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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화려한 외출?

  • 글: 남윤인순(여성연합 사무총장)

봄날의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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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화려한 외출?
파릇한 기운이 비온 뒤에 더욱 완연하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 속에서도 도도한 봄기운은 어김없이 두꺼운 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봄기운을 이렇게 느껴본 것도 정말 얼마 만인지.

안식휴가를 얻어 모처럼 주변의 사물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여성단체다. 올해로 만 10년째 일하면서 두 달간 안식휴가를 받았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를 대변하고 해결해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밤낮없이 일해왔다. 그러다 보니 변변한 취미생활도 없고, 하나뿐인 딸아이와도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남편은 환경연합에서 일하느라 똑같이 바쁘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쉬면서 맨 처음 한 일은 고등학교 2학년인 딸과 시간 보내기였다. 비오는 날 마중도 가고, 학교가 끝나고 나면 영화구경 시장구경도 다니고…. 딸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쏟아냈다. 친구 이야기, 학교 이야기, 먹고 싶은 음식 등. 그동안 엄마를 가져보지 못한 결핍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콧등이 시큰거렸다.

다른 미래를 꿈꾸는 엄마와 딸

여성운동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딸을 생각하곤 했다. 딸이 성장해서 차별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막상 딸에게는 엄마로서 소홀하지 않았나 하고 반성했다.

딸아이와 대화하면서 미래의 꿈을 물어보았다. 구체적인 꿈은 없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을 가려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기자 또는 교사가 꿈이라고 했는데, 이젠 ‘돈벌기’라고 이야기하는 딸을 보며 깜짝 놀랐다.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했다. 여성운동하는 엄마와 그 딸은 서로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할말을 잃고 말았다. 비록 허황된 꿈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년 사이 우리 사회가 정말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인터넷 쇼핑몰이 생기면서 딸아이는 이런저런 구매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선 공동구매를 통해 물건을 팔고 사기도 한다. 물론 공동구매는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다른 구매자가 활용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딸아이는 매일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매정보를 얻어 엄마한테 이야기를 한다.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돈이 없어 못 사니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이다. 정말 물질만능사회가 가까이 와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또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딸의 미래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빈부격차, 즉 20대 80의 사회로 굳어지면서 20%에 들어가지 못한 대다수 사람은 좌절감에 빠져 있다. 20%에 속하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이미 딸아이는 그러한 경계선을 느끼고 있고 공부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어 20%에 속하고 싶어한다. 엄마는 평등사회, 나눔사회, 참여사회, 녹색사회를 외치며 여성운동을 하고 있지만 딸아이는 너무나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이미 교육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지 인성과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님이 분명하다. 모처럼 얻은 안식휴가를 화려하게 보낼 생각이었지만 나는 여성운동 현장을 잠깐 떠나 있으면서 운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를 거부할 강력한 대안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전의 고민이 더욱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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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윤인순(여성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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