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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史料로 본 Corea, Korea 연원

‘Corea’ 되찾아야 민족 주체성 회복

  • 글: 오인동 의사, Korea2000 위원

동서양 史料로 본 Corea, Korea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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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고려에 대해 아랍인들보다 훨씬 뒤에 간접적으로 알게 됐다. 하지만 고려에 대한 기록을 출간해낸 것은 아랍보다 조금 빨랐다. 그 첫 기록은 로마교황 이노첸시오 4세가 1253년 몽골의 칸에게 보낸 프랑스 수도사 뤼브뤼크(G.de Rubruck)의 글이다. 그는 1255년(고려 고종 41)에 유럽으로 돌아와 쓴 여행기에서 “중국의 동편에 섬나라 ‘Caule’가 있다”고 기술했다.

두 번째 기록은 1271년,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 폴로(Marco Polo)가 육로로 몽골에서 중국까지 24년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1295년(고려 충열왕 21)에 돌아와서 출간한 ‘마르코 폴로의 여행’이라는 책이다. 그는 반란 기도를 평정하고 실권을 잡은 원나라 쿠빌라이 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에 있던 고려 사절에 대해 기술하면서 중국의 동편에 ‘Cauli’라는 나라가 있다고 적었다. 그가 이탈리아의 제노바감옥에서 루스티첼로에게 구술한 것을 적은 필사본 이후 첫 인쇄본은 180여 년 후인 1477년(조선 성종 8)에 독일어 번역본으로 나왔다. 그후 이 책은 각국의 언어로 출간돼 널리 읽혔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언어 특성에 따라 고려가 Cauly, Kaoli, Kauli로 표기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럽인의 세계지리 인식은 전적으로 아랍인의 항해술이나 탐험자료와 연구성과에 의존했기 때문에 아랍인들이 가지고 있던 한반도에 대한 지식이 유럽에 알려졌을 수 있으나 이는 확실치 않다. 또한 폴로의 여행기가 1500년대 후반에 조선 근해를 드나들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에게 얼마만큼 알려졌는지도 불분명하다.

한반도를 섬으로 인식했던 서양인들

폴로가 여행기를 쓴 이후 250여 년 동안 한반도에 관한 서양세계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1498년에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동방해로를 개척한 후 1513년엔 중국 광동에, 1542년에는 일본 히라도에, 또 네덜란드인들은 나가사키에 각각 교역지를 확보했다. 1548년부터는 그들의 항해일지에 일본의 북서쪽에 있는 섬 나라(조선)를 Corai, Couray, Corey, Corei, Core, Corea, Coree 등으로 표기했다. 조선 근해를 항해한 네덜란드인 존반 린쇼텐은 1596년에 출간한 항해기에 나가사키 북서편에 있는 나라를 ‘Insula de Core(인슐라 데 코레)’라 했고 지금은 ‘Chau Sien’이라고 한다고 썼다. 그때까지 서양인들은 한반도를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1589년(조선 선조 16) 영국인 하클류트의 저서 ‘주요 항해로와 영국민의 발견’에 수록된 수도사들의 서한에는 조선의 남단이 ‘Cape Corea(케이프 코레아)’로 표기되어 있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1593년)는 스페인 선교사 체스페데스가 일본인 천주교 병사들을 돌보기 위해 고니시 유기나가 장군을 따라 조선에 와서 1년여를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를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꼽지만 아쉽게도 이렇다할 기록을 남긴 게 없다.

1627년(조선 인조 5)에는 3명의 네덜란드 선원이 표류했는데 당시 조선은 외방인이 들어오면 억류하고 송환하지 않는 쇄국정책을 썼다. 이들은 훈련도감에 배치돼 총포제작 등의 일을 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 때 2명이 전사했고 생존한 존 벨테브레는 귀화해서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는 조선여자와 결혼해 아들과 딸을 두었으나 역시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1653년(조선 효종 4)에는 네덜란드인 헨드리크 하멜 일행을 태운 선박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난파했는데 일행 중 36명이 살아남았다. 이때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붉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박연이 통역으로 고국의 선원들과 만났다. 하멜 일행 8명이 조선 억류생활 13년 만에 일본으로 탈출한 후 쓴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 Relation du Naufrage d’un Vaisseau Hollandois)’가 1668년(조선 현종 9)에 출간되면서 드디어 조선은 서양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책에서 하멜은 조선을 Coree(첫 번째 e 위에 악센트가 붙은 Corea의 불어식 표기)라고 썼다. 표류기는 그 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는데 독일판본에 Corea와 Korea가 혼용된 것 외에는 영국, 프랑스, 미국판본에선 모두 C로 시작하는 이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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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인동 의사, Korea2000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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