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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⑭|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

금강산이 어드메뇨, 바위들의 축제 속에 설악 삼매경 빠져든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금강산이 어드메뇨, 바위들의 축제 속에 설악 삼매경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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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봉 정상에 올라서니 발 아래 설악이 펼쳐진다. 부드러운 여성의 몸짓을 닮은 내설악, 불쑥 솟아오른 남성의 혈기가 느껴지는 외설악, 고행에 나선 스님의 행렬처럼 엄숙한 남설악.
  • 산 그림자는 동해바다로 스며들고, 저 멀리 한계령은 이제 내려가라 지친 어깨를 떠민다.
금강산이 어드메뇨, 바위들의 축제 속에 설악 삼매경 빠져든다

대청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설악산국립공원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하여 ‘설악산 전투’다. 1951년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가 시작된 이후 국군 제11사단과 수도사단은 인민군 제6사단 및 제12사단과 밀고 밀리는 사투 끝에 지금의 양양과 간성지역을 탈환했다.

그 뒤 국군은 중공군의 제2차 공세 때 대관령과 강릉지역으로 후퇴해 설악산을 최후 방어선으로 활용했고, 휴전협정을 앞두고 다시 설악산 지구를 회복했다. 전사(戰史)에 따르면 세 차례의 대접전 끝에 설악산을 지켜내고 산화한 사람 중에는 이름도, 군번도 확인할 수 없는 군인이 유난히도 많다. 하여 설악산 외설악 입구인 소공원에는 이들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비가 남아 있다.

설악산은 휴전선 남쪽에서 한라산과 지리산 다음으로 높고, 산세가 금강산 못지않게 빼어나 오래 전부터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려왔다. 수많은 무명용사의 죽음을 대가로 남쪽의 수중에 들어온 설악산.

그러나 남쪽 사람들의 설악산에 대한 애정은 늘 불완전한 것이었다. 마음은 금강산에 가 있으면서 설악산을 통해 대리만족을 즐겼다고나 할까? 설악산 마니아조차 “설악이 이 정도면 금강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곤 한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쪽 사람들은 분단 반세기 만에 금강산을 직접 만나게 됐다. 최근 금강산에 다녀온 사람 중에는 설악산을 한수 아래로 평가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들의 눈에 설악산은 예나 지금이나 금강산보다 한참 밑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의 금강산 관광은 일종의 전시용 상품에 불과하다. 시간에 따라 느낌에 따라 각도에 따라 수만 가지 형상으로 변신하는 금강산을, 정해진 시간에 그것도 누군가의 안내를 받으며 돌아봐서야 어찌 제대로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이유로 필자는 금강산을 조급하게 훑기보다 설악산을 여유 있게 감상하는 쪽을 택했다.

설악산은 크게 남설악 내설악 외설악으로 구분된다. 남설악은 한계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점봉산, 오색약수터 주변의 계곡, 대청봉 남쪽의 등산로 등을 일컫는다. 내설악과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마등령을 지나 미시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의 양편을 지칭한다. 즉 능선의 안쪽 내륙이 내설악이고 동해바다와 맞닿은 바깥쪽이 외설악이다. 백담사에서 오세암이나 수렴동을 지나 봉정암으로 이어지는 내설악이 부드러운 여성의 몸짓이라면, 울산바위와 비선대가 우뚝 솟아 있는 외설악은 뜀박질하는 남성을 연상케 한다.

설악산 3위 일체의 진수

남설악과 외설악 그리고 내설악은 서로 이어져 한울타리를 이루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설악산 마니아는 한곳에 머무르기보다 내설악에서 외설악으로, 남설악에서 외설악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즐긴다. 이렇게 걷다 보면 한 번의 산행으로 두 가지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종주코스가 대중화되기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았다는 설악산이지만, ‘내·외·남 3위 일체’의 진수를 제대로 체득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주능선을 먼저 타고 내설악과 외설악을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 산행은 한계령을 출발해 대청에 오른 뒤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을 거쳐 미시령으로 빠져나가는 코스다. 이번 산행에는 ‘신동아’ 종주기를 읽고 백두대간 종주계획을 세운 정태웅 선생과 대학후배 2명이 동참했다.

2004년 11월7일 새벽 동서울터미널.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시간에 버스는 출발했다. 해뜨기 직전의 한강은 가로등 불빛에 붉게 젖어 있었고, 추수를 끝낸 들녘 너머 농가의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버스는 홍천강가의 휴게소에서 잠시 멈췄다. 이곳에서 군대생활을 했다는 후배는 옛일이 떠오르는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강원도 산골에서 군복무를 했으니 그 심정을 헤아릴 만도 하다. 버스는 인제와 원통을 지나 한계령으로 향했다. 강원도에서도 인적이 드문 오지여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어이하나’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군사지역이다.

대청봉 가는 길

한계령이다. 남설악의 관문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개다. 불과 2주 만에 다시 찾았지만 풍광은 사뭇 달랐다. 단풍은 거의 사라지고 산자락엔 낙엽이 수북하다. 휴게소에서 산채국밥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계단으로 붙었다. 멀리 점봉산과 망대암산이 눈에 들어왔다. 2주 전 무척이나 애를 먹였던 봉우리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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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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