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테마 유럽기행

‘태양왕’의 분신 베르사유 궁전

절대권력의 절정과 몰락 함께한 파란의 역사공간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태양왕’의 분신 베르사유 궁전

1/5
  • “짐은 곧 국가”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은 그가 50년간 국력을 온통 쏟아 부어 지어올린 역작이다. 섬세하고 우아하고 에로틱한 로코코풍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 하지만 베르사유의 화사한 얼굴 한켠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개화(開花)와 낙화를 함께 목도한 한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에.
‘태양왕’의 분신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가 국력을 온통 쏟아 부으면서 지은 베르사유 궁전. 대단한 위용을 자랑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무소불위를 자랑하는 권력의 절정과 그 처참한 종말을 함께 보여주는 베르사유 궁전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사정없이 머리 위를 때리고 있는 데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들은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북을 꺼내 읽어준다. 궁전 방문에 앞선 사전 오리엔테이션이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스페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돌아보니 서로 은근한 눈길을 주고받는 젊은 연인들도 더러 섞여 있다. 사랑을 나누기에도 바쁠 그들이 왜 이곳으로 발걸음한 것일까. 권력의 비밀을 알기엔 아직 어린 듯한데.

베르사유 궁전은 “짐은 곧 국가다”라며 절대권력을 휘두른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50년 가까운 세월(1662∼1710) 동안 국력을 온통 쏟아부으며 파리 교외에 지은 궁전이다. 파리 시내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궁을 찾은 이들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정문의 쇠창살은 루이 14세가 자신의 심벌로 삼은 아폴론으로 장식돼 있다. 아폴론은 고대 로마의 태양신이니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눈에 보이는 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런 그가 궁전 앞 빅투아르 광장 한가운데서 말을 탄 자세로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카메라 세례도 받는다.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는 ‘ㄷ’자 형태의 이 거대한 3층 구조 건물복합체는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궁정사회’란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왕의 집인 동시에 궁정사회 전체의 숙소이기도 했다. 일종의 하숙집이라고나 할까. 루이 14세는 신하들이 궁정에 머무는 것을 반겼고 베르사유에 숙박하고자 하면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서 지체가 높은 귀족은 궁정에 체류하거나 시내의 ‘호텔(저택)’에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왕에게 매일 아침 눈도장을 찍어야 신분의 안전을 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것은 지방에 정치적 경제적 근거를 둔 봉건귀족들의 진을 빼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왕의 전략이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에선 “귀족이 자기 고향에 살면 마음은 편하지만 먹고살 길이 없다. 반대로 궁정에 출입하면 먹고 살 걱정은 면하지만 노복(奴僕)으로 전락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하지만 귀족의 힘을 빼앗은 결과 시민의 힘을 키워 프랑스혁명을 촉발, 왕가의 파멸을 가져왔으니 세상일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호사스런 권력자의 공간

왕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진 ‘왕의 아파트’는 궁전 중앙의 2, 3층에 집중돼 있다. 각 층에는 태양신 아폴론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비너스·다이애나·마르스·머큐리 등의 방과 전쟁의 방, 평화의 방, 귀족의 방, 예배당 등이 붙어 있는데, 하나같이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둥근 기둥과 장식이 촘촘히 박힌 샹들리에, 황금빛 커튼, 클래식풍의 천장화와 조각 등은 이곳이 권력자의 공간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왕의 아파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침실과 거울의 방이다. 동쪽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듯한 건물의 3층 중앙에 자리잡은 왕의 침실은 아주 넓다. 하지만 침대는 한 개다.

동양의 왕이 침실을 따로 두지 않고 밤마다 마음에 드는 여인의 방으로 찾아가 잠을 잤던데 반해 서양의 왕은 이렇게 자기만의 방을 가졌다. 왕비 또한 별도의 침실을 가졌다.

왕의 침대는 서쪽 벽에 바싹 붙은 채 머리를 서쪽에 두게 돼 있다. 왕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햇빛을 받도록 돼 있는 것이다. 그 앞으로는 금실로 짠 두 폭의 대형 커튼이 드리워져 있지만 낮 시간이라 앞부분을 걷어놓아 침대에 새겨진 아폴론 문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누가 뭐래도 ‘태양왕(Sun King)’이었던 것이다.

왕은 보통 8시에 일어났다.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침대 아래쪽에서 잠을 잔 제1 침실시종이 깨워야 일어났다. 침실 문은 시동이 열었다. 왕이 기침(起寢)하면 제2 시종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제3 시종은 문안인사차 찾아온 내방객들을 맞았다. 문안인사는 앙트레(입장순위)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졌다. 루이 14세가 숨을 거둔 곳도 바로 이 침실이었다. 자비와 순결, 풍요 등 왕비의 덕목을 기리는 그림이 그려진 왕비의 침실은 루이 15세를 비롯해 19명의 왕자와 공주가 태어난 곳인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외국 사신 접견, 대규모 파티, 그리고 크고 작은 무도회가 열리던 거울의 방은 말 그대로 거울과 유리, 크리스털 천지다. 곡면의 천장을 뒤덮은 그림, 길게 매달려 흔들거리는 샹들리에, 줄지어 선 둥근 기둥, 남쪽의 정원을 향해 난 17개의 대형 유리창이 어울려 호사스러움을 자아낸다. 권력의 속성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장중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루이 14세가 등극한 이래 경쾌하고 섬세하고 우아하고 에로틱한 로코코 양식이 내부 장식을 지배하면서 장중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코코 양식은 여성 취향의 살롱문화와 어울려 당시의 유행을 선도했다.
1/5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목록 닫기

‘태양왕’의 분신 베르사유 궁전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