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그림으로 그리는 글과 말

  • 입력2004-07-30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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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그리는 글과 말
    지난 6월 수필집을 한 권 내면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날 기념회에 이수성 전 총리가 참석하였는데, 그분이 필자의 시를 낭독하고 싶다면서 모처럼 마련한 자리이니 참석자 모두가 시 한 수씩 낭독하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출판기념회에서의 시 낭송회라. 처음에는 어울릴까 싶었지만 커피와 프림처럼, 육개장과 후추처럼 시 낭송은 그날 자리와 멋들어지게 어우러졌다. 나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모든 사람이 동참하는 자리로 변했고, 정적인 글과 동적인 시 낭송은 맛깔스런 배합을 이뤄냈다.

    이날 참석한 한 분께서 졸작 ‘나의 귀인’을 낭송하였다. ‘당신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가을길 손짓하는 코스모스처럼/ 상공의 찬바람을 가르는/ 기러기 목처럼’이란 구절의 시였다. 이분은 “막 결혼했을 때 어머니께서 제 아내에게 ‘새애기는 코스모스 같다’고 말씀하셨다”며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가 바로 코스모스 같은 귀인이다”고 말해 참석한 부인(婦人)들의 선망과 칭송을 받기도 했다.

    또 탈북자 출신의 한 참석자는 ‘어머니’라는 제목의 북한시를 낭송했다. 그날이 마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꼭 4년이 되는 날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다. 북한식 시 낭송이 연출하는 색다른 분위기에 참석자 모두는 잠시 숙연해졌다. 앞으로 출판기념회를 계획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시 낭송 순서를 꼭 넣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그간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아버지 곁에서 정치수업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글과 강의, 여행을 하는 생활을 하리라 꿈꾸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55세의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혹자는 뒤늦은 감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명한 골퍼 잭 니클라우스도 “몇 번째 생일인지 셀 것이 아니라 항상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생에는 절대 늦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주저없이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어릴 적 고향과 식구, 소중한 사람들을 추억하는 글, 그리고 언론매체에 실렸던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 등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어떻게 보면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자서전을 내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필자의 비법(?)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성공하였다는, 판에 박은 듯한 자서전은 이제 좀 신물이 난다. 그보다는 어릴 적부터 틈틈이 써놓은 감성적인 글과 그때그때의 사회상에 대해 적어놓은 글을 모아 책을 꾸미는 것이 독자의 관심을 끌 것 같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써온 글들은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듯한, 혹은 북부유럽의 피오르드 계곡의 유리물에 자신을 투영하는 듯한 기록물이 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한편의 동화처럼 담은 책은 작품성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장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날 글과 말의 향연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는 글과 말의 생성(生成)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말을 하는가. 왜 글을 쓰고 왜 말을 하는가. 요즈음은 표현의 시대이다.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을 통해 조리 있고 맛깔스럽게 전달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미숙하나마 어릴 적부터 꾸준하게 글을 써왔고, 또 강연이나 강의를 자주 하는 필자의 경험이 글과 말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나만의 비법에 대해 쓴다.

    필자는 그림을 통해서 글과 말을 생성한다. 여기서 그림이란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을 마음에 비추어 그림으로 그려낸 후 그것을 메모지에 옮긴 것을 말한다. 일기를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글 쓰는 습관과 글 쓰기 전단계라 할 그림이 그려지게 마련인데, 필자는 이를 ‘글의 거울’이라 부른다.

    졸작 ‘항주(杭州)에 와서’란 시를 쓰게 된 경위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의 명소인 항주는 중국 저장성 북부에 있는 도시로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下有蘇杭)’고 불리던 곳이다. 원나라 때 항주를 다녀간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는 항주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 항주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릴 때 읽은 ‘수호지’의 노지심이 승정한 육화탑이 있었다. 그 탑을 보는 순간 아련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면서 여러 인물이 그림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지심을 비롯해 수없이 명멸해간 한 시대의 영웅들…. 나는 비가 내리는 서호(西湖)의 선상에 서서 이 머릿속 그림을 작은 메모지에 묘사해두었다.

    별무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벌판에 서 있는 부녀의 모습을 그린 메모, 또 남쪽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해변의 와상(臥床)에서 사랑을 구하는 모습을 그린 메모를 보고서도 나는 시를 지었다.

    ‘구름이 가는가/ 앞산이 가는가/ 구름이 연 날개 달고/ 지나가며/ 산머리를 슬쩍 만진다’는 구절의 ‘늦은 사월 봄 풍경’은 골프 라운딩 중 골프장 풍경을 먼저 마음속 거울에 비추어보고 메모지에 그림을 그린 후 지은 시이다.

    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 원고를 쓸 때나 글을 읽을 때 안경을 쓴다. 그런데 안경을 쓴 채로 강연이나 강의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가급적 할 말을 외우는 편이다. 주례나 축사, 특별강연도 원고를 보지 않고 하는데 어떤 분들은 이것을 신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연할 때도 시를 지을 때처럼 먼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린다. 강연에도 서두가 있고 본론이 있으며 결말이 있지 않은가. 또한 듣는 사람 입장이 되어 강연의 ‘그림’을 그려본다. 그런 후 강단에 서서 미리 그려놓은 그림을 말로 옮긴다. 흰 도화지에 산과 벌판, 꽃과 나무를 그리는 것으로 강연 내용을 채우고 마지막으로 그 도화지 위를 거닐어보는 것으로 강연을 끝맺음하는 것이다.

    글과 말, 그리고 그림은 모두 자신의 내면적 소양과 지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소양과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그림을 그려보는 것에 익숙해야 하며 그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바로 설계의 단계이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나 미술가라 하더라도 설계의 습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막연히 떠오른 구상은 그저 혼란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내면적 소양과 지식을 기르는 방편으로 독서를 권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책을 많이 읽고 읽은 내용을 정리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필자는 예전부터 ‘귀록(貴錄)’이란 제목을 단 공책에 읽은 내용을 적어놓는데, 이것이 소위 독후감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할 때 매우 중요한 지식의 원천이 된다.



    이렇게 수없이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하면서 글을 쓰고 말할 거리를 생각하며 대화하다 보면 가족(family)과 친구(friend), 그리고 신뢰(faith)가 충만한 거짓(lie)이 바로 인생(life)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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