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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분디나무와 초피나무

  • 글: 이오덕 아동문학가

분디나무와 초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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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디나무와 초피나무
우리 마을에 지난해 농사를 짓기로 작정하고 이사 온 집이 한 집 있다. 그 집 아주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서울 근처에 살 때 등산을 좋아해서 남한산성에 자주 갔는데, 한번은 산길을 올라가다가 같이 가던 한 사람이 어떤 나무를 가리키면서 저것이 산초나무라고 하더란다. 귀한 양념이 되는 초피 열매를 맺는 산초나무가 바로 이것이구나 싶어 그 뒤로 산에 올라갈 때마다 그 나무만 찾아다니면서 열매를 따 모았고, 그 열매 따는 재미로도 산에 자주 오르게 되었다. 따 모은 열매가 몇 되나 되었다.

그런데 양념을 만드는 방법도 몰랐고, 열매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옳지, 고향 어머니께 갖다드리면 귀한 선물이 되겠구나’싶어 거창에 계시는 친정어머니께 갖다드렸더니, 어디서 이렇게 많이 따 모았느냐면서 좋아하셨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양념으로 먹기보다 시장에서 팔면 돈이 되겠다 싶어 장날에 시장에 가지고 갔다. 장바닥에 펴 놓고 이것이 초피라고 했더니 사람마다 귀한 것을 본다면서 구경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몽땅 다 사갔다. 그래서 돈을 벌게 해준 딸에게 고맙다고 전화로 알려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을 근처 산에 흔하게 있는 분디나무를 보고 그 아주머니가, 여기도 귀한 양념이 되는 열매가 달리는 산초나무가 있다고 좋아하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한테, 이 나무는 초피나무가 아니고, 기름을 짜는 분디라는 열매를 맺는 분디나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게 틀림없이 남한산성에서 열매를 딴 나문데…” 했다. “아주머니 말이 맞아요. 남한산성에서 땄다면 이 나무와 같은 나무란 것이 확실하지요. 그런데 이 나무 열매는 양념이 안 됩니다. 옛날에는 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켰어요. 기름 짜는 열매를 맺는 분디나무와 양념감이 되는 열매를 맺는 초피나무는 아주 비슷해서 잘 알아낼 수 없어요.” “그럼 산초나무는 어떤 나문가요?” “그건 잘못 쓰는 한자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분디나무와 초피나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자세히 말해주었더니 그때야 아주 크게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분디를 초피로 알고 그렇게 열심히 따 모으고, 그걸 귀한 선물이라고 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그 어머니조차 그런 줄 알고 장에 가서 팔고, 그것을 산 사람도 초피로 알고 비싼 돈을 주고 사가서 양념 재료로 더 좋은 값을 요릿집 같은 데서 받으려고 했구나 싶어, 한동안 멍하니 말이 없었다.

대관절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 까닭은 분디나무와 초피나무가 아주 비슷해서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두 나무를 우리말 그대로 말하지 않고 그만 산초(山椒)라는 한자말 한 가지만 써서 똑같이 산초나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못된 한자말을 쓰기 때문에 우리가 사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올바른 표현도 할 수 없게 되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마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필 이런 나무 이름뿐 아니다. 풀 이름, 곡식 이름들이 그렇고, 사람이 먹고 입고 자고 일하는 모든 행동을 나타내는 온갖 풍성한 우리말들이 한자말에 잡아먹히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혼란, 잘못된 앎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 온갖 학문의 이론, 말로 빚어내는 예술이라는 문학이 우리말이 될 수 없는 한자말을 뼈대로 해서 이뤄져 있다면 이보다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나무 이야기를 이어 보겠다. 이것은 보통으로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만 이렇게 두 나무를 혼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을 연구한다는 사람들,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분디나무와 초피나무와 산초라고 되어 있는 나무를 사전에서 어떻게 말해놓았는가 싶어, 온갖 우리말 사전을 있는 대로 다 찾아보았고, 백과사전과 식물도감도 있는 대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전마다 설명해놓은 말이 달랐다. 공통되는 것은 ‘산초’라는 한자말 나무 이름이 표준으로 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어떤 사전에는 분디나무를 산초나무라 했고, 어떤 사전에는 초피나무를 산초나무라 했다. 그리고 초피나무와 분디나무를 잘 구별할 수 있도록 요령 있게 설명해놓은 사전은 보지 못했다. 북녘에서 낸 사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여기서 분디나무와 초피나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해보겠다. 이것은 내가 책을 읽어서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산에서 보고 그 열매를 딴 삶에서 알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나무 이름인데, 내 고향 경북 청송에서는 분디(또는 분지)나무를 난디나무라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을에 농사일을 대강 마치고 추수를 할 때까지 잠시 틈을 내어 모두 산에 올라가서 꿀밤(도토리)을 땄는데, 꿀밤을 따러 이 산 저 산 다니다가 난디나무를 만나면 난디도 함께 땄다. 난디가 잘 익어서 그 껍질이 갈라지면 윤기 나는 새까만 열매가 진한 향기를 뿜는데, 그걸 따 모은다. 난디는 기름을 짜서 등잔불을 켰다. 접시에 담아서 거기다가 문종이로 심지를 만들어 담가서 당황(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온방이 환하게 밝았다. 석유가 들어오기 전에는 거의 모든 집에서 이 난디 기름으로 등잔불을 켰고, 석유가 들어온 뒤에도 석유 호롱불과 함께 오랫동안 이 난디 기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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