람도 그런 방향으로 가서, 갈 데까지 가보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책과 접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다. 우리 집 근처 을지로 4가에 ‘장안서림’이라는 한 30평짜리 서점이 있었는데, 한두 달에 한번씩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3남매의 손을 잡고 이 서점에 들러 1인당 몇 권씩 책을 사주셨다. 요즘 성인용으로 정식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괴도 뤼팽’ ‘셜록 홈스’ 그리고 ‘암굴왕’ ‘전쟁과 평화’ 등의 ‘동화판’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3학년 때 학교에서 ‘전국고전경시대회’라는 걸 했다.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것인데, 학교에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가 표지에 나와 있는 녹색 책을 단체구입해 나눠줬다. 제목은 ‘신유복 전’. 신유복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고려 아니면 조선시대 이야기인데, 외적이 침입해서 나라가 어려울 때 그가 나서서 싸워 나라를 구하고 죽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걸 읽고 내가 쓴 독후감의 결론은 ‘신유복이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고 명예를 떨쳤지만 죽고 나니 무슨 소용인가. 인생은 허무하다’였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인생무상을 느꼈으니 스스로 대견하여 어머니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독후감을 다 읽으신 어머니는 “쪼끄만 게 벌써부터 인생무상?” 하시면서 칭찬 대신 야단을 심하게 치셨던 것 같다.

말보다 책과 글에 혹하다

‘동화판’을 제외하고 어른들이 읽는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테스’였다. 내게 사춘기는 이 책과 함께 왔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슬픈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한 채 산 송장으로 멍하니 지냈다.

중3 때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등 묵직한 인간문제를 천착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심오한 인간정신의 고투와 웅대한 지적 스케일에 매료됐다. 이 시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읽었는데, 주제와 형식의 색다름에 매혹돼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카뮈, 키에르케고르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휴머니즘과 반항정신에 깊숙이 끌렸던 고교시절이 지나자 질풍노도의 1980년대 대학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중고교 시절의 독서로 다듬어진 순수이성의 숲에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그대로 한 점 불꽃이 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기록해 등사본으로 몰래 돌려보던 이 책엔 수천명의 양민을 학살한 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써 있었다. 민중과 함께 그런 자들을 벌 주라는 실천이성의 명령에 쌍수를 들고 순종하며 보낸 것이 대학 1학년 때부터 훌쩍 십여 년. 그 사이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다 같은 책이었다.

십여 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 다음 책 한 권을 들었는데, ‘논어’였다. 내가 받아 안은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수기안인(修己安人)’, 즉 나를 다스려 남을 편안케 하라, 또는 남을 변하게 하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수년간은 ‘논어’와 관련된 책만 읽었다. ‘논어’와 논어 해설서를 비롯, 논어를 혁신 이데올로기로 삼아 현실에 구현하고자 했던 우리나라와 중국의 제왕들, 정치가들의 저서와 그들에 관한 역사서, 현대사회에서 논어의 합리적 핵심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책들….

그러다 어느날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사업을 하면서도 책은 나와 불가분이었다. 사업 아이템 자체가 책을 파는 인터넷서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넷 비즈니스 중에서도 인터넷서점을 택한 이유는 책이 좋아서였다. 잘 만든 인터넷서점은 훌륭한 문화 인프라로서 수많은 도서관보다도 더 큰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리라는 비전이 나를 흥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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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유식 인터넷서점 알라딘 대표 sindbad@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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