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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문화이야기

“역사는 운명도, 관념도 아니다”

최초의 사회과학자 몽테스키외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역사는 운명도, 관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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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권 분립의 주창자로 추앙받는 계몽주의의 거두 몽테스키외.
  • 그러나 그의 사상이 빛나는 건 그 속에 자유에의 천착과 날 선 현실인식,과학적 사회 분석의 첫 시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법의 정신’을 통해 그를 만난다.
“역사는 운명도, 관념도 아니다”
‘계몽’이란 어둠을 밝힌다는 것이다. 대구지하철 사고를 보며 나는 아직 우리에겐 계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하에 갇힌 이들에게 유일한 출구라도 알려줄 ‘안전한 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지금, 계몽이란 말은 낡고 촌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광수나 최남선의 글들, 특히 심훈의 ‘상록수’를 연상케 한다. 아무리 가까이 끌고 와도 새마을운동의 요란한 스피커 노랫소리나 조국근대화와 유신이라는 구호 또는 국민교육헌장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그런 계몽의 분위기는 사라졌다. 근대화 대신 민주화란 구호가 등장했다.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대통령 직선제’가 사라졌기에 그를 다시 쟁취하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1980년대 후반 그것이 쟁취되자 우리는 자가용과 지하철의 양분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가용은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로 요란스레 장식되었다. 지하는 아직도 어두운데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과연 역사로서의 계몽이 있었던가? 1789년의 대혁명에 준하는 계몽이 있었던가? 누군가는 조선시대의 저 실학으로부터 우리 계몽의 역사를 찾는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조선의 지배 이념이던 유교의 한 갈래,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르네상스’라는 말처럼 ‘계몽’이란 단어도 이미 일반명사가 되었으나 ‘르네상스’처럼 화려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호텔은 물론 선술집 이름에도 계몽이란 것은 없다. 있다면 오히려 술맛을 해치겠지만. 내가 아는 한 계몽이란 오직 한 출판사의 이름으로 쓰였을 뿐인데, 이 역시 지금은 사라졌다.

사실 계몽은 르네상스보다 우리 시대에 더 가까우나,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된 느낌을 준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야단스러운 시대에 모더니즘도 아닌 하물며 계몽이랴.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나는 참여정부의 ‘참여’란 말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 하나, 내가 참여임을 확인한 것은 대통령직인수위가 아닌 법원에서 발표한 시민의 사법참여, 재판참여에 대한 것이었다. 즉 배심제와 참심제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비롯해 1215년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로 확정된 뒤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유럽 국가의 관료재판 개혁을 위해 요구된 계몽시대, 그러니까 1789년 대혁명 후 프랑스에서 채택됐다. 그 후 세계 각국은 배심제나 참심제를 채택해 시민의 재판 참여를 인정했으나,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채택되지 못했다.

계몽시대였던 1764년, 베카리아는 배심제 도입을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배심제를 찬양한 볼테르는 “프랑스의 형사법전은 시민을 파멸시키고자 하나, 영국의 그것은 시민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많은 계몽주의자들이 그런 주장을 폈다.

나는 볼테르처럼 배심제가 없는 지금 우리 법제도가 ‘시민을 파멸시킨다’고까지 비판할 용기는 없다. 그러나 관료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법 제도는 춘향이를 단죄한 ‘사또재판’에 다름아니다.

우리 법원의 배심제 또는 참심제 채택 모색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다음 하나만큼은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같은 재판 체제에서는 배심제든 참심제든 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재판이 판검사의 격무와 권위주의 및 변호사 채택의 곤란 등으로 인해 신중한 증거재판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을 재판에 참여시킨다면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 나오는 식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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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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