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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최성일의 논쟁적 책읽기

환경·생태운동 흠집내기에 나선 또 한 권의 책 ‘에코파시즘’

  • 글: 최성일/출판칼럼니스트 jjambo@nownuri.net

환경·생태운동 흠집내기에 나선 또 한 권의 책 ‘에코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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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생태운동 흠집내기에 나선 또 한 권의 책 ‘에코파시즘’
이른바 ‘주례사 비평’은 문학 비평만의 문제는 아니다. 덕담 일변도의 무색무취한 결혼식 주례사 같은 비평은 서평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책 사서 읽고 서평 쓰기’를 고집하는 서평자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 것에는 관점 없는 뜨뜻미지근한 책읽기에 대한 반작용의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제값을 치르고 책을 사는 것이 서평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라는 데 동의하지만, 그것을 엄정한 서평의 전제 조건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다.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평자들이 서평, 리뷰, 독후감 등을 쓰면서 책의 단점에 대해 애써 눈감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낯짝 사회’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고, 우리말로 옮기고, 만든 이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서평자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학계와 출판 동네의 범위는 의외로 좁아서 전혀 낯선 사람도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잠재적인 ‘인터뷰이’와의 친밀한 만남을 꺼린다는 어느 방송인의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아무튼 나는 이 지면에서만큼은 안면을 몰수하려 한다.

그들은 왜 내부고발자가 됐을까

자넷 빌·피터 스타우든마이어 공저 ‘에코파시즘’(김상영 옮김, 책으로만나는세상)은 유행에 편승한 책이다. 즉 이 책은 최근 한국 출판계에 화제를 몰고온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에 이어 환경·생태운동 흠집내기에 나선 것이다. 두 권을 갖고 유행이라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회의적 환경주의자’와 ‘에코파시즘’은 기존 환경·생태운동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선명하게 부각될 뿐 아니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또한 두 책이 모두 ‘내부자 고발’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롬보르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좌익 성향의 그린피스 회원으로 활동했고 또 환경문제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에코파시즘’의 공저자들 역시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을 따르는 좌파 생태운동가다.

그런데 두 책이 환경·생태운동을 비판하는 방식은 다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가 환경비관론의 근거가 되는 방대한 분량의 각종 통계 자료를 반박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에코파시즘’은 생태학의 역사 자체를 비판한다. 어떤 사회운동에도 잘못이 없을 수 없으므로 환경·생태운동을 향한 비판은 당연하다. 다만, 그러한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회의적 환경주의자’의 문제점은 ‘녹색평론’(제73호, 2003년 11~12월호)에 실린 필자의 글 참조 바람). 아울러 그런 책들을 번역·출간한 의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펴낸 출판사의 대표는 공개된 자리에서 환경·생태운동의 대세에 맞서는 반론을 제출해 담론의 활성화를 꾀한다는 출간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담론의 활성화는 어떨는지 몰라도 ‘언론 플레이’에 힘입어 초판 1쇄는 무난히 팔렸기에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에코파시즘’의 출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환경·생태운동에서 나타나는 파시즘적 요소를 경계하는 것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태적 요소와 파시즘이 뒤섞인 사례를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나치처럼 생태철학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 정권도 ‘자연보호헌장’을 반포하고 ‘그린벨트’를 설정하지 않았던가. 이 책의 판매가 그리 신통치 않으리라는 것은 출판사 도 예상하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숨은 의도라도 있는 것일까?

독일 파시즘과 생태론

생태론의 기원과 전개 양상을 독일 파시즘의 과거와 현재에 비춰보는 ‘에코파시즘’은, 크게 두 편의 글- 피터 스타우든마이어의 ‘파시스트 생태론 나치당의 녹색 분파와 그 역사적 전례’, 자넷 빌의 ‘생태론과 독일 극우파 안에서의 파시즘의 현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스타우든마이어는 에코파시즘을 오늘의 정치문화에서 간과하기 쉬운 치명적인 파시즘적 경향의 하나로 간주한다. 에코파시즘은 “환경주의적 관심을 수반한 진정한 파시스트 운동에의 몰두 현상”을 말하는데 스타우든마이어는 환경주의와 파시즘이 이질적으로 결합한 실제 사례를 독일민족사회주의의 ‘녹색 분파’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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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성일/출판칼럼니스트 jjambo@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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