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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⑦|늘재에서 문경새재까지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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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란 참 묘하다. 어제 본 산이 오늘 또 다르다.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역사와 사연도 참 구구하다.
  • 백두대간을 타는 이들의 사연과 이유도 저마다 다를 터. 헌데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왜 이리도 맘이 여유로운지. 산에서 오가다 만난 이들과 산벚꽃 향내 짙은 야외에서 동동주에 취하다 보니 어느덧 하루가 저문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미술사학자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유명해진 이 문구는 본래 조선 정조시대의 문인 유한준이 지인 김광국의 수장품에 부친 글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무언가에 열정을 쏟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정한 반열에 오르고, 그 중 일부는 남들이 범접하기 힘든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쉽게 말해 ‘도사’가 되는 것이다.

산에도 도사가 있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가끔씩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 중에는 보통사람이 사흘 걸려 지나갈 코스를 반나절에 내치는 속보형이 있는가 하면, 수년간에 걸쳐 대간을 유람하며 풍류를 즐기는 스타일도 있다. 육상에 비유하자면 전자가 스프린터고 후자는 마라토너에 가깝다. 이 밖에도 같은 코스를 무수히 오르내리며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조망의 즐거움(청림문화사)’이라는 책을 펴낸 김홍주 선생이 이런 경우일 듯하다.

사람들은 대개 산 정상에서 주변의 산을 바라보는 데 그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가까운 산들의 이름을 새겨보고 큰 산을 중심으로 지맥을 살펴보는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의욕에 그칠 뿐, 실제로 이 과정을 제대로 밟기는 매우 어렵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날씨가 맑은 것도 아니고, 어렵게 정상에 서더라도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도의 그림과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꾼들은 ‘아마도 저 산이 그 산일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만 갖고 산을 내려오곤 한다.

일반적으로 산 정상에 올라 맑은 상태에서 주변 풍광을 보고 싶다면 춥거나 비온 뒤 새벽에 산을 타야 한다. 겨울철 산에 올라본 사람은 추위 때문에 사진기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김홍주 선생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산에서는 정말 묘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어떤 날에는 선명하게 보였던 산이 어떤 날에는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산의 전망을 정확하게 그리려면 적어도 예닐곱 번은 올라서야 한다.

김홍주 선생은 수년간에 걸쳐 이런 작업을 했다. 때로는 이틀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런 고행 끝에 31개의 명산 위에서 산세를 살피며 찍은 사진이 무려 1만여장. 산꾼들은 김홍주 선생의 노력 덕분에 소백산에서 무려 120km나 떨어진 지리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자전거 도시 상주의 풍경

4월16일 오후, 안양에서 상주행 직행버스를 탔다. 버스는 충주를 지나 문경 점촌에 정차한 뒤 상주를 향해 달렸다. 차창 밖으로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과 배꽃이 끝없이 펼쳐졌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 과수원 길로 이따금씩 농부가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저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농촌의 노인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날 것이고, 경쟁력을 잃은 나무는 차례대로 베어질 것이다. FTA(자유무역협정)는 한편으로 새로운 수출길을 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농민들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과연 우리에게는 농촌의 시름을 덜고 도농간 거리를 좁히고 나눔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묘안이 없는 것일까.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자전거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상주시 초입부터 거대한 ‘자전거 부대’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시장바구니를 싣고 가는 아주머니들, 터미널에서 자전거로 환승하는 사람들….

상주시가 자전거 도시로 등장한 데는 지형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상주는 도로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낙동강 물줄기의 길목으로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상주사람들은 일제시대부터 낙동강을 타고 들어온 일제 자전거를 접할 수 있었다. 여기에 상주의 지형이 경사도 5도 미만의 완만한 분지형이다보니, 자전거는 일찌감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1920년대에 상주역 전국자전거경주대회에 당대의 국민영웅 엄복동 선생이 참가한 사실에서 상주와 자전거의 오랜 인연을 엿볼 수 있다.

예로부터 상주는 곶감과 누에고치 그리고 삼베로 유명해 ‘삼백(三白)의 도시’로 불렸다. 하지만 요즘 상주사람들은 여기에 ‘은륜(銀輪)’을 더해 ‘사백의 도시’라고 말한다. 실제로 상주는 가구당 평균 2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선진국 수준에 육박한다. 상주시에서는 자동차가 자전거를 피해 운행하다 보니 교통사고 발생비율이 낮다. 자전거 세워둘 공간이 부족해 자전거 통학을 제한하는 학교도 있다.

‘자전거 여행’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 선생은 자신의 ‘애마’ 자전거를 ‘아날로그의 순수성을 간직한 채 걷기의 원시성을 극복한 도구’라고 평한 바 있다. 실제로 수만 명이 자전거를 타고 저마다 생활터전으로 나서는 상주의 아침 풍경을 보면 그말이 실감난다.

17일 새벽 상주시 화북에서 택시를 타고 늘재로 붙었다. 택시기사는 화북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데, 백두대간 종주자를 만나면 집에서 재워주기도 한단다. 그 이유를 물으니 “백두대간 타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기 때문”이라는 것. 산꾼의 마음을 믿고 방을 내준다는 얘기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까지 챙겨준 택시기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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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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