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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⑨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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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 눈보라가 밀어닥쳐 온 세상이 바뀌는 한겨울. 그 소리만 들어도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이십년 넘게 아파트에 살다 산골로 처음 왔을 때, 그때는 오죽했을까! 일년에 반은 덜덜 떨면서 살았다. 이곳은 시월 말부터 추워지기 시작해 오월이 되어야 찬 기운이 사라지니까.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필자가 논에 볏짚을 깔고 있다. 논에서 나온 건 되도록 논에 돌려준다.

처음에는 옷을 껴입을 줄밖에 몰랐다. 다행히 시골장에는 아직도 보온 내복, 솜 누빈 버선을 판다. 내복 입고, 면으로 된 티셔츠 입고, 털조끼 입고, 그 위에 헐렁한 스웨터를 입었다. 방안에 있어도 외풍이 있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밖으로 들락날락. 그러니 집안에서도 중무장을 하고 지냈다.

추위 이겨내기

그렇게 떨면서도 어느새 손발이 따뜻해졌다. 서울서는 늘 차가웠던 손인데. 그 손이 어느 순간 따뜻해진 거다. 손 움직여 일을 하니 손이 따뜻해지는구나. 그렇다면 춥다고 움츠리지 말고 몸 움직여 일을 해야지. 한겨울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가 뭘까? 그때 떠오른 게 군불. 군불을 때보자. 잘 지필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보자.

눈보라가 몰아치면, 하루종일 집 안에 머물게 된다. 뒷간 가기도 꾀가 나지. 그러다 보면 몸이 찌뿌드드하다. 가만히 있으니 더 춥고. 이런 날일수록 불을 더 따뜻이 때야 한다. 우리 집 안방은 구들방이다. 해 지기에 앞서 불을 때야 하루를 넘길 수 있다. 마음을 몇 번이고 다잡고 ‘끙’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다른 날보다 일찍.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면, 불 앞에서 마술처럼 굳었던 몸이 풀린다. 밑불이 잘 타면 장작을 가지러 일어난다. 그러면 몸이 절로 움직인다. 장작을 쌓기도 하고. 좀 떨어진 곳에 가서 잔가지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다 집 뒷산에 올라 검불을 끌어오기도 하고. 가까운 밭에 가서 고추 말목이라도 뽑는다. 불은 아궁이에서 타고 있지만, 밭에서 일하는 내게까지 온기를 가져다주나 보다.

불 때본 적이 없으니 어설프다. 그런 실력으로 궂은 날 불 때려면 애를 먹는다. 하지만 자꾸 하다 보니 일머리가 생기지. 아궁이 옆에 며칠 불쏘시개 거리 챙겨놓고. 비 안 들이치는 곳에 잔가지 단도 쌓아놓고, 마른 장작도 따로 모셔놓았다. 그러니 언제라도 아궁이에 앉으면 불 때기 좋다. 그날 쓴 만큼 다음날 쓸 걸 챙겨놓고.

밖에서 팔 다리 훨훨 내두르며 한바탕 일을 하고 들어오면 그날 저녁은 따스하다. 내 몸 속에 불을 지핀 셈이니까. 몸 움직여 일하는 맛. 그 맛을 알게 되었다.

방안에 가만 앉았을 때는 할일이 없는 것 같다. 마음은 자꾸 딴 데로 간다. 어디 놀러갈까? 장날이니 장에 가볼까? 그러다 나가보면 어디나 일이 널려있다. 밭둑에 가시나무 쳐내야지. 과일나무에 거름도 줘야지. 낫 한 자루 들고 있으면 맘대로 낫을 휘두르며 마른 풀도 베고, 가시나무도 잘라낸다. 어쩔 때는 맨손이다. 그래도 어찌 그냥 지나갈 거냐. 무식하게 맨손으로 일을 한다. 내 속에 엉킨 잡념을 쳐내고, 묵은 감정도 베어낸다. 산골 다랑이밭. 밭보다 밭둑이 더 넓으니 이 일을 겨우내 해두어야 한다.

낫질이 좋아도 더 좋은 일이 있지. 겨울 산에서 일하는 맛이 좋다. 바람이 휘몰아쳐도 숲에 들어가면 안온하다. 참 신비하다.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무가 온기를 내주어서일까?

겨울 산은 참 편안하다. 뱀이나 땅벌이 있을 리 없고. 어디 있어도 밖이 훤히 내다보여 길 익히기 좋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올라 가만 앉아 있는 순간 평화. 산에 오를 때는 빈손으로 허위허위 가도 돌아올 때는 한아름이다. 미안한 마음에 잣나무를 감싸고 올라가는 칡덩굴을 끓어주기도 하고. 너무 벌어진 가시나무는 친다.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땔감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봄에 산나물이 여기저기 돋아나듯 태풍에 넘어진 나무, 말라죽은 나무·마른 삭정이도 많다. 작은 나무면 통째로 끌고 오고. 삭정이는 주워, 칡덩굴로 묶어, 등에 진다.

산에 오르면 네 발 짐승 다니는 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다. 길이 말짱히 보여 그리로 가려면 나뭇가지에 걸리곤 한다. 개를 데리고 가면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 나도 몸을 숙여, 그러니까 고라니만큼 키를 낮추어 지나가보기도 한다. 산짐승이 다니는 길. 그 길을 다니는 마음으로 우리가 자연 속에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욕심을 부리곤 하지. 산에서 하루거리 얻어오면 될 걸, ‘조금 더’ ‘하나만 더’ 한다. 그러면 나무가 따끔하게 혼내줄 때가 있다. 욕심에 눈이 멀어 가시 덩굴이 있는지 모르고 움직이다, 한 대 얻어맞는 거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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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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