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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세계|커피 마시기

色·聲·香·味·觸·法 아우르는 萬有의 음료|유영구

  • 글: 유영구/ 학교법인 명지학원 이사장 사진: 지재만 기자

色·聲·香·味·觸·法 아우르는 萬有의 음료|유영구

色·聲·香·味·觸·法 아우르는 萬有의 음료|유영구

커피 맛을 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 내리기다. 가늘고 곱게, 그리고 천천히 종이 필터 가운데로 물을 내려야 한다.

커피의 역사는 맞수인 차(tea)에 비해 훨씬 뒤진다. 하지만 10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후 사라센을 거쳐 유럽에 전파된 커피는 이후 폭발적인 인기로 차를 압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커피를 열광적으로 수용한 유럽은 기독교 세계였다. 이교도인 무어인들로부터 들여온, 그래서인지 빛깔이 이교도처럼 검붉은 이 정체불명의 액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유럽인은 곧 ‘악마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16세기 로마교황 클레멘트가 “사탄의 음료가 왜 이다지도 맛있는가. 세례를 주어 사탄의 저주를 물리친 다음 참된 기독교인의 음료로 만들자”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유럽문명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탄의 음료인 커피다. 하긴 커피도 이제 교황의 세례를 받아 성 만찬에 사용되는 와인과 함께 ‘성(聖)’의 반열에 올랐으니 더는 ‘악’이 아니다.

불교의 ‘반야심경’은 만물의 현상론과 실존론을 아울러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이라 했다. 필자는 커피가 이를 두루 갖춘 만유(萬有)의 음료라고 생각한다.

첫째, 한잔의 커피 빛깔. 아무리 들여다봐도 백 길, 천 길이나 되는 가없는 깊이다(色). 둘째, 커피물 끓는 소리를 동트는 새벽이나 한밤중에 홀로 듣자면 세상의 어느 현(絃)이 내는 소리보다 감미롭고 애절하다(聲). 셋째, 커피를 볶을 때 또는 갈아 내릴 때 그 내음은 100송이의 장미보다 향기롭다(香). 넷째, 신맛·쓴맛·단맛을 아우르는 커피의 맛은 바로 인생의 맛이다(味). 다섯째, 커피의 비할 데 없는 오묘한 향과 맛이 오관을 통해 몸 안으로 두루 퍼질 때 우리의 육신은 화사한 봄바람에 나부끼는 한 떨기 민들레다(觸). 여섯째, 커피는 나의 삶이요, 진리요, 실존이다(法).

이 밖에 무슨 말이 더 있겠는가!

신동아 2004년 11월 호

글: 유영구/ 학교법인 명지학원 이사장 사진: 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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