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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⑧

메주로 담북장 끓이고 무청으로 시래기 엮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메주로 담북장 끓이고 무청으로 시래기 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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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 아랫목을 차지하는 게 메주만 있나. 담북장(청국장)도 있다. 이건 또 냄새가 얼마나 놀라운지. 콩과 볏짚이 뜨겁게 만나 이룬 맛이다. 미끈거리고 끈적거리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내 손맛이 있다.
메주로 담북장 끓이고 무청으로 시래기 엮고

이웃집 외 얽는 일을 도와주는 필자.

끝이 살짝 치켜올라간 처마 밑에 메주를 매단다. 볏짚으로 솜씨 부려 매달고 나서 한 발 물러서서 본다. 가을 햇살에 금빛으로 빛나는 메주.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처마 밑에 메주, 바로 거기에 있다. 메주는 우리의 일년 작품이다.

봄에 콩을 심고, 새하고 싸우며 새싹을 지키고. 풀과 싸워 이기면 여름에 콩 꽃 구경할 수 있다. 가뭄에 목말라하지 않나, 태풍에 쓰러지지 않나, 벌레가 너무 많지 않나… 드디어 콩이 영근다. 콩잎이 떨어지면 거두어들인다. 낫으로 베어 말렸다가 도리깨로 턴다. 그러면 콩깍지 부스러기, 덜 여문 콩, 잘 익은 콩, 벌레 먹은 콩이 뒤섞이게 마련. 거기서 잘 여문 콩을 고른다. 된서리가 내리면 메주 쑬 때다. 메주를 매달아야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처마 밑에 메주가 매달린다

메주콩 삶은 냄새를 기억하는가? 메주를 빚는 곁에서 집어먹던 콩 맛을 아는가? 요즈음 도시 아파트 살림에서는 사라진 메주 쑤기. 나 역시 농사를 시작하고서야 메주를 쑤기 시작했다. 처음이니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 남편과 함께 가마솥에 불을 때며 콩을 삶았다. 불 때느라, 그 다음에는 콩물이 끓어 넘치지 않게 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아궁이 불길이 잦아들고, 뜸이 푹 들 무렵. 얼마나 더 익혀야 하나? 둘 다 모른다. 다른 건 어찌 귀동냥을 했는데 이건 못 알아놨다. 앞집에도 가보고, 뒷집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도 계시지 않는다.

이거 어떡하지? 그러는데 가마솥에서 나는 냄새가 달라졌다. 그래, 이게 메주 냄새야. 어릴 때 맡아보던 그 냄새. 둘이 눈을 마주보며, 머리로는 먼 시간여행을 했다. 어린 시절 맡아본 냄새를 따라 그때 기억 속으로.

이제는 메주를 빚을 차례. 뜨거운 콩을 퍼내 큰 그릇에 담고 쿵쿵 찧는다. 아이 어른 힘을 모아서. 그리곤 메주를 빚는다. 틀에 넣고 밟아서 빚는데 아이들도 잘한다. 연신 콩을 집어먹으며. 온 식구 몸무게를 모아 단단하고 반듯한 메주를 빚는다. 그러고 나면 아침 먹고 시작한 일인데, 깜깜하다. 메주를 하룻 밤 식힌 뒤, 볏짚으로 솜씨를 부려 처마 밑에 매단다.

처마 밑에서 아침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메주가 마르면 안방 아랫목에 메주를 모시고 띄우기 시작한다. 고롬고롬한 메주 뜨는 냄새.

겨울에 아랫목을 차지하는 게 메주만 있나. 담북장, 보통 청국장이라 하는 장도 있다. 이건 또 냄새가 어찌나 놀라운지. 담북장을 띄우고 나면 며칠 동안 방안에서 냄새가 사라지질 않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익숙하다. 한 방에서 냄새를 맡으며 먹고 자고. 담북장과 하나가 된다. 집에서 만든 담북장은 콩과 볏짚이 뜨겁게 만나 이룬 맛이다.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며 냄새도 더 지독하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내 손맛이 있다.

시골 살면 전염된다. 초겨울에 메주 쑤고, 한겨울에 담북장 냄새 풍기고 싶어한다. 주부들만 그런 게 아니다. 남정네들도 열심이다. 올 초 마을 회의를 하는데, 회의 끝내고, 메주 띄우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남정네들이 더욱 열심이다. 시골집에서 이 일은 주부들만의 일이 아니다. 남편도 함께 불을 때고, 메주 빚고, 매달고…. 메주는 이렇게, 부부가 힘을 모아 일년 농사하여 마련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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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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