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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18)

18세기 미국 헌법의 힘

국가보다 ‘개인’을, 해방 너머 ‘자유’를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18세기 미국 헌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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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으로 밀어붙이는 집단들 때문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노대통령의 말은 왜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일 수 있나. 민주주의의 핵심은 단체의 사회적 자치와 분권(分權)이기 때문. ‘미국식’보다 ‘프랑스식’에 더 가까운 우리의 민주주의 개념.
  • 그 속에 숨은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18세기 미국 헌법의 힘
지금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반대한다는 사람은 없다. 물론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미국식, 특히 개인주의나 자본주의로 변한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동양식 ‘가족주의적 공동체주의’,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다. 혹자는 복지주의를 주장하거나 가족·직장 등 공동체에 기반한 한국형 복지사회를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노무현 정권이 표방하는 ‘진보적’ 개혁 구상에는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 유학파가 주를 이뤘던 역대 정권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공부하면 진보적이고 미국에서 공부하면 보수적이라는 도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유럽은 진보이고 미국은 보수라는 주장은 더욱 위험하다. 획일적인 도식이 갖는 위험성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를 사회주의적이라 보는 견해 또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소치이거나 그리 비난해 다른 이익을 얻고자 함이다. 직접민주주의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비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

그런데 최근 노대통령은, 여러 단체가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 국가 권위가 흔들리고 있으며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개탄을 했다. 여러 단체가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최근 사태가 과거에 비해 특별히 과도한 것도 아니므로 상식을 가진 이라면 그 말에 상당히 당황했으리라. 역사를 볼 때 어느 나라에서든 개인과 단체의 힘이 강해져 국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민주화의 당연한 과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이후 그런 현상이 민주화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이는 국가·단체·개인이 서로 연관되는 민주주의 논의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인 만큼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단체의 사회적 자치(또는 최근 유행하는 하버마스에 따르면 시민적 공공권)와 분권이라 본다면, 노대통령의 발언은 우리가 누구나 믿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물론 누구도 노대통령이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민주주의라도 시대나 국가에 따라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 ‘유럽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의 차이다.

전자는 루소의 일반의사에 근거한 프랑스 대혁명 이래의 국가주의다. 여기서는 국가를 중심으로 해 그와 직접 대응하는 개인만을 문제삼고 개인이 조직한 단체는 무시한다. 그래서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개인 권리의 보장과 국가 권력의 분립이 없는 사회는 헌법을 갖지 않는다 했으며, 1884년까지 1세기 동안이나 모든 단체의 결성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사실 개인 권리의 보장이란 국가가 인정하는 범위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부차적이었다.

따라서 이는 국민의 일반의사에 근거한 국가권력만이 정통이라 주장하는 ‘일원모델’이다. 원자화된 개인만을 법적 존재로 인정하며, 개인으로 구성된 단체의 사회적 자치나 분권은 부정한 것이다. 물론 그후, 특히 20세기에 와서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 여러 나라에서도 단체의 사회적 자치를 인정했으나, 그것이 종래의 국가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정도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특히 독일에서 17~18세기 ‘공공 복지는 최고의 법’이란 가치 아래 국가절대주의 군주들에 의해 주창된 복지국가도 사실 법치주의를 포함한 민주주의 원리에 반대되는 국가주의적 사고였다. 물론 19세기 말부터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사회적 자치가 인정되기 시작했고, 특히 20세기 들어 복지국가는 과거의 그것과는 달리 민주적·사회적 성격의 것으로 변화되었으나,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국가라는 기본 관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와 반대로 개인은 물론 그들로 구성되는 단체의 존재를 적극 용인하여, 그 사회적 자치도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갖는다 보고, 그에 의한 사회적 법을 인정하는 다원적 모델이 미국식 민주주의다. 그런 사회적 자치의 주체인 단체의 권력은, 입법 과정에서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 조정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로비’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사회적 자치의 법적 현상일 경우 소송당사자, 특히 법률가를 통한 판례로 드러난다. 미국 헌법을 낳은 핵심인 ‘연방주의자’에서 메디슨이 말한 다양한 이해 관계의 조정이 바로 그것이다. 연방제의 또 다른 핵심인 연방과 지방자치체의 분권 시스템도 사회적 자치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들 하나, 적어도 위에서 말한 미국 민주주의 헌법의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반대로 근대 유럽식 국가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근 들어 미국식 국가관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점에서 우리 국가관이나 민주주의관도 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노대통령은 미국의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형 국가관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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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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