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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테마여행

예수의 지상 마지막 일주일, 그 발자취를 따라서

예루살렘, 또다시 메시아를 기다리는 2000년 古都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예수의 지상 마지막 일주일, 그 발자취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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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소재로 한 소설 ‘다빈치 코드’가 인기다.
  •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의 여인 막달라 마리아라는 작가의 주장은 신선함을 넘어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여러 정황상 소설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선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 그리고 지금 그곳엔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까.
예수의 지상 마지막 일주일, 그 발자취를 따라서

감람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구시가지. 황금 돔을 이고 있는 ‘바위의 돔’이 눈부시다.

해발 830m의 감람산 중턱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한 알의 달걀처럼 한 손에 쏙 들어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관령 높이인데도 그다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루살렘이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이리라.

한 변의 길이가 1km쯤 되는 육중한 석벽으로 둘러싸인 사각의 구시가지는 면적으로는 전체 예루살렘의 1%(30만평), 인구로는 5.5%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세계의 역사는 이 작은 공간 속에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체에 비유하면 핵과 같은 존재라 할까. 그 한가운데에 황금의 ‘바위의 돔’이 우뚝 솟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고 성벽은 무척 단단해 보였다. 절로 힘이 느껴졌다. 그 뒤로 솟아 있는 신시가지의 고층빌딩은 구시가지를 위한 무대장치처럼 보였다.

감람산의 ‘감람’은 올리브나무를 뜻하는 감람나무에서 유래한 말이다. 올리브는 황야에 사는 이곳 사람들에게 영생불사를 상징한다. 감람산에는 예수의 행적을 기리는 교회가 여럿 있다. 산꼭대기에는 예수의 승천을 기념하는 승천교회가 있고, 그 아래로 예수가 주기도문을 가르친 것을 기념하는 주기도문 교회,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눈물을 흘린 예수를 기념하는 눈물교회 등이 있다.

거기서 길 하나를 건너면 겟세마네가 나오는데, 넓은 동산과 숲으로 이뤄져 있고 과일나무와 꽃들이 무성하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기도했다는 바위 주변에 지어진 교회가 바로 만국교회, 일명 겟세마네교회다. 바실리카 구조에다 화려한 파사드(건물의 정면) 양식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이 교회는 16개국에서 보내온 헌금으로 지어졌다.

서기 30년 4월2일 일요일 오후 1시경, 당시 나이 서른이던 예수는 베다니를 나와 남쪽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위해 감람산에 올랐다. 감람산에 오른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날 그의 감회는 여느 때와 달랐다. 바로 최후의 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사가들의 기록을 보면 오랫동안 갈릴리 지역에서 설교활동을 해왔던 예수는 여리고를 거쳐 그 전날, 즉 토요일 오후 4시경 베다니에 도착했다. 이날은 유월절을 앞둔 안식일로, 그에게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안식일이었다.

유월절을 앞둔 시점에 그가 예루살렘을 찾은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유월절은 그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출애굽)하면서 겪었던 고난의 여정을 기리는 유대인 최대의 명절이다. 매년 이때가 되면 예루살렘엔 교인들로 넘쳐난다. 예수는 그런 날을 기해 예루살렘에서 최후의 날을 보내고자 한 것이다.

갈릴리와 나사렛에선 이렇다 할 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였지만, 베다니에선 나사로 형제와 시몬, 그리고 이웃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선지자인 그는 왜 고향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을까. 그건 아마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의 뜻을 펴라는 하늘의 뜻이었을지 모른다. 예수 또한 그래서 예루살렘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해 걸으면서 자신에게 다가올 고난을 생각했다. 하지만 겁내지는 않았다. 예수는 제자 두 사람을 시켜 맞은편 마을에서 누군가가 매어놓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도록 했다. 아직 아무도 태운 적이 없는 어린 나귀였다. 예수는 그 나귀를 타고 황금의 문을 지나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갔다.

예수의 이런 행동에 대해 평화의 왕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나귀의 걸음이 사람의 발걸음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어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

범상치 않아 보이는 한 청년이 제자들을 이끌고 성내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제자들은 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호산나(구원이란 뜻. 주로 ‘만세’란 의미로 쓰였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제자들과 함께 성안을 지나던 예수는 초라한 행색의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냥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목격한다. 그 모습을 본 예수는 “부자는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서 일부를 떼어내 바쳤지만, 가난한 저 과부는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도 생활에 필요한 것까지 모두 바쳤다”며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수많은 군중들 때문에 예수 일행이 성 안에 있는 성전에 도착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그 후 말없이 성전 뜰을 거닐던 예수는 저녁때가 되자 베다니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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