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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사형수의초상

  • 글: 박김혜원

사형수의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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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은 필자의 시각에 따라 쓰여진 것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진위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편집자)
사형수의초상
1976년 3월 나는 한 사형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형집행을 당할 때까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가 떠난 후 매주 또는 격주로 만나 나와 신앙과 우정을 나눈 사형수는 줄잡아 20여 명에 이른다. 그들과 신앙상담을 하면서 삶의 마지막 길동무가 되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뜨거운 마음 하나면 되리라 믿고 겁없이 덤빈 이 길이 너무 힘들어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없지 않지만 사회가 내게 준 사랑의 빚을 가파른 절벽 위에 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힘이 되어주었다. 어쩌면 담장 안 그들은 악인이고 담장 밖 우리들은 선인이라고 믿는 사회의 이분법적 편견에 도전하는 몸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이 마치 괴물이라도 되는 듯 이 지구상에서 추방해버리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안전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8년의 교도소 교화위원 생활은 내게 삶을 거꾸로 보는 또 하나의 눈을 주었다. 나의 새로운 눈에 잡힌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를 뒤늦게 후회하고 올곧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피를 토할 듯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사람답게 한번 더 살아보고 싶다고 외치는 사형수들의 절규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에 소리 없이 통곡했던 체험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이 글은 한 교화위원의 뼈아픈 자기 고백록이자 직접 만났던 담장 안 흉악범들의 인간적 참회록이요, 항변의 외침이기도 하다.

사형수의 신앙상담과 출소자 재활지원, 무기수 상담, 재소자 교화위원 등의 활동을 하면서 나는 인생의 장년기를 활활 불태웠다. 그런데 아직도 사형이나 교도소라는 소리만 들으면 계절병 환자인 양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통증에 시달린다. 그리고 조급해진다. 만나봐야 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자책감에서다.

사형집행장이 있는 교도소는 전국에 5개가 있다. 교도소마다 사형수 교회(敎悔)를 실시하는데, 이는 신앙을 통하여 참회에 이르도록 사형수를 교화하는 일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일을 맡는 여성 교화위원을 ‘사형수 자매’라 부른다. 사형수 자매들은 매달 영치금(1976년에는 2000원, 지금은 1만∼2만원)을 넣어주고 내의나 양말 등 생활필수품을 가족 대신 공급하는 일도 한다. 사형수들은 대개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사상범을 제외하면 사형수 열에 예닐곱이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 속한다.

사형수 교회는 한 편의 휴먼드라마

사형수 교회는 비교적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형수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 특히 힘들어진다. 이런 사형수는 대개 집행장에서 그때까지 쌓아온 신앙을 부정하고 불안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럴 때 담당 자매는 자신의 사랑이 부족했던 탓으로 여기며 자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담당해온 사형수가 사라져버렸을 때의 허무함을 이겨내는 일 또한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다. 형이 집행되면 사형수 자매는 비로소 인간으로 돌아온 그들을 무참히 죽여버리는 일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버겁기만 한 일이라면 이리 오래 버틸 수 있었겠는가. 사형수 교회는 사형수와 그 자매가 함께 엮어가는 한 편의 휴먼드라마다. 신앙을 매개로 두 사람이 만나 짧게는 1∼2년, 길게는 7∼8년 동안 정과 신뢰를 나눈다.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흉악범인 그들이 신앙으로 거듭나 참회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내가 누리는 안정과 평화의 밑바닥에는 이렇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분노가 있었음도 알 수 있게 된다. 끊임없이 죽음의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보면서 내 삶에 대한 불평이나 원망이 얼마나 사치스런 것인가를 깨닫기도 한다. 이 가파른 여로를 함께함은 봉사라기보다는 수련의 과정이다. 결국 그와 나는 잠시 동안이지만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커가는 것이다.

인생을 바꾼 남편의 말 한마디

나는 경찰서 앞을 지나기만 해도 괜히 발이 떨리는 겁쟁이였다. 그러던 내가 사형수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말하자면 1975년 10월9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날 아침 남편과 나는 식탁 앞에서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내 눈을 사로잡은 기사는 사상초유의 살인마 김상현(가명)의 체포 소식이었다.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출귀몰 연쇄살인을 저지르면서 전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흉악범이 청량리역 부근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55일 동안 경찰 비상망이 쳐진 전남, 경기, 서울을 멋대로 누비며 9차례에 걸쳐 17명의 무고한 생명을 잔인하게 죽인 범인은 잡고 보니 돈이 궁했던 폭력전과 2범의 20대 단순 강도였다. 그가 17명을 살해하고 얻은 금품은 현금 겨우 2만6000여원과 여자 팔목시계 하나, 고추 15근, 쌀 1말, 플래시 1개, 블루진 옷 1벌, 가짜 금반지 1짝뿐. 첫 범행지인 전남 무안에서는 250원 때문에 일가족 3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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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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