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초대에세이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 글: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1/2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인간은 참으로 별난 동물이다. 생물이라면 모름지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건만 우리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필요 이상으로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산아제한을 하고 있다. 현대생물학 용어로 설명하면 생물의 존재 이유는 무생물과 달리 자신의 DNA를 좀더 많이 전파하기 위함이거늘 인간은 그 기본마저 거역하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생물이기를 거부하는 셈이다.

요사이 이같은 현상이 가장 극렬히 나타나는 곳이 놀랍게도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치켜들고 정부 주도로 거의 강제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졸지에 출산율 세계 최저국가가 되었다. 여권신장을 부르짖는 여성들의 출산 거부가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를 능력이 없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는 부부간 합의가 더욱 큰 이유다. 보육시설 확보와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출산율을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출산과 관련해 인간의 별난 특성이 또 하나 있다. 다른 생물들에게는 생식 능력의 마감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데 비해 인간은 번식기가 지나서도 상당 기간 생명을 유지하는 참으로 별난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별났던 것은 아닌 듯싶다. 화석 자료에 따르면 석기시대 인간의 평균수명은 50년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50세란 바로 여성들이 ‘완경’(흔히 ‘폐경기’라 부른다)을 경험하는 시기다. 그 당시에는 우리 인간도 생식 능력을 잃으면 곧바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석기시대 이후 인간의 평균수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완경 시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완경은 건강 상태나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숫자의 난자를 가지고 있다. 약 200만 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 중 약 40만개가 선택되고 나머지는 제거된다.

이 40만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약 35년 동안 4주마다 한 개씩 난자를 배란한다.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게 되었으니 40만개의 난모세포를 좀 아껴 오랫동안 배란을 해도 괜찮을 듯 싶건만 예나 지금이나 완경 시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다. 지금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안팎으로 선진국들의 평균 고령인구 비율인 14.4%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2019년에는 그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전환하는 데 19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40∼115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참으로 놀라운 속도다. 또 2026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이른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출산율이 지금의 3분의 1에 머물거나 그 이하로 떨어지면 고령사회 진입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겪어야 할 많은 문제 중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5∼20년 내에 벌어질 일이다. 징후들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걱정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하루 빨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마를 맞대고 깊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대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영국정부는 최근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년을 앞당기던 정책을 완전히 거꾸로 되돌리는 방안이다.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위기에 처한 연금제도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노조의 격렬한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년 시기를 앞뒤로 조금씩 조정하는 식의 소극적인 정책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대단히 복합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고령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왔다. 생물학자가 걱정할 문제인가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고령화 문제야말로 지극히 생물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번식을 멈춘 후에도 계속 삶을 영위하는 별난 동물의 별난 고민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 어느 생물도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진화 현상이다. 번식도 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언뜻 자연법칙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1/2
글: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목록 닫기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