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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깔 있는 한의사 김경동의 ‘섹스 동의보감’

혼돈시대의 강정제 ‘자하거(紫河車)’

  • 글: 김경동 김경동연합한의원장 한의학 박사 www.xclinic.co.kr

혼돈시대의 강정제 ‘자하거(紫河車)’

혼돈시대의 강정제 ‘자하거(紫河車)’
냉전시대가 종식되기 전의 우스갯소리 하나. 소련 미국 영국 한국 북한의 5자회담이 열렸다. 각기 자기 나라 자랑을 하는데,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벗겨진 머리를 가리키며 “광활한 국토!”라고 했다. 그러자 영국의 대처 총리가 가슴을 드러내며 “풍부한 자원!”이라고 외쳤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에 질세라 바지 지퍼를 내리며 한마디했다. “강력한 무기!”

뭔가 말하긴 해야겠는데 자랑할 게 없던 한국대표는 뒤돌아서 팬티를 내린 뒤 엉덩이를 내보이며 “분단된 조국!”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북한대표 역시 엉겁결에 팬티를 내리고는 엉덩이를 벌려 보이며 말했다. “분단된 가운데 숨겨진 땅굴이 있습네다!”

요즘 세상은 너무 혼란스럽다. 해일,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질 않나, 얼마 전 핵 보유를 공식 선언한 북한이 6자회담을 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고, 우리 정계는 민생과 관련 없는 끝없는 당쟁, 수도이전 문제로 여야가 난리다. 경제적으론 환율하락, 유가급등, 물가상승,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로 혼란스럽다. 사회적으론 청탁과 뇌물수수, 혜택은 적으면서도 강제적인 세금이 돼버리다시피 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혼탁한 교육계, 인기 연예인의 죽음 등 도무지 가닥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학자 J. K. 갤브레이스는 예전처럼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제국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는 현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런 불확실하고 혼돈스러운 시대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상을 헤쳐나갈 비방까지는 몰라도, 정신이 혼란스럽거나 불안하고, 귀신을 보거나 쫓기기도 하며, 몸이 허해져 엉망이 되어 있을 때 기운을 보강하는 강정제를 권하라면 ‘자하거(紫河車)’를 들 수 있다.

‘붉은 물수레’라는 뜻의 ‘자하거’는 산후의 태반을 말한다. ‘자(紫)’는 북쪽의 빛이고 ‘하(河)’는 북쪽에 흐르는 물의 이름이며, ‘거(車)’는 태아의 99수(數)가 만족하게 타고 나온다고 해서 태반을 자하거라고 부른다. 천지창조 시기의 혼돈스러운 상태와 태아가 형성되는 상황이 비슷하다 해서 자하거를 일명 ‘혼돈피(混沌皮)’라고도 한다.

헤르만 헤세나 크리슈나무르티도 그런 뜻에서인생의 굴레를 수레(車)로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허준 선생은 물수레, 즉 하거(河車)란 천지의 시초이고 음양의 조상이며 하늘과 땅의 풀무이고 신선이 되는 테두리라고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자하거를 두고, ‘기운과 영양이 부족하여 몹시 야윈 것과 허약하고 과로로 몸이 상한 것과 기미가 돋고 피부가 검게 되는 것을 치료하고, 혈약과 함께 넣으면 양기가 세지고 아이를 낳게 되며, 풍약과 함께 넣으면 정신 잃는 증상을 낫게 하며, 남자에게는 정(精)을 보강하고 여자에겐 혈(血)을 보충하며, 아무리 병이 위중해도 한 번만 먹으면 하루, 이틀은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임상에서 태반은 생식기와 난소 발육을 촉진하고 정액 감소와 발기불능에 좋으며 빈혈을 없애준다. 면역작용이 있어 알레르기성 질환에도 효과적이다. 최근엔 기미, 주름, 노화방지를 위해 화장품에까지 태반 성분이 들어간다.

자하거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힘줄과 꺼풀을 떼버린 후 하룻밤 식초에 담갔다가 참대둥지에 넣고 종이를 발라 약한 불에 말리는 수치법(修治法)을 거친 뒤 약과 배합해 사용한다. 그러나 요즘 개인적으로 자하거를 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제약회사에서 위생처리한 뒤 동결건조한 제품만 공급된다.

자하거를 넣는 처방이 동의보감에 많이 실려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조환(大造丸)이다. 재미있게도 ‘크게 창조한다’는 뜻이다. 자하거를 큰 시루에 넣고 쪄서 풀과 같이 되면 거기에다 생건지황, 구판, 두충, 천문동, 맥문동, 황백, 우슬, 인삼, 당귀, 오미자를 넣어 환을 만든것이 대조환이다. 복용하면 무언가 크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져 음기 양기를 모두 보강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성(聖)스러운 약이라고 했다.

지금 이 나라 이 사회가 혼돈상태에서 새로 크게 창조한다는 ‘대조환’의 정신으로 슬기롭게 단합하여 새로운 나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된다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아직 썰렁하다. 학교마다 밥 먹으러 등교하는 결식아동이 부지기수인 현 시점에서, 강정제를 찾기보다는 그 아이들부터 도와주는 건 어떨까. 그것이 태아에 영양을 공급하는 기능을 가진 자하거가 주는 진정한 교훈이 아닐까.

신동아 2005년 4월 호

글: 김경동 김경동연합한의원장 한의학 박사 www.xclin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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