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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⑪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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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다. 씨앗을 보면 얼른 심고만 싶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되지 않는다. 곡식마다 때가 있어 제때 심어야 잘 자란다.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눈이 녹을 무렵 무경운 밭. 지난해 땅콩 농사한 곳은 땅콩 줄기가, 기장 농사한 곳은 기장 줄기가 덮여 있다.

야성이 살아날 때, 자연에 사는 맛이 난다. 겨울에 야성이 살아날 때가 언제인가?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은? 찔레와 한판 대결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이번 겨울, 이 글을 쓸 때까지는, 눈이 적고 날씨도 따뜻했다. 햇살이 좋은 날. 몸이 움직이라고 소리치니 밖으로 나간다. 손에는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연장 가방을 들고. 산밭으로 간다. 우리 산밭은 밭보다 밭둑이 넓다. 전에는 보리를 심어먹었다는데, 수십 년 버려두어 밭둑에는 끈질긴 덩굴과 가시나무가 자리잡고 살아간다. 붉은 빛 가시줄기를 올리는 산딸기. 칡. 환삼덩굴. 그 가운데 대장은 찔레다.

낫을 꺼내 밭둑의 마른 풀을 벤다. 여기도 어김없이 찔레가 차지하고 있다. 찔레나무는 가시줄기가 밑동에서 덩굴처럼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면서 곁가지를 마구 뻗는 떨기나무다. 사방으로 뻗은 곁가지가 무엇에든 엉겨붙는다. 뭘 모르고 덤볐다가 당한 적이 한두 번인가. 찔레는 온몸을 가시로 중무장하고 있는 데다, 섣불리 건드리면 줄기가 휙 튕겨지며 덮친다.

강적이다. 그냥 덤벼들어서는 안 되지. 잠깐 생각한다. 장갑 두 겹으로 꼈지, 낫말고도 손 톱, 긴 전정가위가 있으니 찔레와 한판 대결을 펼쳐도 괜찮겠구나. 먼저, 찔레 위에 덮인 환삼덩굴을 낫으로 살살 쳐낸다. 칡 줄기도 걷어낸다. 찔레 둘레 풀이나 잡목도 마저 벤다. 이제 찔레와 정면 대결할 시간. 한 발 떨어져, 앞으로 뻗어 늘어진 가지 끝부터 긴 전정가위로 자른다. 그 동안 당하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찬찬히, 찔레 가지를 잘라 올라가니, 윗가지로 올라갈수록 곁가지를 많이 뻗어 옆 나무줄기 사이로 서로 엉켜 있다. 일단은 후퇴하자. 다른 가지를 잘라 들어간다.

찔레야, 이제 여기는 사람 영역이다

어느 정도 찔레 팔이 잘려나갔다. 엉겨 붙은 윗가지들이 허리를 잘린 채 허공에 붕 떠 있다. 낫으로 잡아당겨본다. 찔레 가지가 저항을 한다. 내 몸무게를 실어 당기니, 딸려 내려오는 게 느껴진다. 그 순간, 몸이 알아서 피한다. 찔레 윗가지가 땅으로 떨어진다. 휴, 안 맞았다.

찔레 가지를 어느 정도 잘라냈으니, 이제 찔레 밑동을 노릴 때다. 무릎을 꿇고 앉다가 ‘아 따거라.’ 한 방 찔린다. 좀더 조심해야 하는데…. 찔레는 밑동이 여러 갈래다. 하나하나 잘라내려는데, 낭창낭창하던 가지가 밑동으로 와서는 단단해져, 톱으로 바꿔든다. 밑동이 검불에 덮여 잘 안 보인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찔레는 검불을 꽉 끌어안는 비결이 있나 보다. 그러니 비탈에서도 잘 자라고 한겨울에도 푸르게 살아 있지. 밑동을 찾아 검불을 헤치는데 뿌리를 돌 틈에 내렸다. 끈질긴 놈. 돌을 만져보고, 돌을 들어낸다. 톱으로 굵은 밑동을 자른다.

휴, 어느 정도 끝났다. 하지만 바닥에 잔뜩 깔린 찔레 가지들은 어쩌나. 조심하며 빠져나와 한번 둘러본다. 가시 때문에 거름으로 쓰기도 어렵고, 땔감으로 쓰자니 나르기도 어렵고 불 때기도 어렵다. 찔레에 다시 한번 진저리를 친다.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도 한동안 즐겨 불렀던 노래다. ‘엄마 일 가신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찔레꽃이 피면 예쁘지. 꽃향기가 은은한 게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데. 코를 스치는 그 향기를 맡으면, 가만 멈춰 서서 가슴 깊이 그 향기를 맡는다. 향기 따라 아련한 추억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뿐인가, 꽃잎과 열매를 먹을 수 있고, 찔레순은 봄 내내 아이들 간식거리가 되어준다. 한데 그 찔레가 밭둑에 있으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찔레에게, 이제 여기는 사람 영역이라는 걸 알려준 셈이다. 봄이면 잘린 밑동에서 새 가지를 뻗어 올리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감당해 나갈 수 있으리라. 몇 발짝 뒤로 물러나 찔레를 쳐낸 곳을 본다.

올해는 무슨 나무를 심을까

여기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양지바른 비탈이니, 과일 나무 심어 가꾸기 좋다. 집 둘레 한두 그루씩 심어, 꽃도 보고 열매도 먹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열매 좋은 과일나무인 복숭아, 배, 자두나무…. 농약 안 쳐도 되는 대추, 감, 은행, 포도나무…. 봄마다 어린 나무를 많이도 심었다. 이렇게 몇 해를 심으니 웬만한 과일나무는 한두 그루씩 있다. 해당화, 석류, 산수유까지도.

처음에는 과일 따 먹을 욕심에 나무를 심었다. 몇 년 지나다 보니, 심는다고 열매가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봄이 오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스피노자가 아니라도, 자연에 살면 해마다 과일 나무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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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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