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한국 영화, 고사 위기의 음반·출판 전철 밟나?

다양성 부재, 관객 취향에만 충실, 감독의 문제의식 거세

  • 글: 임근혜 자유기고가 ramjui92@hanmail.net

    입력2004-09-24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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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음반, 출판, 영화 중 현재 호황을 누리는 것은 영화뿐이다. 그런데 문화평론가들은 영화 역시 조만간 음반이나 출판처럼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00년대 영화가 호황기이던 1990년대 음반·출판계 상황과 놀랄 만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고사 위기의 음반·출판 전철 밟나?
    2004년 초 우리는 행복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한국영화계에 전국 관객 1000만을 넘어서는 영화가, 그것도 연달아 탄생하고 있었다.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해 자국 영화의 점유율을 60% 이상 유지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이란 언론의 찬사를 듣다 보면 충무로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7월 중순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한 ‘스크린 쿼터 축소철회 영화인 시위’를 보면 충무로의 경쟁력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호무역의 혜택이 완전히 없어지고 주식시장의 사활이 외국인 투자자에 달려 있는 오늘날, 시장 점유율 60%를 넘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스크린 쿼터제 ‘철폐’도 아닌 ‘축소’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주장하듯이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해 문화 주권을 지키려는 애국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할리우드 자본의 막강한 힘에 맞서기에는 아직 충무로 자본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한국 영화의 관객 흡인력이 약하기 때문인가.

    이 글은 1999년 ‘쉬리’에서 2004년 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의 흥행 성공과 그 산업적 성장이 과연 한국 영화계와 영화사에 장밋빛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영화산업이 한때 호황을 누리다가 현재는 고사 직전에 놓인 음반산업과 출판산업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1990년대 신세대 등장



    1990년대,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몰락했으며 한국에서는 30년간 지속된 군인정치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등장했다.

    문화를 옭아매온 이데올로기는 진부한 것이 됐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진지한 소통을 요구하는 문학이 아닌 대중문화를 통해 세상을 읽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문학 전문 계간지가 주를 이루던 이전과 달리 1990년대에는 대중문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계간지가 대거 출현했고 대중문화 비평가임을 자칭한 지식인들이 각 장르별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쏟아냈다.

    이들은 문필가를 꿈꾸는 세대는 이젠 없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대중문화의 부흥과 함께 연예인이 한국의 10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으로 부상했으며 이전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전문 백댄서가 10대 소년소녀들의 꿈이 되기도 했다. 또 대기업이 직접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고 음반 레이블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문화의 하드웨어적 시스템이 점차 갖춰졌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공원’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일구어낸 업적과 비교되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공장을 세워 밤새 일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보다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는 한국’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서태지 세대는 한국의 90년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화 아이콘이다. 강렬한 비트와 랩, 현란한 댄스와 무질서하게 겹쳐 입은 티셔츠. 어른들은 이 정신 없는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찼지만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30대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세대를 뜻하는 용어 ‘386’은, 당시 막 출시된 최신형 486 컴퓨터와 대비되면서 80년대적인 것을 구시대적이고 버려야 할 것으로 규정하면서 1990년대의 ‘신세대 문화’를 더욱 부각시켰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이 땅의 새로운 세대는 사회적 도덕이나 이성적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더욱 익숙했다. 이들에게는 진지함보다는 화려함이,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어울렸다. 책을 읽는 신세대보다는 이어폰을 꽂고 랩을 즐기거나 혹은 영화를 보는 신세대가 주를 이루었다. 운동권의 대명사이던 총학생회도 정치적 집회보다는 영화제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대학로에서 화려한 댄스 공연을 펼치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신세대는 이전 세대와 취향도 달랐다. 그들의 새로운 취향에 따라 그 동안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유럽 영화가 문화원이나 시네마테크가 아닌 일반 극장에서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1992년 프랑스 작가주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흥행 성공이 그 예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내뿜는 문화에 대한 욕망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이 된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열광한 문화 콘텐츠는 대중음악에서 먼저 나타났다. ‘난 알아요’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하고 세련된 무대매너를 선보였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이들은 음반 발표 후 활동기와 다음 음반 발표 시기 사이에 휴식 시간을 두고 그것을 방송에 공표해 팬들이 기다리게 만드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인이다)로 마케팅에서 성공했다.

    이후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서태지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더블 밀리언셀러(200만장 이상)를 기록한 김건모, 1990년대 중반 이후 10대의 우상이었던 댄스그룹 H.O.T와 그들을 벤치마킹한 여러 그룹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 서태지가 있다.

    서태지는 당시 발라드(포크)와 트로트로 양분된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랩과 힙합 문화를 소개했고 10대 오빠부대를 형성했다. 그들의 공연에서 그간 가수의 들러리에 불과하던 댄서의 위상이 비로소 공고해졌으며 이른바 래퍼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당시 문화비평가들은 서태지를 ‘주류 질서의 전복자’라 부르며 그의 예술적 성과를 칭찬했다.

