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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논쟁 불러일으킨 영화 ‘화씨 9/11’

예술의 얼굴을 한 ‘정치적 폭탄’

  •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dictee@empal.com

뜨거운 논쟁 불러일으킨 영화 ‘화씨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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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 일가와 부시 대통령 가문의 유착관계를 폭로하고, 테러에 대한 미국민의 공포심을 권력의 기반으로 악용하는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 ‘화씨 9/11’.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백악관을 겨냥한 정치적 수류탄’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노골적인 反부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뜨거운 논쟁 불러일으킨 영화 ‘화씨 9/11’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 전부터 세상은 두 시간이 넘는 이 다큐멘터리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언론도 시사회 직후 뜨거운 반응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지금껏 공개된 공식 경쟁작들 중에서 가장 오랜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것은 확실히 진풍경이었다. 15~20분이나 박수 소리가 시사회장에서 터져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 마이클 무어가 레드 카펫을 밟으며 퇴장할 때 장내엔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왔다. 해당 영화의 주제곡이 흘러나오는 칸의 관례를 깬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화씨 9/11’의 그랑프리 수상 후 각종 논평이 쏟아져나왔다. 그중 상당수는 이 영화가 미칠 파장에 관한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화씨 9/11’이 백악관을 겨냥한 정치적 수류탄이 될 것”이라 논평했고, ‘뉴욕 타임스’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칸에서 정치적 폭탄을 터뜨렸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랬다. 이것은 예술적 폭탄이 아니라 정치적 폭탄이었다.

그러나 ‘화씨 9/11’이 정치적 폭탄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로 칸에 오기까지 마이클 무어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배급을 맡기로 했던 디즈니사가 부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이 영화 배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미국 대선 전에 상영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어는 “디즈니사가 영화 상영을 막으려는 백악관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화씨 9/11’은 미국 대선 전에 반드시 상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강력한 주장은 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디즈니로부터 ‘화씨 9/11’의 판권을 재매입한 미라맥스 대표 하비와 보브 와인스타인 형제가 배급을 위해 구성된 그룹을 통해서 2004년 6월25일 미국 전역에 개봉할 것임을 밝혔다. 무어는 한 인터뷰를 통해 와인스타인 형제를 각각 프로도와 샘에, 배급사들을 반지 원정대에 비유하였다. 그렇다면 불의 산에 거주하는 악마 사우론은 말할 것도 없이 부시 대통령일 것이다.

부시를 청산하기 위해 만든 영화

2004년 6월25일 마침내 ‘화씨 9/11’은 극장에 걸렸다. 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많은 논평과 비판과 기대가 교차했다. ‘화씨 9/11’은 이런 반응을 단번에 녹일 만한 뜨거운 영화였다. 미국 전역에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 어쨌든 한 달 동안 수많은 관심을 끌었으니 그 자체로 홍보를 하고도 남았다. ‘화씨 9/11’은 개봉 첫 주말 사흘 동안 모두 218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거두며 정상을 차지했다. 이로써 이 영화는 미국 박스오피스 역사에서 1위에 오른 첫 번째 다큐멘터리라는 영광을 안게 됐다.

‘화씨 9/11’은 미국 내에 머무르지 않고 전세계로 배급되기 시작했다. 배급사들은 전쟁 반대 분위기가 달아오른 7월과 8월에 전세계 극장가로 영화를 배달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는 영광의 호칭보다는 ‘반(反)부시’ 영화라는 것이 홍보의 핵심이었다.

‘화씨 9/11’은 과거의 한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건 모두가 단지 꿈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플로리다를 축복하시길, 감사합니다! 지난 4년은 정말 없던 일이었을까요? 벤 애플렉이 있군요. 제 꿈에 종종 나오지요. 그리고 택시드라이버, 로버트 드 니로. 그도 저기 있군요. 그리고 스티비 원더. 그도 행복해 보입니다.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요. 그것은 꿈이었을까요? 아니면 사실이었을까요? 2000년 선거날 밤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무어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승리를 예감한 앨 고어 진영의 풍경이다. 방송사들도 한결같이 고어의 승리를 예상했다. 앵커들은 “뉴욕에서는 앨 고어가 승리할 예정입니다”고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잠시 뒤 한 방송사에서 부시의 승리를 예언하기 시작했고, 판세가 흔들리더니 법정에서 엉뚱한 결론이 내려진다. 정말이지 마이클 무어는 할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서라도 부시의 승리를 막고 싶었을 것이다. 무어는 고어의 어이없는 패배를 영화 초반부에 비중 있게 다루면서, 9·11 테러의 참사와 맞먹는 이미지로 배치한다.

무어는 이미 4년 전 선거 결과가 부당하다며 “부시를 백악관에서 쫓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한 바 있다.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전세계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아시오, 부시”라며 경고를 보냈다. 그가 되찾고 싶은 것은 선거권을 지닌 미국 시민으로서의 양심과 권리다. ‘화씨 9/11’은 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한 뜨거운 책임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는 것이며, 이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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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dicte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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