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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특산품 ④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흙과 물 어우러진 하늘재 가마터, 투박한 막사발의 현묘한 불춤

  • 글: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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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탄광도시였던 문경은 젊다. 여전히 양반문화의 색채가 짙은 인근 고장에 비해 개방적이고 생기발랄하다. 그런데도 발길 닿는 곳마다 순수한 자연미와 전통미가 엿보인다. 무려 900년 동안이나 한번도 끊어지지 않고 맥을 이어온 문경 도자기에는 제 고장의 자연과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문경은 옛날부터 경상도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높고 우람한 산이 유달리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문수봉(1162m), 대미산(1145m), 포암산(961m), 조령산(1025m), 백화산(1063m), 희양산(998m), 대야산(930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길게 뻗어내린 탓이다. 그런데도 궁벽하거나 외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찍이 삼국시대에 큰 고갯길이 열린 뒤로 늘 수많은 사람과 물산이 이곳을 거쳐 외부로 드나들었다.

백두대간의 길목, 문경

지금도 문경에는 유서 깊은 옛길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새재와 하늘재. 잘 알려진 대로 새재(鳥嶺)는 조선시대의 경부고속도로나 다름없었던 영남대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하늘재는 새재보다 훨씬 더 오래된 교통로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갯길로도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아달라왕 3년(156)에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계립령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계립령이 바로 지금의 하늘재다.

아주 오래된 고개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험산을 넘어가는 준령(峻嶺)은 아니다. 이웃집에 놀러가듯 편안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고갯길이다. 주요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오늘날에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그 고갯마루 근처에 자리잡은 관음마을도 하늘재만큼이나 편안하다.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에게도 마을의 풍경과 정취가 낯설지 않다. 백두대간의 육중한 산자락에 등을 기댔는데도, 마을 터는 경사가 완만하고 햇살이 풍부하다. 그래서 언제나 아늑하고 따사롭다. 마치 명당에 자리잡은 절집 같다. 관음(觀音)이라는 마을 이름이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에서 따온 것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오랜 옛적에 대찰(大刹)이 있었던 곳인지도 모른다.

관음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부처가 있다. 필자가 10여년 전 관음리를 처음 찾아간 것도 순전히 그 돌부처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이미 돌부처는 형용(形容)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돼 있었다. 그 뒤로도 푸근한 마을 정취와 하늘재의 호젓한 분위기에 이끌려 여러 차례 일부러 관음마을을 찾았다.

조선 백자 가마에 대한 기억

그러면서도 돌부처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옛 가마가 이 마을에 존재하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가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에 꼬박 3년 동안 월간 ‘샘이깊은물’의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필자가 입사하기 3년 전쯤인 1987년 11월에 발간된 과월호를 뒤적거리다가 우연찮게 ‘조선 백자 가마가 하나 남아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던 고(故) 한창기씨가 글을 쓰고, 사진편집위원 강운구씨가 사진을 찍은 화보기사였다.

당시에는 관심 있게 기사를 읽었지만, 막상 거기 나오는 조선 백자 가마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통 도자기에 대해서는 청맹과니나 다름없다. 그러니 희미하게나마 여태까지 기억되는 것도 그 가마의 위치가 문경 어디쯤이라는 사실뿐이다.

얼마전 ‘신동아’ 4월호 취재를 위해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직원의 안내로 그 가마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갔다. 가마는 지금처럼 대로변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한동안 찾아 헤매기 십상인 산중턱에 숨어 있었다.

관음리의 조선 백자 가마는 완만한 산자락에 엎드려 있다. 그 옆에는 디딜방아와 작업장으로 쓰이던 움집이 있고, 가마가 자리잡은 축대의 아래쪽에는 허름한 살림집도 한 채 남아 있다. 외벽의 흙을 말끔하게 다시 바르고, 커다란 돌로 축대를 튼실히 쌓고, 양철지붕을 새뜻한 초가지붕으로 바꾼 것 말고 가마는 그 화보기사 속의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필자의 짧은 식견과 낮은 안목으로는 그 가마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가마에 대해서는, 전통문화와 골동품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탁월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졌던 고 한창기씨의 기사를 일부 인용하는 게 더 나을 성싶다. 그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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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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