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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봄에 피는 꽃

  • 글: 이오덕 아동문학가

봄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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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 꽃
버들강아지

봄에 피는 꽃이 세상에서 그 누가 봄을 가장 애타게 기다렸던가? 그것은 겨우내 얼어붙은 냇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떨던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그 벌판의 얼음 위에서 썰매 타기로 날을 보내던 아이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겨울, 그때는 요즘보다 더 추웠을 텐데, 우리는 내복이란 것을 몰랐고, 양말조차 변변히 신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 아니면 날마다 얼음 덮인 시내와 논으로 못으로 달려가 썰매를 탔다.

그 썰매는 시게또라 했다. 마을의 아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시게또를 만들어 놓는다. 재료는 담배 창고 짓는 공사장 같은 데서 주워 놓은 판자 조각과 철사와 못이었다. 늦가을, 솔괭이(관솔 옹이)를 잘라 팽이를 다듬던 톱과 낫으로 시게또를 만들어 놓고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겨울날 얼음이 꽁꽁 언 마을 앞 무논이나 거랑(내)에는 언제나 아이들로 들끓었다. 그 얼음판에서는 누구 시게또가 일등으로 빨리 가나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만 사고가 났다. 저쪽에서 오는 아이와 내가 아주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죽었구나 싶었다. 머리가 아주 박살이 나 버린 듯했다. 겨우 정신이 돌아와서 이마에 손을 대어보니 굵은 밤알만한 혹이 무섭게 만져졌다. 그런데 나하고 부딪친 아이와 그 패거리들이 나를 둘러싸고 마구 몰아세웠다. 두 아이가 서로 부딪쳤으면 얼음판에 무슨 교통규칙이란 것도 없었으니 앞을 안 보고 달린 두 아이가 모두 잘못했을 터인데, 그 아이들은 내게 욕설을 퍼부었던 것이다. 장터 아이들은 본래 그랬다.

시게또 타기는, 거랑이나 무논보다 좀 멀지만 못이 더 넓어 좋았다. 추위가 한풀 꺾여서 얼음이 못가에서 조금씩 녹기 시작했는데도 우리는 아침부터 시게또를 옆구리에 끼고 산골짝 못으로 달려갔다. 시게또에 앉아서 송곳으로 얼음을 찔러 쫙 나가면서 신나게 돌아다니는데, 어느 곳을 지나니 그 넓은 얼음장이 금이 가서 배처럼 움직이는가 싶더니 조금 스르르 내려앉는다. 우리는 그게 도리어 재미있다고 되돌아서 또 그곳을 지나오고 했다.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했나 싶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해서 추운 겨울을 얼음판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냇가 모래밭 한쪽이나 방천둑 밑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버들강아지다. 아직도 찬바람이 귀를 에는 벌판에서 아이들 무릎 높이로, 더러는 키 높이로 자라난 갯버들 가지마다 눈부시게 보송보송 피어난 귀여운 버들강아지들! 모진 추위를 이겨낸 겨울 아기들!

“야아, 버들강아지다!” “어디, 어디?” “이것 봐, 벌써 나왔어.” “정말! 얘들아, 버들강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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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오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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