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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

  • 글: 김지현 / 일러스트: 이승애

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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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
“아니, 몰라? 그 사람 있잖아요, 작가.” 재미원로기자 이경원(76) 선생이 어눌한 한국말투와 유창한 영어를 섞어가며 필자에게 문책하듯 강용흘이 누군지 모르냐고 물었다.

이 선생은 한인 최초의 미 일간지 기자로, 미국사회의 소수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추적기사로 명성을 날렸던 인물이다. 특히 1970년대 소수민족 인권운동의 상징인 ‘이철수 사건’을 폭로해 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워싱턴 DC에 있는 언론박물관 ‘뉴지엄(Newseum)’의 ‘20세기를 빛낸 미 언론인 전당’에 동양계 언론인으로는 유일하게 등재돼 있다. 1949년 21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유학, 미국사회에서 40여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그는 미국에서는 ‘K.W. Lee’로 알려져 있다. 미국언론계는 그를 ‘아시아 언론인의 대부’로 부른다.

필자는 평소 언론계 대선배로 존경해온 이 선생과 수년 전부터 가까이 지내왔다. 현재 이 선생은 미주이민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구자들을 발굴해 ‘외로운 여정(Lonesome Journey)’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 위해 영문으로 집필중이다. 지난해 필자는 이 책의 처음 네 단원을 한글로 번역해 주기도 했다.

필자는 작가 강용흘(Younghill Kang, 1903~72)의 이름을 2년 전인 2002년 여름, UCLA 캠퍼스 카페에서 이 선생을 만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처음 들었다. 당시 미주 한인사회에는 이민 100주년(2003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도서출판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필자도 틈틈이 초기 한인이민 역사를 공부하며 ‘잊혀진 선조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미50년사(김원용)’를 비롯해 ‘동방으로부터의 이민자들(로널드 타카키)’ ‘미국은 내 마음속에(칼로스 불로산)’ 등 미국의 소수민족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강용흘의 이름은 본 기억이 없다. 특히 한글로 쓰여진 ‘재미50년사’는 초기 이민사의 원전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당시 한인이민사회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책에서조차 강용흘에 대해 별다른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튼 미국에서 한인 최초로 ‘초당(The Grass Roof, 1931)’이라는 자전적 영문 소설을 쓰고 그 소설로 창작부문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구겐하임 상(1933~34)을 받은 강용흘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한인 최초’라는 수식어보다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강용흘에 대해 알고 싶었다. 평소 필자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보다 그의 삶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이경원과 ‘초당’의 첫 만남

이 선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두드렸다. 강용흘에 대한 자료가 생각보다는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그가 펴낸 책 3권 중 ‘초당’과 ‘동양 선비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 1937)’에 대한 문학비평이었다. 한국학 관련 도서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진 USC 대학 동양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참고될 만한 문헌은 없었다. 월요일에 이 선생을 다시 찾았다.

당시 이 선생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택이 있는 새크라멘토에서 LA로 내려와 UCLA 대학에서 언론학 특강을 했다. 3시간짜리 강의가 끝난 후 캠퍼스 내에 있는 카페에서 이 선생을 만났다. 강용흘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선생은 자신이 강용흘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 선생에게서 들은 강용흘의 삶은 비록 단편적이긴 했으나 내겐 큰 충격이었다. 미국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뒤 비참했던 말년의 삶까지, 이 선생은 10여년에 걸친 강용흘과의 관계를 시간을 초월해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경원 선생과 강용흘의 나이차는 25년이다. 그가 강용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일리노이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1954년쯤이었다. 그는 ‘인터내셔널 유학생의 밤’ 행사에서 대표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마땅한 소재거리가 없어 고민하던 중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 한국인이 쓴 작품 세 권을 발견하고는 당장 대출해 읽었다. 그것이 강용흘의 ‘초당’과 ‘동양 선비 서양에 가다’ 그리고 ‘행복한 숲(Happy Grove, 1933)’이었는데 며칠 밤을 꼬박 새며 읽었다.

이 선생은 “강용흘의 정신세계는 시적이었다. 특히 ‘초당’에 나오는 문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무르익은 황갈색의 벼가 물결치는 논의 풍경, 나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듣고 있었다. 나의 어린시절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초당’의 전원적 배경이 베토벤의 음악으로 변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 우리 동양인은 전원에서 온 사람들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 선생은 ‘초당’이 단순히 한국을 묘사한 소설은 아니라고 했다. 강용흘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미국인들에게 동양적인 면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전원사회의 모습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작가 토머스 울프도 강용흘의 ‘초당’을 읽고 자신이 자란 노스캐롤라이나 같다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전원사회의 모습을 묘사한 ‘초당’은 산업사회의 미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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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현 / 일러스트: 이승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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