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순환의 고리 계절의 틈바구니

  • 입력2005-03-24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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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환의 고리 계절의 틈바구니
    어제 작업실에서 철수했다. 예정했던 일이 대강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철수’라는 말을 쓰긴 했으나 어정어정 가서 노트북을 챙기고 방 열쇠를 돌려주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었다. 2월까지 작업실을 쓰겠다고 미리 말해두기는 했으나, 막상 떠나려니 섭섭하기도 하고 많이 망설여졌다. 일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자잘하게 손볼 것들이 남아 있어 그냥 놔두고 가끔씩 드나들어도 좋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고, 서울에 갔을 때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없어져 불편하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도 생겼다.

    그럼에도 일이 끝났다, 작업실은 일하는 곳이니까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공식이 나를 압박했다.

    묘한 일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그 공식은 겨우내 나를 몰아붙여 일에 몰두하도록 해주었다. 아무리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작업실에 들러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서야 집에 들어가는 생활 패턴을 만들어냈다. 반복되는 일상을 못 견뎌 자유롭게, 되는 대로 생활해온 내게 별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방학이 되어 정시에 가서 일을 시작하고 정시에 마친다고 하지만 그 시간에 언제나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졸기도 하고, 몽상에 빠지기도 하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창밖으로는 빌딩들이 삐죽삐죽 솟아 보였다. 저건 보험 빌딩이고, 저건 포스코, 저건 스타…. 빌딩들은 각각 사연이 많았는데, 저마다의 사연은 신문의 경제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저 빌딩은 현재 매각협상이 진행중인데 로또에 몇 번 당첨돼야 살 수 있는 금액이라든지, 누가 지어서 소유주는 어떻게 바뀌어왔고, 그 과정에서 얼마의 수익을 챙겼다든지 하는 식으로. 덕분에 빌딩들은 잘 아는 친구처럼 여겨졌고, 외로움을 잘 타는 내가 작업실이란 공간에 쉬 친숙해지도록 해주었다.



    테헤란로에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나처럼 시골에 거주지를 두고 자유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다. 말초혈관을 돌아다니던 혈액이 가슴 부근으로 가서 바로 이곳에서 심장이 뛰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기분이랄까.

    특히 아침마다 길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은 다들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돈벌이에 정신이 팔린 것인지, 한국 경제를 살리느라 등골이 빠지는지, 아니면 미래의 꿈에 몰두해 있는지는 몰라도 모두들 진지하고 바쁘게만 보였다. 그곳에서 하릴없이 두리번거리며 어슬렁대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한 예로 1월 초 어느 휴일, 비교적 한산한 거리에 1만원짜리 지폐들이 훨훨 날아다녔는데 그걸 눈치챈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지폐들은 1m쯤 구르다가 바람을 타고 사뿐히 솟구치기까지 했는데, 모두들 무심히 지나쳐갔다. 물론 나는 그걸 주워 지갑에 소중히 간직했다.

    아침마다 버스며 지하철은 어두운 색의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도로변에서 아침식사용 김밥이나 토스트를 먹는 사람도 있지만 대세는 ‘바쁘게 걷기’다. 그리고 빌딩이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한 뭉텅이씩 사람들이 빨려들어 간다. 그러다 보면 아침 햇살이 점점 진해지고 나 역시도 두리번거림을 그만두고 ‘오늘도 힘차게 살자’는 식의 마음을 갖게 된다.

    경기의 실상은 빌딩마다 붙은 임대 안내판에서, 음식점마다 붙은 점심식사용 특별 할인메뉴 안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잘하게 붙은 그 표식들은 우리 경제가 바닥을 기고 있다는 기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썰렁한 커피숍에 앉아 거리를 내다보고 있노라면 의기소침한 표정에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시즌스 그리팅이라는 계절 인사며 장식들이 마지못해 내걸린 듯 흐릿하게 껌뻑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듯 초조해 보였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며 ‘할인’이나 ‘임대’ 간판이 줄어들고 가라앉은 것만 같던 호흡이 다시 빨라지고 겨울이 끝난다는 실감이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가끔 작업을 중단하고 거리 끝에서 끝까지, 이를테면 ‘코엑스에서 강남역까지 어슬렁대며 걸어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도 뭔가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던 것일까? 그들에게 전염되어서? 작업실에서 나와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겨우내 작업실이 보리수 밑인 양 나는 단꿈을 꾸었다. 꿈에 취해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기도 하고, 혼자 웃기도 하고,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 인생 역정에 가슴 쓰라려 하다 몸이 아프기도 했다. 특히 방학이 시작되자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헐떡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작업실 문을 닫고 나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이 눈앞에 펼쳐져 나를 사로잡았다.

    언젠가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자 “작가가 되어서 좋은 점이 뭐냐”고 누군가 물었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이의 인생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게 즐겁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자잘한 일상은 갖은 볼일과 인간관계 유지라는 핑계로 다른 인생에 몰입하려는 나를 수시로 방해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 그 작업실에 들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경우가 생기면 전철역 부근의 커피숍을 이용했다. 작업실 속의 인생은 온전히 또 다른 삶으로 나를 도취케 하였다.

    대학 시절, 몹시 멀리 달아나버려 이젠 꼬랑지밖에는 시야에 보이지 않는 멀고 먼 계절처럼 느껴진다. 나는 노상 보들레르의 시구를 입에 달고 살았다. ‘… 취하여라. 술에건, 일에건, 예술에건…’

    보들레르에 의하면 그러지 않으면서 살아내기에 인생은 너무 따분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그 말 때문에 내 평생의 직업이 결정됐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대신 온전하게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

    이제 나는 계절과 계절의 틈바구니에 서 있다. 물리적으로는 겨울과 봄 사이에 서 있지만, 심리적으로도 일과 일 사이에 서 있는 셈이다.

    순환의 고리. 이런 틈바구니들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 보통 이럴 때면 여행을 떠나거나, 서점에 가서 갖가지 분야의 책을 잔뜩 사들여 읽어대거나, 하루 세 편씩 영화를 봐치우거나 하면서 틈을 메운다는 느낌으로 생활하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그렇게 하질 못하고 있다.

    깊은 우울. 겨우내 다른 인생에 사로잡혔던 강도에 반비례하듯 우울증의 우물은 깊고도 깊다. 돌멩이를 던져 넣어도 그게 바닥에 가 닿는 소리가 단념하고 뒤돌아설 즈음에야 들릴 정도로 깊은 심연이다. 그 속에서 온갖 종류의 실패와 낙담과 절망을 만난다. 밤을 새운 뒤 잠이 찾아와주지 않는 희끄무레한 새벽이면 늘 그러하듯이.



    깊이 한숨쉰다. 순환의 고리. 사람들이 봄에, 새벽에 자살을 많이 선택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계절과 계절 사이, 하루와 하루 사이, 새로 시작되는 순환을 낙엽이 아닌 새 잎이 되어 맞이할 용기를 어디서 찾아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도움의 손길 같은 것은 없다. 새로운 시간이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매우 엄정한 것이다… 기도는 질주하고 송가는 울려퍼진다…’(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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