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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내 일생의 타이틀

내 일생의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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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의 타이틀
‘살아진다’는 말이 문법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살아왔다’라는 능동태보다 ‘살아져왔다’ 정도의 수동태가 더 맞지 않나 여기게 된다. 하는 일, 삶의 방식, 성격, 심지어 가치관이나 세계관까지 무엇엔가 떠밀려서, 혹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져온 듯 싶으니 말이다. 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이름에는 대략 다섯 개의 타이틀이 붙어 다닌다. 시인, 문화평론가, 출판평론가, 방송인, 음악칼럼니스트. 이렇게 여러 개의 타이틀을 가졌다는 건 어느 하나 뚜렷한 타이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평을 쓰면 ‘출판평론가’, 음악원고를 쓰면 ‘음악칼럼니스트’, 장르가 애매하면 ‘문화평론가’ 하는 식이다. 원고를 쓰거나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직함을 뭘로 달까요?’ 민망한 일이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아무거나 편한 대로 쓰세요….’

며칠 전 종로 세운상가 앞에서 전경들에게 불심 검문을 당했다. 부스스하고 초라한 차림에 장발을 휘날리는 외양이 아마도 범죄자가 망치나 칼 같은 범죄도구를 구입하러 서성거리는 모습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 창피하여라. 잔뜩 주눅든 채 주민등록증을 건네면서 나는 “저어, 방송진행잔데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전경 셋은 “아, 방송이요?” 하면서 저희들끼리 비쭉 웃는다. 어쨌든 아무 일 없이 풀려나긴 했지만, 나를 보내놓고 그들끼리 킬킬거렸을 것이다. ‘네가 방송진행자면, 나는 박신양이다’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는 3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현역 방송인이 맞다. 매일 아침 FM라디오에서 음악DJ를 하고, 또 매주 TV 토론 프로그램과 라디오 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경들에게 그런 반응을 얻은 까닭은, 아마도 너무나도 ‘비(非)방송스러운’ 행색 탓일 게다. 나는 자동차도 없고, 싸구려 밥집만 드나들고, 1만원짜리 남방셔츠 하나로 한 계절을 때우며 산다.

방송이 직업 중 하나가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회사원 시절 라디오에서 10분짜리 책 소개 코너를 맡고, 또 FM라디오에서 선곡 아르바이트를 한 게 방송 일의 시작이었다. 뜻밖에 진행자 자리를 제의받고는 회사 월급과 출연료 사이에서 고민하다 좀더 많이 주는 쪽을 택한 게 방송이었다. 하지만 단 6개월 만에 ‘잘리고’ 나서의 그 황당함이라니. 이후 한때는 일주일에 일곱 군데의 프로그램에 회당 5만원짜리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9년이 지났다. 이제는 방송일이 매우 익숙해졌지만 언제 잘릴지, 잘리게 되면 다른 일을 맡게 될지 막연하고 불안한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이유로든 ‘프로’를 택했다는 방송인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럽고 존경스럽다.

출판평론가 타이틀 역시 우연히 얻게 됐다. ‘책하고 놀자’라는, 국내 방송 사상 최초의 데일리 책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된 것이다. 프로그램은 꽤 성공적이었고, 각종 서평 요청이 밀려들었다. 심지어 동아일보에서 ‘출판자문위원’이라는 타이틀까지 안겨 줘 한동안 막연한 원고를 꽤나 휘날린 적도 있다. 대학교수가 아니면 전문가일 수 없는 국내 풍토에서 가령 ‘담배의 역사’ ‘성의 풍속’ ‘법정스님 에세이’ 같은, 분야가 애매한 책은 온통 내 차지였다. 어떤 지면에서는 김치에 대한 글까지 쓴 적도 있다. 그렇게 던져주면 썼다. 달리 도리가 없었다.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에는 약간의 역사성이 깃들여 있다. 1980년대 초 신군부의 ‘언론대학살’ 이후 자유기고가라 불리는 일군의 필자가 등장했다. 신문사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생계수단으로 각종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일컫는 칭호가 자유기고가였던 것이다. 당시 자유기고가들은 그것이 ‘백수’를 뜻한다고 말하곤 했다. 1990년대 접어들어 백수 자유기고가를 약간 격상시켜 표현한 것이 바로 문화평론가다. 여기엔 ‘교수는 아니지만 지식사회의 일원’이란 함의도 들어 있다. 박사 실업자가 양산된 이후의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어떤 잡지의 여기자가 그동안 즐겨 쓰던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내고 문화평론가 타이틀을 붙여줬는데, 그 기자의 변(辯)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시인은 너무 고리타분하잖아요.” 시인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멋진 존재로 알고 성장기를 보낸 내게 그의 말은 충격이었다.

이제는 시를 쓰지 않으니 ‘시인 김갑수’가 잊혀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웬만하면 시인으로 불리길 바란다. 사춘기 시절, 시로부터 강력한 불세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89년 첫 시집을 내고 난 뒤부터는 시에 대한 미친 듯한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이제는 읽지도 쓰지도 않은 채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간혹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내 이름 밑에 걸리면, 나는 옛 여자를 떠올리는 심정이 되곤 한다. 그녀를 다시 만날 길은 없는 걸까, 그녀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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