    서태지와 함께 1990년대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은 또 하나의 문화상품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 이미 새로운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서 멀어진 것으로 평가받던 소설의 약진은 외형상으로는 의외지만, 하루키 소설의 감수성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읽히는 것 역시 지난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의 출현임을 알 수 있다.

    하루키의 장편 ‘상실의 시대’는 1980년대 말 정식 계약도 없이 세 곳의 출판사에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를 달고 출간됐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나온 뒤 출간 첫해에만 3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바로 이 지점에 우리가 하루키 현상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학생운동이 일본의 대학가를 휩쓸던 1970년대에 와세다대학을 다닌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199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크게 어필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젊은 감성이 ‘무엇을 잃었다는 것’에 자기 동일시를 했음을 의미한다.

    규모만 커진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거품 속에서 원인도 모른 채 흔들리는 도시적 감수성은 하루키 문학 전체를 관통한다. 거칠게 일갈하자면 하루키 현상이 시작되면서 80년대적이라 할 만한, 사회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표명하던 한국 소설은 사라지고 하루키적인 새로운 소설의 경향이 한국 문단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재즈와 영화로 대변되는 대중문화를 즐기며 철저히 자기의 내부를 지향하는 ‘개인’이다. 가족이 모두 거세된 채 자신의 내면 욕망에 충실한 하루키의 인물들과 1990년대 한국 문학의 인물들은 서로 닮았다. 그 인물들은 바로 서태지를 소비하는 이 땅의 신세대가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이야기를 다룬 일명 후일담문학에서 시작해 기존의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영화적 글 쓰기 혹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글 쓰기를 시도한 신세대 작가군의 작품들, 그리고 사소설적 경향을 띤 여성 작가들의 약진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한국 문학(혹은 대중문화)의 키워드는 시종일관 ‘개인’과 ‘자의식’ ‘욕망’이었다.

    90년대 문화 반영한 2000년대 영화

    그렇다면 음악과 문학이 쥐고 있던 문화의 주도권이 영화로 옮겨간 것은 언제일까.

    실제 1990년대에 시작된 새로운 문화의 흐름에 영화는 주류로 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계에도 199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가 일기 시작됐다.

    한국 영화의 구조적 재편에 대한 인식은 1989년 미국 영화사인 UIP가 한국 영화시장에 할리우드 영화를 직배하면서 싹텄다. 한국 영화관은 1년 365일 할리우드 영화만 상영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 영화사들은 한국 영화 제작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수입 배급해 수익을 얻었던 이들이 직배체제로 큰 타격을 입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영화를 수입하던 자본을 바탕으로 한국에도 할리우드식 기획영화가 등장했고 영화는 서서히 한국 문화의 중심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행한 개인과 자의식, 욕망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감수성과 한국 영화계의 내부적 변화를 고려한다면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의 성공과 이후 한국 영화의 성장은 어쩌면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쉬리’를 비롯한 최근의 흥행작들이 택한 이야기 구조가 1990년대 각광받던 신세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영화, 고사 위기의 음반·출판 전철 밟나?

    2000년대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1990년대 유행한 신세대 문학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과 맞닿아 있다. 사진은 영화 ‘싱글즈’의 한 장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불리는 ‘쉬리’는 자본이나 기술력이 월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차별점을 종래 액션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남녀 주인공의 애정과 갈등이라는 콘텐츠로 메웠다. ‘쉬리’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형적 구도인 선과 악의 대립조차 분명하지 않다. 남녀 주인공은 서로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도 갈등한다. 남한의 비밀요원인 남자 주인공의 삶은 1990년대 유행한 신세대 문학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에 맞닿아 있다. 가족도 형제도 등장하지 않는 남녀 주인공은 결혼은 안중에도 없고 스스럼없이 동거를 한다.

    탈역사화한 개인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는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나 ‘실미도’ ‘태극기’도 마찬가지다. ‘JSA’에 등장하는 남북한 군인들은 남과 북을 떠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권총을 겨누는 장난을 칠 만큼 친밀하다. 영화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의 산물인 ‘JSA’라는 역사적 시공간보다 개인의 갈등과 캐릭터 묘사에 치중한다.

    북파 간첩 양성과 실패의 전말을 다룬 ‘실미도’ 역시 부당한 정권이 만들어낸 불행을 표현하면서도 부대원 개개인의 이야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전쟁 자체보다 형제간 인간적 갈등이 큰 축을 이루는 ‘태극기’도 앞의 영화들과 동일한 궤를 그린다. 분명 한국사의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음에도 역사보다는 개인에 주목하며 그들의 캐릭터와 갈등의 묘사에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보다 과장된 액션 장면조차 이들 영화에서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분단을 다룰 때도(‘JSA’ ‘태극기’), 조직폭력배를 다룰 때도(‘친구’ ‘조폭 마누라’), 연쇄살인사건을 다룰 때도(‘살인의 추억’), 비뚤어진 반공의식에 희생당한 개인을 다룰 때(‘실미도’)도 ‘개인’이 가장 중요한 코드다. 결국 ‘쉬리’ 이후 ‘JSA’ ‘친구’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살인의 추억’ ‘바람난 가족’ ‘올드 보이’ ‘실미도’ ‘태극기’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한국 영화의 흥행 돌풍을 주도한 영화들의 면면에는 한결같이 탈역사화한 개인이 존재한다.

