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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 하고 놀자’

두 권의 ‘황진이’를 읽는 법

남한 여류소설가의 섬세한 속삭임 vs 북한 원로 남성작가의 선 굵은 외침

  •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두 권의 ‘황진이’를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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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황진이’를 읽는 법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전경린의 황진이(왼쪽)와 홍석중의 황진이.

갑자기 황진이 바람이 불고 있다. 황진이는 누구인가. 여성, 그것도 조선시대의 여성이다. 신분 사회의 계율이 엄혹한 조선 중기에 성은 아비의 것을 받고 신분은 기생인 어미의 것을 따른 불행한 여성이다. 황진이는 그 불행의 어둠을 자양분 삼아 조선의 명기(名妓)이자 빼어난 시편을 남긴 시인으로 피어난 조선의 해어화(解語花)다.

지금 우리 서점에서는 남북한 작가가 각각 써낸 두 개의 ‘황진이’가 팔리고 있다. 하나는 남한의 여류소설가 전경린이 쓴 ‘황진이’(이룸·2004)고, 다른 하나는 북한 작가인 홍석중이 쓴 ‘황진이’(대훈·2004)다. 두 소설은 황진이라는 여성의 삶을 다루면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황진이를 상사(相思)하다 죽은 총각의 상여가 대문 앞에 멈춰섰을 때 황진이의 내면을 그린 대목을 비교해보자.

“여보세요, 나는 당신을 잘 모릅니다. 한번 얼핏 뵈온 일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죽음으로 보여준 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압니다. 유명의 길이 달라 지금은 당신의 그 진실한 사랑에 보답할 길이 전혀 없군요. 혹시 이후 저승에서 다시 만나뵙게 될는지. 이승에서 보답할 수 없었던 사랑을 저승에서는 꼭 갚아드리렵니다. 그 약속에 대한 표적으로 제가 마련해 가지고 있던 혼례 옷을 당신의 령전에 바치오니 알음이 있으면 받아주세요. 인명이 하늘에 매였다고는 하나 인정에 어찌 애닯지 않겠나요. 생사가 영 리별이라고 하지만 후생의 기약이 있으니 바라옵건대 어서 떠나세요.”(홍석중 판본)

“나와 남이 다르거늘, 저마다의 목숨이 다르거늘, 홀로 사랑하고 내 잔에 피를 쏟아 붓고 간 이시여, 어찌 이런 사무친 일이 있단 말이오. 빌고 또 비나니, 맺힌 것을 푸소서. 이승의 일은 까맣게 잊고 훨훨 극락왕생하소서. 정녕 혼자 못 가겠거든, 내 넋까지 거두어 가소서. 정녕 혼자 못 가겠거든, 내 넋 속에 둥지 틀고 원 없이 살다 가시오.”(전경린 판본)

표현은 다르지만 황진이의 절절한 심정은 두 책에 비슷하게 드러난다. 또 있다. 두 작가가 황진이의 ‘첫 남자’로 황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연모했고 죽을 때까지 조력자가 된 인물로 만들어낸 ‘수근이’와 ‘놈이’의 존재가 그렇다. 물론 이들은 철저하게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창안해낸 인물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닮아 있다. 무엇보다도 상놈의 처지에 양반집 딸인 황진이를 평생 사랑한다는 점이 그렇다.

전경린이 그린 유기공방 집 아들인 수근은 황진이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도와주면서 황진이에게 “산으로 도망가 화전이라도 일구며 살자”고 한다. 황진이가 기생의 길로 들어서자 수근은 전 재산을 황진이에게 헌납한 뒤 승려가 된다. 이후 불교 탄압에 맞서 소신공양까지 불사하는 수도자로 살아간다.

한편 홍석중이 그린 놈이는 황진이를 연모하고 그의 곁에 머물며 돕지만 황진이를 제 짝으로 삼으려는 욕심에 황진이의 정혼자에게 출생의 비밀을 토설해 혼사를 무산시킨다. 하지만 현실은 놈이의 속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놈이는 화적패에 들어갔다가 끝내 붙잡혀 효수형에 처해진다.

앞서 말했듯 두 소설은 다른 모습도 여러 면에서 보인다. 아마도 여성과 남성,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40대와 60대라는 두 작가의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전경린의 황진이는 단아하고 차분하다. 반면 홍석중의 황진이는 활달하고 거침이 없다. 전경린의 서사가 철저하게 황진이 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홍석중은 황진이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풍부한 사실적 실감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으로 그린다.

실존의 모순이 삶의 원동력

필자는 홍석중의 ‘황진이’를 먼저 읽었다. 이 소설은 우리가 북한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체제 선전이나 이데올로기 찬양이 일절 없고 활달한 문체로 성애묘사까지 노골적으로 한다. 홍석중의 소설은 그 자체로 매우 뛰어난 소설적 성취를 이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최근 우리 소설이 잃어버린 ‘선이 굵은’ 남성서사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또 가살스럽다, 감때사납다, 거쿨지다, 관후하다, 가물철, 검덕귀신, 겨끔내기, 겨릅불, 고래실논, 구메밥, 날가지, 노구메, 덜퉁하다, 데설궂다, 되알지다, 두억시니, 만문하다, 매시근하다, 모대기다, 모지름, 몰밀다 등과 같은 옛말과 입말, 민중들이 즐겨 쓰는 비유와 속담이 풍부하게 나타나 사실적인 실감을 불어넣고 있다. 문장이 활달하고 거침이 없어 소설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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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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