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 글: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입력2003-05-27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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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인간은 참으로 별난 동물이다. 생물이라면 모름지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건만 우리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필요 이상으로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산아제한을 하고 있다. 현대생물학 용어로 설명하면 생물의 존재 이유는 무생물과 달리 자신의 DNA를 좀더 많이 전파하기 위함이거늘 인간은 그 기본마저 거역하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생물이기를 거부하는 셈이다.

    요사이 이같은 현상이 가장 극렬히 나타나는 곳이 놀랍게도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치켜들고 정부 주도로 거의 강제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졸지에 출산율 세계 최저국가가 되었다. 여권신장을 부르짖는 여성들의 출산 거부가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를 능력이 없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는 부부간 합의가 더욱 큰 이유다. 보육시설 확보와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출산율을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출산과 관련해 인간의 별난 특성이 또 하나 있다. 다른 생물들에게는 생식 능력의 마감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데 비해 인간은 번식기가 지나서도 상당 기간 생명을 유지하는 참으로 별난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별났던 것은 아닌 듯싶다. 화석 자료에 따르면 석기시대 인간의 평균수명은 50년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50세란 바로 여성들이 ‘완경’(흔히 ‘폐경기’라 부른다)을 경험하는 시기다. 그 당시에는 우리 인간도 생식 능력을 잃으면 곧바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석기시대 이후 인간의 평균수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완경 시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완경은 건강 상태나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숫자의 난자를 가지고 있다. 약 200만 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 중 약 40만개가 선택되고 나머지는 제거된다.

    이 40만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약 35년 동안 4주마다 한 개씩 난자를 배란한다.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게 되었으니 40만개의 난모세포를 좀 아껴 오랫동안 배란을 해도 괜찮을 듯 싶건만 예나 지금이나 완경 시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다. 지금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안팎으로 선진국들의 평균 고령인구 비율인 14.4%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2019년에는 그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전환하는 데 19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40∼115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참으로 놀라운 속도다. 또 2026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이른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출산율이 지금의 3분의 1에 머물거나 그 이하로 떨어지면 고령사회 진입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겪어야 할 많은 문제 중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5∼20년 내에 벌어질 일이다. 징후들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걱정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하루 빨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마를 맞대고 깊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대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영국정부는 최근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년을 앞당기던 정책을 완전히 거꾸로 되돌리는 방안이다.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위기에 처한 연금제도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노조의 격렬한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년 시기를 앞뒤로 조금씩 조정하는 식의 소극적인 정책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대단히 복합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고령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왔다. 생물학자가 걱정할 문제인가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고령화 문제야말로 지극히 생물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번식을 멈춘 후에도 계속 삶을 영위하는 별난 동물의 별난 고민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 어느 생물도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진화 현상이다. 번식도 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언뜻 자연법칙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일본 여성들의 소송사태를 빚은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 도쿄 도지사의 망언도 바로 이런 짧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는 “여성이 생식 능력을 잃고도 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지구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일”이라며 “할머니는 문명이 가져온 것 중 가장 유해한 것”이라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이다. 나는 오히려 할머니의 역할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늘 막강했을 뿐 아니라 필수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이란 워낙 여자들보다 수명도 짧고 대부분 전쟁이나 사냥중에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어느 인류 집단이고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은 거의 예외 없이 최고 연장자인 할머니 몫이었을 것이다. 오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족장의 상담역을 했을 것이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임금이 대비나 대왕대비를 알현해 어려운 문제를 의논하고 윤허를 받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은 후번식기를 위해 번식기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동물

    공중위생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인생 육십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이젠 바야흐로 인생 백세가 그리 머잖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명실공히 번식기와 후번식기가 각각 50년씩 거의 비슷해진다. 더구나 인간 유전체의 전모가 밝혀지고 그야말로 ‘노화유전자’라도 발견되면 100세가 문제가 아니라 200세까지도 살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인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한다. 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절대수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기시대에도 드물게나마 120세 정도까지 살았던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120세를 넘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아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져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지 절대수명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과학의 발전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던 걸 생각해본다면 그런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만일 그런 시대가 온다면 후번식기가 정작 번식기보다 훨씬 길어지는 상당히 기형적인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은퇴의 개념은 따지고 보면 “자식들도 다 길렀고 근력도 옛날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개 60세를 전후해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은퇴를 한 다음 살아야 할 기간이 불편할 정도로 길어졌고 평생 건강을 잘 관리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한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무섭게 부는 세대교체 바람으로 은퇴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 “1급 공무원들은 봉사할 만큼 했으니 집에 가서 쉬라”는 요구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조금은 무분별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령화 문제에 다분히 생물학적인 대안을 구상하고 있다. 번식기와 후번식기는 생물학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시기다. 더구나 이젠 둘 중 어느 것이 더 긴지도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오히려 앞으로는 후번식기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번식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후번식기는 덤으로 엉거주춤 따라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후번식기는 더 이상 단순한 잉여 시기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일찍이 그 어느 생물도 겪어보지 못했던 후번식기의 문제를 ‘생각하는 동물’답게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인생 이모작’을 꿈꾸고 있다. 번식기 50년과 후번식기 50년을 똑같이 중요하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나는 늘 동물들의 사회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보면 가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 인류가 지금 만물의 영장으로 이 지구를 호령하고 있지만 다른 동물들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아닌 듯싶다. 우리의 막강한 힘에 눌려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살 집을 부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그들은 때로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가끔은 우리를 일깨우려 적지 않은 규모의 사건을 터뜨리는 친절함도 베풀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비웃는 결정적인 일이 하나 더 있다. 번식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끌끌 혀를 찬다. 이 세상 모든 생물은 죄다 번식기에 최상의 몸 상태와 환경을 유지한다. 자식을 기르는 일이 삶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임을 분명하게 깨닫고 실천에 옮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를 때 우리는 가장 힘겨운 삶을 영위한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절약해야 한다. 먼 훗날을 대비해 당장에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가장 잘 먹고 잘 먹여야 할 시기에 우리는 어처구니없게도 마냥 아끼며 산다. 그리고는 그 중요한 번식기를 다 보내고 난 후에야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잘못 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후번식기를 위해 번식기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후번식기에 이르면 가차없이 퇴장당하고 삶을 접어야 한다. 동물들은 이처럼 어리석은 동물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지 의아해한다. 사회는 자꾸만 늙어가는데 우리는 철없이 젊음만 노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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