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조주청 여행칼럼니스트의 쇠고기 갈비살 훈제

참숯향 그윽한 벽난로엔 코냑이 익고, 가을이 익고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10-26 1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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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서풍 서릿바람에 소름이 돋고, 나뒹구는 낙엽에 막연히 울적해지는 계절이다.
    •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마른 장작 타오르는 페치카에 갈비살 구워내고 와인 한잔 곁들이면 그곳이 산장이 되고 아지트가 된다.


    서울 경복궁 담을 왼편으로 끼고 돌아 북악산 자락으로 접어들다 보면 만두집 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 3층에 ‘청청공방’이 있다. 여행칼럼니스트인 조주청(趙周淸·59)씨의 삼청동 작업실이자 그를 아는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다. 청청공방은 삼청동의 ‘청’자와 조주청의 ‘청’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조씨의 직업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여행칼럼니스트지만 그는 만화가, 시사만평가, 사진작가로도 불린다. 이 모든 게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삶과 도전 속에서 얻어진 것이다.

    조씨가 미지의 세계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경남 안동 낙동강변 진모래재에 소풍을 갔다가 그 옆 철교 위로 지나가는 기차를 난생 처음 본 순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그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그가 본 세계는 태어나서 자란 안동이 전부였다.

    조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외지에 집이 있는 반 친구들을 따라 안동을 벗어나 이곳저곳에 돌아다녔다. 그는 그림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접고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시절 그는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발걸음이 자연스레 당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서울 용산이나 마장동으로 향했다.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지가 있었던 적은 없다.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서울을 떠나 3~4일씩 시골여행을 즐겼다.

    한가로이 들판을 지나다 모심기를 도와주고 새참에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고, 어차피 오라는 데 없으니 농부만 괜찮다면 그 집까지 따라가 쇠죽을 끓여주고 하룻 밤 신세도 졌다. 시골 장이 서면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장국도 먹고, 학교운동회가 열리는 날엔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한바탕 뛰어놀았다.

    이런 자유분방함 때문인지, 조씨는 대학졸업 후 사회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첫 직장으로 국내 모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년 반을 넘기지 못했다.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 호텔을 지어 운영해보기도 하고 건축업에도 손을 대봤지만 그에게 별다른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조주청 여행칼럼니스트의 쇠고기 갈비살 훈제

    ‘청청공방’ 응접실 한켠에 마련된 바에서 와인을 마시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조주청씨와 부인 권귀향씨 (산부인과의사).

    서울에서 백수생활을 즐기던(?) 1981년 어느 날 ‘월간 산’에 장난삼아 보낸 독자만화 한 편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잡지 편집장의 눈에 들어 만화연재를 하면서 만화가라는 직함을 달게 된 것. 얼마 후엔 월간 ‘새소년’에 시골마을 분교탐방기를 쓰게 됐는데 이것이 여행칼럼니스트로서의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조씨가 다닌 나라는 무려 150개국에 달한다. ‘맛 기행’ ‘지구촌 기행’ ‘지구촌 오지탐험’ ‘세계 술집 기행’ ‘세계 성문화 기행’ ‘골프유람기’ 등 무수한 기행문이 그 흔적들이다. 삼청동 청청공방엔 또 다른 여행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10달러짜리 쿠바의 체 게바라 액자사진, 콜롬비아와 페루 국경 사이 선술집 주인에게 300달러짜리를 흥정해 75달러에 샀다는 보아뱀 껍질, 각국의 다양한 술병과 모피, 모자들이 그것이다. “인디애나 존스적인 물건을 주로 모았다”는 게 조씨의 설명.

    청청공방의 응접실은 그의 휴식공간이자 사랑방이다. 한쪽에 카페처럼 바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페치카가 있다. 조씨는 가족이나 이곳을 찾는 지인들과 함께 페치카에 고기를 구워먹는다. 젊은 시절 군대생활을 하면서 익힌 쇠고기 갈비살 훈제가 그의 주특기 품목.

    조주청 여행칼럼니스트의 쇠고기 갈비살 훈제

    조씨는 평창동 집 마당 한쪽에 직접 채소밭을 가꾼다.

    맛있는 갈비살 훈제를 위해서는 고기에 알맞게 간을 해서 일정 시간 재두어야 한다. 먼저 고기에 소금과 술, 다진 마늘을 뿌려 고루 뒤섞는다. 술은 코냑을 사용하는데, 향이 강할 뿐 아니라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더없이 좋은 술이기 때문. 한나절 정도 지나야 간이 제대로 밴다.

    그 다음 야채에 뿌릴 드레싱을 준비해야 하는데, 간장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 간장, 식초(사과식초 2분의 1+와인식초 2분의 1), 레몬즙, 올리브를 섞어 만든다. 갈비살 훈제와 궁합이 잘 맞는 야채는 돌미나리와 무싹, 배춧잎 등. 야채를 깨끗이 씻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드레싱을 뿌려 먹는다.

    갈비살 훈제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굽는 것이다. 참숯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불을 지핀 후 석쇠에 고기를 펴 올려놓고 굽기 시작한다. 이때 참숯불 위에 나무껍질을 올리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면 연기가 피어올라 훈제효과를 낸다. 코냑과 참숯향의 절묘한 조화 속에 맛보는 갈비살은 무척이나 담백하다. 여기에 야채와 함께 레드와인 한잔을 곁들이면 소화에도 도움이 되고 분위기도 덩달아 좋아진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직업이 되면 힘들고 고달프다. 조씨에게 여행은 직업이다. 때문에 여행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린위탕(林語堂) 산문집에 ‘진짜 여행하려면 사진기를 들고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정말 공감합니다. 그동안 다닌 여행은 술이나 물, 음식, 풍속, 여자, 오지 등 잡지사의 요구에 맞춰야 했고, 사진기는 필수장비였어요. 일정대로 움직이다 보면 좀체 여유시간도 안 납니다. 일로서의 여행은 재미없어요.”

    조주청 여행칼럼니스트의 쇠고기 갈비살 훈제
    그에게 일이 아닌 순수한 의미에서의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은 유적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로 오지를 찾죠. 척박한 땅과 오랜 역사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조씨는 조만간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해볼 생각이다. 카메라를 벗어던지고 아무 계획 없이 어느 곳에서든 머무르고 싶을 때까지 머물렀다가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그런 여행을.

    ▶ 저녁시간 쇠고기 갈비살 훈제에 와인을 즐기는 조씨 부부와 두 아들,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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