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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분 ‘암탉 열풍’

  • 글: 김현미 신동아 기자 / khmzip@donga.com

서산에 분 ‘암탉 열풍’

서산에 분 ‘암탉 열풍’
“왜하필 주인공이 암탉일까. 아줌마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김원재·35) “작가는 남녀를 떠나 현대인들의 생활상을 의인화했다고 봐요. 암탉 ‘잎싹’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양계장 닭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잖아요? 저는 폐계가 된 잎싹에게서 오히려 ‘오륙도’라 불리는 요즘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오르던 걸요.”(이상록·39) “제가 이 책을 읽고 있었더니 6학년인 아들이 ‘저도 읽었는데 꼭 엄마들 이야기 같아요’하는 겁니다. 잎싹이 알낳기를 거부하고 마당을 나오는 것은 의식의 변화를 의미하죠. 나중에 친구였던 청둥오리의 알을 대신 품잖아요? 아들이 그러더군요. 이 책을 읽고 엄마도 ‘입양’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고.”(김재신·39)

11월24일 충남 서산시립도서관 회의실에서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의 해석을 놓고 양보 없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중국어반 수강생들의 자발적인 토론모임으로, 바로 옆방에서는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들이 모여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11~12월 두 달 동안 ‘서산 시민 모두가 책 한 권을 같이 읽는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시작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충남 서산에 ‘암탉 열풍’을 몰고 왔다.

서산시민 모두가 읽은 책

이 독서운동은 서산시(시장 조규선)와 서산시립도서관, 한국도서관협회가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One City One Book)’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 워싱턴도서센터(미국 국회도서관을 중심으로 50개주 도서센터가 연합돼 있다)를 중심으로 1998년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38개주, 9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원 북’ 운동은 시애틀에서 시작됐지만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시카고가 꼽힌다. 2001년부터 이 운동에 동참한 시카고는 개막 도서로 하퍼스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선정하고 한 달 동안 ‘원 북, 원 시카고’ 캠페인을 벌였다. 이 운동의 특징은 단지 읽기를 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공도서관이 중심이 돼 독서토론, 영화 상영, 모의재판과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시카고 시민들을 ‘열광적인 독자’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서산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시카고를 모델로 했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첫 책으로 선정된 데는 연령과 세대에 구분 없이 읽을 수 있는 우화적 성격의 동화로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공한다는 점과 서산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영화·연극·뮤지컬 등 독서 이외의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실제 두 달 동안 서산시립도서관은 저자 강연회와 토론회 외에 내용이 유사한 애니메이션 ‘치킨 런’과 ‘마당을 나온 암탉’ 연극 비디오의 상영을 병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산의 ‘암탉 열풍’은 각 학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지중학교 도서관에는 김환영씨가 그린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화가 전시돼 있어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학교와 달리 입시부담이 큰 고등학교에서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낄 만큼 암탉 이야기가 화제다. 부석고 독서토론동아리 회장인 송희(2학년)양은 ‘마당을 나온 암탉’에 대해 “부담은 적지만 읽고 나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책”이라며 “미처 읽지 못한 친구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면서 독려를 하고, 수업시간 중 소그룹 토론을 통해 다양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독서토론을 지도해온 정호준 교사(국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왜 진작 안 했을까 후회가 돼요.” 서산이 피운 ‘한 도시 한 책 읽기’의 불씨가 전국으로 확산될 날을 기대해본다.

신동아 2004년 1월 호

글: 김현미 신동아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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