    소재의 측면에서 기존 영화에 비해 좀더 신세대적인 것을 표방하는 영화도 등장했다. 신세대의 새로운 사랑법을 다루었다고 해서 원작 소설부터 화제를 모았던 ‘결혼은 미친 짓이다’나 ‘쿨하게’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궁상맞지 않은 싱글맘의 탄생을 암시하는 ‘싱글즈’의 흥행 성공은 1990년대 신세대 문화에서 단초를 얻어 만들어진 문화상품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콘텐츠 부재가 음반·출판의 침체로

    반면 1990년대 문화를 이끌었던 음반이나 출판업계는 현재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망이 보편화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mp3는 음반시장의 강력한 적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초 서태지의 등장으로 호황을 누리던 음반시장은 2002년엔 전년대비 규모의 25%, 지난해는 45%가 감소하면서 고사(枯死) 위기에 몰렸다고 할 정도다.

    서태지 이후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걸출한 아티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도 음반업계 불황의 한 요소다. 그 원인을 들여다보자면 그런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자본이 댄스 가수 일변도의 아류들을 만들어낸 데 있다 할 것이다.

    세련되고 전문적인 랩과 댄스를 동시에 보여줬던 서태지의 성공이 오히려 완성도 낮은 댄스그룹의 양산을 낳았다. 급조된 댄스그룹의 음반에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좋아하는 곡만 쉽게 다운받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mp3의 유통은 음반시장을 급속히 냉각시켰다.

    1980년대 소설의 흐름을 거부하고 ‘신세대 문학’이라는 흐름을 만들었던 1990년대 한국 문학도 현재 상황은 음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은희경은 비록 하루키만큼은 아니지만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가였다. 또 후일담문학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공지영,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그린 신경숙, 해학적인 입담을 구수하게 펼치던 성석제 등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제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이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을 대체할 만한 참신한 젊은 작가들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상에서 정이현이라는 참신한 작가를 발굴했던 ‘문학과 지성’사는 올해 신인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국 문학 역시 전반적인 콘텐츠 생산력 약화에 시달리고 있고, 그 빈자리를 일본 등 외국의 번역문학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지키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 영화. 그럼에도 영화산업 역시 한때 호황을 누리다가 ‘고사’ 직전에 놓인 음반이나 출판계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선 한국 영화시장의 다양성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영화투자사 IM픽쳐스가 발표한 ‘2004년 상반기 영화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영화 관객 수는 전년보다 51.6% 늘어난 1444만7905명,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16%포인트 높아진 63%에 달했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시장의 93%는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 즉 한국의 영화시장은 규모에 비해 다양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기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감독의 예술’이 아닌 영화

    한국 영화 또한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의 장르가 흥행하면 비슷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또 영화 관객의 주축이 20∼30대다 보니 로맨틱 코미디가 많이 제작된다. 또 최근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성행하는 것은 한국 영화업계가 10대 관객에 의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청소년들, 특히 10대 여학생들의 판타지를 묘하게 자극하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10대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충분한 요인이 된다. 20∼30대를 대상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나 10대를 겨냥한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들이 열망할 만한 스타가 출연한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처음부터 흥행을 염두에 두고 기획하고 마케팅에 치중한 영화에 감독의 문제의식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영화를 흔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때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은 감독이 고민하는 문제의식을 스크린 위에 표현하고 이를 관객과 소통한다는 뜻이다.

    독립영화도, B급 영화도 설 자리가 없는 한국의 영화산업 구조에서 기획영화 혹은 장르영화의 성공은 ‘산업’적 성공일 뿐 오히려 감독의 예술로서 영화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요소가 된다.

    고민, 자기성찰, 상상력

    지난 7월15일 모 일간지에 실린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의 인터뷰 기사는 이런 우려가 지나치지 않음을 확인시켜준다. 자신의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이 영화화된 데 대해 귀여니는 “소설 속의 대화가 거의 그대로 대사로 옮겨지는 등 원작에 충실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밝히고 있다. 소설 줄거리가 그대로 화면에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영화를 보는 의미는 ‘활자 읽기’를 대신한 ‘영상 보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원작에 대한 해석에 감독의 문제의식이 실리고, 그러기에 관객은 소설이 아닌 영화를 보는 게 아닐까.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해서 영화가 소설이 가진 문제의식까지 그대로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자와 감독 사이의 갈등이야말로 영화의 존재 이유다.

    원작에만 충실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감독의 작가의식과 성찰이 개입될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장르화된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 걸친 현상이다.

    다시 이 글의 원초적인 문제로 돌아가자면, 영화산업의 규모가 몰라보게 성장했는 데도 영화계가 스크린 쿼터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영화산업이 다양한 콘텐츠를 견인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자본 규모나 기술력에서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영화 산업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얼마나 진지하게 자국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산업의 규모가 클수록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콘텐츠의 획일화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작가’는 없고 ‘상품’만 남게 된다. 그것이 문화산업의 본질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재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과 자기 성찰에 근거한 상상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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