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의 宗家|尹拯古宅

금강산·무산십이봉 품은 꼿꼿한 선비정신의 표상

  • 글:·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금강산·무산십이봉 품은 꼿꼿한 선비정신의 표상

2/2
금강산·무산십이봉 품은 꼿꼿한 선비정신의 표상

안채 뒤뜰의 장독대. 종가의 유명한 장맛은 종부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가 벼슬이 가져다줄 부귀(富貴) 앞에서 당당하게 ‘노(NO)’라고 말한 까닭은 벼슬을 하다 보면 잡사(雜事)에 시달리게 되고, 그러면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명재가 우의정 자리까지 거부하자 당시 사람들은 그에게 ‘백의정승’이란 칭호를 선사했다.

재야에 머무르면서 명재가 가장 역점을 둔 일은 교육이었다. 명재의 후진 교육은 ‘종학당(宗學堂)’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윤씨 일가에서 세운 일종의 문중 사립학교인 종학당은 지금의 중등·대학 과정을 모두 포함해 가르쳤다. 1618년 개교해 1910년 강제합병으로 인해 강제 폐교될 때까지 조선시대 인재 등용문인 과거에서 모두 42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해낸 종학당은 요즘말로 국가고시 합격자 양성소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신동아 2004년 2월호

2/2
글:·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목록 닫기

금강산·무산십이봉 품은 꼿꼿한 선비정신의 표상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