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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하나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하나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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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있는 이 무너미 마을은 지금 스무 집쯤 된다. 아침 저녁으로 쳐다보는 해발 640미터의 부용산이 사방으로 밋밋하게 그 산줄기를 문어발처럼 수없이 뻗어 놓아서, 그 산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크고 작은 마을들이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있다. 무너미는 그런 마을 가운데 하나다. 모두 고추 농사와 담배 농사를 하여 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0대에서 80대까지의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들이 예닐곱 분쯤 있어서 농사철이면 모두 밭에 나가서 큰 일꾼 노릇을 했다. 그런데 작금년에 와서는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나버려서 마을에는 일꾼을 얻지 못해 담배 농사고 고추 농사고 많이 줄이게 되었다. 젊은이들이라 해봐야 30대가 둘쯤이고, 거의 모두 50대와 60대지만, 이런 남정네들은 기계로 무엇을 실어 나르거나 한꺼번에 후닥닥 해치우는 일이나 잘할 뿐, 밭고랑에 앉아서 온종일 풀을 뽑거나 고추를 따는 일은 대체로 싫어한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들은 일을 빨리 하지는 못하지만 엎드려서 쉬지 않고 꾸준히 하니 젊은이들보다 더 낫다. 그런 노인네들이 다 없어졌으니 농사일이 순조롭게 될 수 없다.

이 할머니들은 거의 모두 자식들이 없거나 있어도 먼 도시로 가버려 혼자 살았다. 채소고 담배고 고추고, 돈벌이를 하려고 농사를 짓는 집들은 집마다 빚을 산더미처럼 지고 사는데, 이 할머니들은 제 땅 한 평 없이 오두막집에 살아도 빚 없이 지낸다. 농사철에 품을 팔아 그 돈으로 한 해를 사는 것이다. 오히려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가끔 와서 늙은 어머니한테서 돈을 뜯어가는 경우가 예사로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그런 할머니 가운데 한 분의 이야기를 하겠다.

하나 할머니, 이것이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할머니 이름이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성조차 모른다. 하기야 옛날부터 아낙네들은 이름이고 성이고 없었다. 서울서 왔으면 서울댁이고, 전주서 왔으면 전주댁, 경상도 한실 골짜기에서 왔으면 한실댁이라고 했을 뿐이지. 그런데 무슨 댁이 아니고 하나 할머니라고 하게 된 것은, 셋째며느리가 낳아놓은 손녀 하나를 데리고 산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셋째아들이 죽고 나서 아이 엄마가 어디로 가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그 손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 엄마가 나타나 그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할머니 나이가 올해 85세. 지금은 회갑이 다 된 첫째며느리와 단둘이 살고 있다. 지난해까지 농사철이면 날마다 이웃집에 불려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는데, 워낙 나이가 많아서 힘이 들기도 하지만 비슷한 나이의 노인들이 다 떠나버려서 혼자 그렇게 일을 할 수가 없어 올해부터는 들일을 그만두고 서울 사는 막내딸 집에 한참 가 있다가 이곳에 와서 첫째며느리와 한참 지내다가 한다. 다음은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인데, 지난해 우리 집 고추밭을 매면서 우리 아이한테 들려준 것이다(이 마을에서 농약을 안 뿌리고 호미로 김을 매는 집은 우리 집뿐이다).

할머니는 이북 출신이었다. 고향이 평양 근처였는데, 땅을 많이 가진 지주로 일제 시대에도 잘살았던 모양이었다. 해방이 되자 북녘에는 곧 소련군이 들어와서 공산주의 세상이 된다고 해서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오게 되었다. 해방 직후라 아직 38선이 막히지 않아서 누구든지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소 열 몇 마리에 쌀과 귀중품을 싣고 한 식구가 모두 넘어왔는데, 그때 할머니 나이가 열대여섯쯤 되었던 처녀였다. 식구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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