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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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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농사꾼 송씨

도랑말에 40대 농사꾼 송씨가 살고 있다. 식구는 올해 87세가 되는 어머니와 단 둘뿐. 자기 땅으로 밭이 너 마지기쯤 되는데, 남의 땅을 더 많이 부친다. 논농사는 없고, 고추·호박·오이·배추·무 같은 밭농사만 한다. 거름을 장만해서 땅을 잘 가꾸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로 이웃 마을까지 소문난 진짜 농사꾼이다.

이 송씨는 5, 6년 전 나이 40이 채 안 되었을 때 서울 색시와 결혼을 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온 마을 사람들이 반가워했다. 그런데 서울 색시는 4년 가까이 살다가 그만 몰래 집을 나가버렸다.

서울 색시는 송씨와 같이 사는 동안 남편을 도와 일하는 법이 없었다. 밥조차 허리 꼬부라진 늙은 시어머니가 짓고 반찬도 시어머니가 장만해야 했다. 남편이 죽자살자 일해서 겨우 번 돈으로 옷이고 살림살이 물건이고 도시 사람 흉내내어 사들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흔히 밖에 나가 음식을 사먹고 술을 마셨다.

이러자니 살림살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송씨와 그 어머니는 참았다. 때가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또 자식을 낳게 되면 그 자식 때문에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색시가 도망을 친 것이다.

여자가 도망친 것이 마을에 알려지자 이웃 사람들이 가출신고를 해두어야 한다고 해서 신고를 했다. 가족이 어디로 가버렸는 데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족을 학대하거나 쫓아냈다는 것으로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송씨가 아내의 가출신고를 하기 전에 벌써 도망친 그 여자가, 자기는 학대를 받고 쫓겨나왔다며 재빨리 고소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래서 송씨는 맞고소를 하게 되었다.

당신이 집을 나간 것은 친정에 가 있는 것인데, 남편이 무능하고 시어머니가 학대했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사실을 적어서 맞고소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송씨 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송씨가 낸 고소장의 사실이 어디까지나 옳다는 것을 진정서로 써서 함께 내었다.

이런 경우에 참 이상하게도 판사가 여자 쪽을 편들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판결이 났는데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위자료를 몇 천 만원이나 내도록 했다가 마지막에 가서 천여 만원으로 줄여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제 송씨는 여자들이 겁나서 결혼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아주 바쁜 농사철에는 도시에 사는 누이가 가끔 와서 허리 꼬부라진 어머니를 도와준다. 송씨 어머니는 요즘 힘이 달려 겨우 쌀 씻어 밥 짓고 간단한 반찬 장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방에 앉아 있을 때는 허리를 바로세워 앉아 있는데, 걸어갈 때는 허리를 90도로 꼬부려서 마치 기어가듯이 간다.

더러 도시 사람들이 찾아오면 나는 이 착한 송씨 이야기를 해주면서, 왜 도시의 여성들이 이런 훌륭한 농사꾼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가 하고, 더구나 여자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농사일과 농촌 생활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던 사람조차 벙어리가 되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동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대관절 법이란 것이 어째서 그렇게 되었나? 농사꾼과 결혼해서 도무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태도로 살다가 도망친 여자에게 도리어 위자료를 주도록 하다니, 이것이 여남평등이고 민주주의인가? 이래 가지고 농촌이고 도시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제대로 되겠는가? 나는 이 송씨 일에서 분노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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