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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 하고 놀자’

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힘 ‘달의 궁전’

  • 글: 장석주/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힘 ‘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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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힘 ‘달의 궁전’

‘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왜폴 오스터의 소설에 이끌렸을까? 그것은 명확치 않다.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뒤섞는 폴 오스터에 끌려 ‘고독의 발명’에서 최근작 ‘신탁의 밤’까지 독서 행로를 멈추지 못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힘에 전율하고,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오스터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내 핏속에 쉽게 용해된다. 그렇다고 내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성적과 선수들의 시시콜콜한 일화들이 일상적 화제로 떠오르고 저 가장 깊은 곳에 숨은 미국적 정서의 핵심을 꿰뚫는 폴 오스터의 문장에 녹아든 유머를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힘 ‘달의 궁전’
‘달의 궁전’은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는 사라진 아버지, 없는 아버지들도 드물지 않다. 폴 오스터 소설 속의 아버지들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죽은 아버지들은 예기치 않게 나타나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 ‘달의 궁전’의 아버지들이 그렇다. 토머스 에핑은 아들 솔로몬 바버에게 50년 동안이나 죽어서 사라진 아버지이고, 솔로몬도 이 소설의 중심화자인 마르코에게 아주 어렸을 때 죽은 아버지였다. 세 사람은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이라는 혈연의 고리로 연결됐지만 서로 단절된 채, 아니 혈연의 고리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은 채 저마다 삶의 궤도를 돈다. 3대에 걸친 고립·유폐의 삶은 우연과 기구함이라는 외관을 갖고 있지만 그 이어짐은 혈연의 무의식적 호명에 따른 필연적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색의 인간 아버지란 존재

‘달의 궁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이루어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에는 차츰차츰 무일푼으로 전락해 아파트마저 잃고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개 작가의 작품을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각각의 작품들 내면에는 서로 무의식적 의미망(意味網)의 연쇄를 갖고 있는 법이다.

작가의 실명이 그대로 쓰이고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고독의 발명’에서 이미 아버지는 “가장 오래된 기억-아버지의 부재”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를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무색(無色) 인간”이라고 한 표현도 보이는데, 폴 오스터의 소설들에서 반복적으로 아버지가 나오는 걸 보면 아버지란 존재는 작가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원형적 심상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다시 ‘고독의 발명’에서 아버지를 보자. “그의 행동은 거의 완벽하게 예측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가 하는 일은 모두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니, 감정도 없고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는 아들과 유전적·무의식적 연좌제로 묶여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외모와 내면의 기질에서 거울과 같이 상호조응(相互照應)한다. 이 세상의 어떤 삶도 같은 것은 없다. 저마다의 삶에는 “다양하게 형식화된 질료와 매우 상이한 날짜, 속도들”(들뢰즈/가타리)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들은 아버지와 신기하게도 닮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삼투(渗透)한다. 아버지 속에 있는 또 다른 작은 아버지가 바로 아들이다.

폴 오스터는 영화대본인 ‘스모크’에서도 아버지에 관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일화를 등장시킨다.

“25년 전쯤 전에 한 젊은이가 혼자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갔어. 그런데 눈사태가 일어나서 눈이 그를 삼켜버렸고,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어. 그때 그의 아들은 어린 소년이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그 아들은 어른이 됐고 역시 스키를 타게 됐어. 지난 겨울 어느 날, 그는 혼자서 스키를 타고 산 밑을 향해 반쯤 내려오고 있었지. 그러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큰 바위 옆에서 멈췄어. 막 치즈 샌드위치를 꺼내 먹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는 얼음에 묻힌 얼어붙은 시체를 발견했지. 바로 자기 발 밑에서 말이야. 그는 자세히 보려고 허리를 굽혔지. 그런데 갑자기 그는 거울을 보는 것 같았어.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단 말이야. 거기에는 자신이 있었어. 죽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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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석주/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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