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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고향집 개 바우

고향집 개 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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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개 바우
며칠 전 시골 고향집에 들렀다. 고향집은 지금 비어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그 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시게 되면서 어머니 또한 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병원살이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분만 사셨던 고향집이 오랫동안 비어 있게 되었다.

고향집에 들어서니 개 바우가 혼자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향집은 비어 있었던 게 아니라 개 바우가 혼자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우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향집 식구는 몇 갑절 늘어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바우가 혼자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이고 타지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 중 어느 누구도 바우가 새끼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어머니조차 병 수발로 경황이 없었던 탓에 바우는 홀로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웃집에 부탁하여 종종 바우에게 사료를 갖다주도록 했지만, 우리 집은 이웃과도 좀 떨어진 외딴집인 데다가 자식들도 모두 외지에 살고 있어 자주 들르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바우를 남의 집에 맡길 수도, 개장수에게 팔아버릴 수도 없으니 바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저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놓을 수 밖에.

바우는 진돗개 품종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우에게서는 진돗개의 영특함보다는 시골개 누렁이의 순박함이 더 잘 묻어났다. 바우는 낯선 사람도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 그저 한두 번 컹컹대다 반갑다며 꼬리를 친다. 이 때문에 바우는 우리 가족들에게 ‘멍청하다’며 구박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바우를 참으로 영특하다고 느낀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도 용케 나를 알아보고 뛰어나와 안기며 반가워하기 때문이다. 몇 번 만난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까지 알아듣는 바우의 영특함에 감탄할 수밖에. 바우가 돌봐주는 이 없이 빈 고향집에서 목줄에 묶인 채 지낸 지가 어느새 반년이 넘었다.

사료조차 제때 얻어먹지 못하였을 텐데도 바우는 나를 보고는 원망하거나 분노하기는커녕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바우가 측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곱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을 때 바우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바우는 저 혼자의 힘으로 새끼들을 낳고, 젖을 먹이며 보살피고 있었다. 목줄 때문에 활동반경이 극히 제한된 데다 제대로 먹지 못했음에도 한 마리의 새끼도 잃지 않았다. 그 힘, 그런 지혜는 어디서 나왔으며 누구에게 배웠을까. 생명의 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바우에게 이토록 놀라운 힘을 갖게 했을까.

아다시피 개는 사람에게 길들여진 동물이다. 사람에게 길들여지면서 육식동물의 야수성을 대부분 상실했다. 그저 인간이 던져주는 먹이를 얻기 위해 꼬리치며 매달릴 뿐이다. 개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들 중에 야성(野性)을 가장 많이 상실한 동물이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장소인 침실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개는 인간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여 생존하지 못하고 다른 존재에 자신의 생존을 의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나는 “자립하지 못하면 꿈에서라도 행복할 수 없다”는 비노바 바베의 말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먹이를 구걸하기 위해 사슬에 묶인 채 꼬리치는 동물이 어디 개뿐이겠는가.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른바 ‘문명인’이라는 우리 인간 모두가 그러한 존재라 해도 크게 지나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현대문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작은 부품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이 과연 자신에게 길들여진 개보다 더 자립적이라고 말할 순 없다.

인간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든 간에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이전에 자연생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불행은 생명의 근원인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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