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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사형수의초상

  • 글: 박김혜원

사형수의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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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이가 없어 남편에게 퉁명스레 소리쳤다.

“여보, 이 범인이 당신 고향 사람이네!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요?”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묵묵부답이던 남편이 부시시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한마디를 툭 던졌다.

“당신이 전도하면 되잖아요. 요즈음 전도열이 펄펄 끓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교사직을 그만둔 후 집과 교회가 온 우주인 양 살아온 내게 17명을 살해한 흉악범을 찾아가 전도를 하라니! 유명 목사님과 스님이 수두룩하잖아. 지금 남편은 나를 놀리고 있는 거야. 지난 2개월 동안 온 나라 사람들의 밤 외출을 꽁꽁 묶어놓은 흉악범. 그 악명에 걸맞게 유명인들이 찾아가 교화를 해도 참회를 할까말까일걸. 얼굴만 사람일 뿐 마음은 야수 중의 야수잖아.’ 그때 내 맘속에선 이런 말들이 꿈틀댔다.

희대의 살인마 김상현의 유년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는 논 4마지기와 밭 1000여 평을 부쳐 연명하는 가난한 농군의 6남매 중 맏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에 특별히 성격이 포악하다거나 정신이 박약하다는 기록은 전혀 없었다. 노모(현재 74세)의 말을 들어봐도 어린 시절 그는 수줍은 편이었고 정이 많았다.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그는 중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다 17세에 집을 떠나 공장일꾼, 머슴, 점원 등으로 전전해야 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기는 객지와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동네 구멍가게의 물건값이 도시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것에 화가 나 말다툼을 벌인 것이 폭행으로 이어져 6개월 징역을 살았다. 출소한 그의 얼굴과 눈빛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폭행과 감옥살이로 별을 단 전과자를 감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극적 운명이 덮친 날, 그는 철로 5km를 걸었다. 어둠이 내리고 배가 고팠다. 산자락 아래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농가가 그의 눈앞을 막았다. 두 눈에 도둑고양이 같은 섬광이 일었다. 그 집에 침입하여 부부와 아이를 살해하고 250원을 빼앗았다. 그의 첫 범행은 전남 무안에서 그렇게 시작됐다. 나쁜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남들처럼 멋있게 살고 싶었다지만 체격이 작고 힘이 약해 큰집을 털 엄두를 못 냈다는 김상현.

“당신이 전도하면 되잖아요” 하던 남편의 말 한 마디가 내 가슴속에 박힌 사랑의 가시가 되어 그를 위해 기도하도록 했다. ‘너무 외로워서 철로 5km를 내내 걸었다?’ ‘몸이 약해 노약자만을 범행대상으로 택했다?’ 이런 물음들이 땅속을 헤집는 지렁이처럼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나는 기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편지 쓰기 등 그와의 소통경로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겨울을 대비해 두툼한 내의를, 수갑으로부터 여린 살을 보호하도록 털실로 뜬 토시(팔목 보온대)를 보내기도 했다. 그에게 배달된 우리 애들의 예쁜 성탄 카드는 그의 감방 벽을 꾸민 장식품이 됐다. 동료 수인들은 그에게 신방을 차렸다고 놀리곤 했다고 한다.

기도로 시작한 사형수와의 첫 만남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교도소. 그곳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편지로 그와 안면을 튼 지 3개월 만인 1976년 3월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서울구치소의 높고도 긴 담장은 번잡한 찻길과 맞닿아 있었다. 일상적 일들로 정신 없이 바쁜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그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거대한 동토지역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우뚝 선 감시 망대와 높고 긴 회색 담장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막혔고 온몸에 소름이 쪽 돋았다. 이를 악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제2정문을 통과하고 경비실에서 치르는 절차는 까다롭고도 무시무시했다. 충성을 목이 터지게 외치면서 경례를 붙이는 교도경비병을 벗어나자 비로소 살았다 싶었다. 키가 작달막하고 살이 통통한 기독교 담당 직원이 정문에서 우리를 맞아 조그만 방으로 안내했다. 어찌나 방이 춥고 싸늘하던지 턱이 덜덜 떨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도소 안에 들어서면 나는 일년에 계절이 여름과 겨울 두 개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이는 단지 시설의 열악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곳에 난무하는 온갖 후회와 비탄, 미움과 원망에 눌려 자연이 들여보내주는 따스함이나 시원함을 품는 완충지대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속칭 ‘넥타이 공장’이라 불리는 사형집행장이 버티고 있는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희대의 살인마 눈에서는 어떤 독기가 뿜어져 나올까?’ ‘살인자는 혈통부터 다르다니까 분명 드라큘라 비슷한 공포의 냄새를 풍기겠지’ 이런저런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기다리는데 가죽수정(쇠수갑 외에 양팔에 채운 가죽수갑으로 허리에 맨 가죽띠에 연결해놓는다. 자해나 폭력을 막기 위해서다)을 찬 그가 교도관과 얘기를 나누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신문에서 읽은 대로 그는 가냘프고 작은 체구였다. 수줍은 듯 미소를 짓자 그의 가느다란 눈은 눈꺼풀 속으로 숨어버렸다.

우리의 첫 만남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기도로 시작됐다. 그 날 주고받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벌레만도 못한 나를 무엇 하러 찾아오느냐’던 김상현의 말만 기억난다. 나는 2주마다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돌아섰다. 경사길을 내려오는데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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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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