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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 글: 문영숙

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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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1978년 5월. 나는 결혼을 하면서 곧바로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모셨다. 그때 시어머님의 연세는 53세였다.

시어머님은 의지가 굳고 개성이 강한 분이었다. 시어머님은 이북이 고향으로, 황해도 황주에서 유복한 집안의 5남매 중 막내로 자라셨다. 유교 사상에 철저한 친정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성장했는데도 시어머님은 단옷날이면 이웃동네로 그네를 뛰러 다녔을 정도로 다혈질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38선을 넘어올 때도 야밤을 통해 혼자서 넘어왔다. 그만큼 여성이지만 대장부다운 기개가 있는 분이었다.

월남한 뒤 결혼을 한 후에도 5월5일 단옷날이면 서울에서 멀리 강릉까지 가서 그네뛰기 대회에 참가했고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시집왔을 때 주방에는 시어머님이 그네뛰기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았다는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눈에 띄었다.

시어머님은 성격이 곧아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시아버님도 상당히 강직한 분이었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시어머님이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활발하고 강한 분이었지만 건망증이 유난히 심했다. 내가 시집와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시어머님의 건망증 증상이었다. 시어머님은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의심부터 했다. 때로는 돈을 가지고 승강이도 했고, 물건이 무조건 없어졌다고 하는 탓에 곤란한 경우를 수도 없이 겪었다.

시어머님은 밖에 나갔다 들어오시면 난데없이 집에 놓아두었던 돈이 얼마 중 얼마가 없어졌다며 찾아보기도 전에 누가 왔었느냐고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며느리인 나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무작정 누가 들어와서 훔쳐갔다고 단정짓는 바람에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맞서고 그런 승강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다.

당시 나의 친정은 어렵게 살았다. 더구나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정어머니를 모시다가 시집오게 되었고 혼수도 내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시집에서 돈이 없어졌다고 하며 의심을 받는다는 것은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없어졌다던 돈을 하루 이틀쯤 지나면 시어머님의 친구들이 꾼 돈을 갚는다며 가져왔던 것.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시어머님의 병적인 건망증을 이해하게 됐다.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빌려주었거나, 다른 곳에 두고 찾는다는 확신이 생겨 내 스스로 시어머님의 방에서 찾아내든지, 아니면 며칠 기다리면 분명 누군가가 빌려갔다가 가져올 것이라며 넘겨버리곤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몇 건은 정말로 끝까지 모를 때가 있었다. 그런 시어머님의 건망증 때문에 나의 시집살이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심적 고통이 더 컸다. 그런 것들이 치매의 전조증상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적절한 치료도 가능했을 텐데…. 그때는 그저 시어머님의 성격을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시아버님의 죽음

시아버님은 64세에 돌아가셨다. 죽음은 모든 것을 용서받는 최후의 종착점일까? 남편을 하나의 굴레로 생각하며 하루라도 빨리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절실히 바라던 것 같던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을 떠나보낸 후 심한 자책으로 힘겨워했다. 특히 시아버님에게 소홀했던 것을 제일 가슴 아파했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아내를 잃고는 오래 살지 못하고 아내의 뒤를 따라 가는 것도 역시 홀로서기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워낙 종교에 몰두하셨기에 식구들은 믿음을 통해 쉽게 헤어나시리라 생각했다.

다만 늘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나로서는 시어머님을 위로해 드리는 것밖에는 달리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시어머님의 우울증 증세는 다른 사람보다 정도가 심했다. 식사를 하다가도 ‘나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면서 자주 울었다.

원하는 반찬을 기껏 준비해서 드리면 ‘내가 이런 것을 먹을 자격이 없는데’ 하면서 물리고 또 요구하기를 수십 번.

시아버님은 굉장히 자상한 편이었다. 때로는 불 같은 성격으로 인해 주위를 힘들게도 했지만 잘만 맞춰드리면 식구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써주는, 정이 많은 분이었다. 그런 점을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가슴 깊이 느꼈고 이제는 그렇게 자신에게 세세하게 대해 줄 사람을 잃었다는 허무감에 깊이 후회했다.

여기에 시아버님만큼 당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으로 평소에 가졌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었다. 심지어 아들이 당신을 쫓아낸다든지, 지니고 있는 금전까지 모두 빼앗을 것이라든지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에 늘 불안해했다.

내가 절대로 아들이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설득해도 시어머님 자신이 믿는 오직 한 사람, 며느리인 나에게마저 “너도 남편이라고 두둔하느냐”면서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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