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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빼앗긴 들에 찾아온 봄의 향기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빼앗긴 들에 찾아온 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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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욱은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풋풋한 향내 가득한 아욱은 나른한 봄철 사라진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여름철 영양식품으로도 훌륭하다.
  • 단백질과 지방, 칼슘이 시금치에 비해 두 배 이상 들어 있을 정도로 영양가가 높기 때문이다.
  • 아욱국에 쌀을 넣어 끓인 아욱죽은 별미 중의 별미다.
빼앗긴 들에 찾아온 봄의 향기
“처음은 어둠 같다. 문학의 길 44년이 이다지도 벅찬 것인 줄 알 까닭이 없었다.”

2002년 10월, 고은(69) 시인이 평생 토해낸 시와 산문, 자전소설, 기행, 그리고 평론과 연구의 결과물을 한데 엮어 ‘전집’(38권)으로 펴내면서 그 첫머리에 적은 소회다.

그에게는 미치도록 힘든 세월이었다. 고은은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해 승려생활 10년간 참선과 방황의 세월을 보내다 1962년 환속한 후에는 또 10년 동안 술과 ‘울음’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나의 시가 걸어온 길’이라는 글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옛날에는 눈물이 쓸데없이 많았습니다. 5월인가 6월쯤 등꽃이 필 무렵 문학을 하는 친구의 하숙집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등꽃이 흐드러지게 마당에 피어 있고 확 달빛이 쏟아졌습니다. 그 달빛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울었어요.…이런 울음이 나한테는 오랫동안 있었어요. 울음이 10년씩 가다가 그 다음에는 불면증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껄껄껄 웃으면서 얘기하곤 하는데, 전에는 전혀 이런 걸 용납하지 못했어요. 웃음은 위선자 아니면 생을 거짓으로 살고 있는 자들의 소유물이고,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웃고 하는 것은 속물들이나 하는 짓거리로 여겨져 이해를 안 했어요. 불면증이 10년이나 갔어요. 잠이 안 오니까 밤 12시쯤 되면 막소주를 김치를 안주 삼아 마시곤 했지요.”

1960년대 초반 고은은 제주도에서 3년 정도 살았다. 살러 간 게 아니라 바다에 빠져 죽으러 갔다가 잠시 머물렀던 것이다. 하지만 죽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술에 취해 살았다.

고은은 그때의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폐허의 자식’.

그런 그의 깊은 허무를 깨뜨린 사건이 바로 1970년 벽두에 터진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다. 한 노동자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펴내면서 재야운동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올해 1월, 23년 만에 비로소 무죄를 선고받아 법률적 명예를 회복했다.

1983년 감방에서 갓 출소한 그가 터를 잡은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안성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책 속에 파묻혀 글과 함께 산 지 만 20년째. 절친한 친구인 이문영 고대 교수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간 술독에 빠져 죽을 것 같아서 데리고 내려온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가끔 옛날을 생각하며 ‘아욱죽’을 끓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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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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