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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남보다 앞서라?

남보다 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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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앞서라?
요즘아이들을 보면 정말 측은하다.

인생의 선배로서 유위유망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줘야 마땅할 터인데 한숨부터 나오는 것은 어인 일인가. 잠자리나 쫓아다니며 뛰놀아야 할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는데, 서너 개는 기본이고 많은 경우는 밤늦도록 열 군데도 넘게 쏘다녀야 한단다. 중학생, 고등학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방학 중에도 1주일 내내 아침 8시부터 새벽 2, 3시까지 학원 순례를 해야 한단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잡는다’.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

설마 세상의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식들을 잡으려고 작심한 것은 아닐 터인데, 내가 보기엔 분명히 잡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뭘 잘못 본 것이거니 반성해봐야 한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고결한 신념체계를 목하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한동안 고심했다. 답은 지극히 단순, 명료하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혹은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자식 사랑 앞에서 말을 잃는다.

자식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무언가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고, 인생의 낙오자가 된 자식을 보고 뒤늦게 후회하느니 힘이 들더라도 지금 뒷바라지를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꿈에도 아이들을 잡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는 파출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열성은 결코 맹자의 어미에 뒤지지 않는다. 그뿐인가. 자식을 세계인으로 키우기 위해 기꺼이 이산의 아픔을 감내하는 기러기 아비들을 보라. 이 땅의 부모들은 자식의 혁혁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에든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그들의 바람이 모두 성취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치로 보건대, 모든 사람이 다 남보다 앞설 수는 없으니 그게 좀 문제다. 공부를 많이 하건 적게 하건 일등과 꼴찌는 있게 마련이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주위 풍광도 구경하면서 다 같이 천천히 걸어가면 좋으련만, 한 놈이 더 차지하겠다고 뛰기 시작하면 다른 놈도 덩달아 뛰지 않을 수 없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떼거리를 지어 빨리 달리면 모두 그만큼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경쟁과 우열이 존재하는 한 모두 똑같이 행복해지는 법은 없다.

영화관에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더 잘 보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뒤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영화를 봐야 한다. 촌지는 원래 주는 것이 아닌데, 어떤 사람이 특급대우를 받겠다고 촌지를 주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주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특급대우 해달라는 소리를 못한다. 하는 수 없이 촌지를 또 인상해야 한다. 그러면 남들도 올릴 것이다. 결국 시종일관 똑같은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비용은 점점 증가한다. 남보다 앞서야겠다는 경쟁의식은 대체로 이와 같은 부작용을 낳기 쉽다.

‘선의’와 ‘경쟁’

생물학적 차원에서 ‘생존’은 경쟁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밀림에서는 다른 놈보다 강하고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삶’이 반드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선의(!)의 경쟁으로 인해 인류의 문명이 이만큼이라도 진보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문명이 진보한 만큼 세상은 더욱 살풍경해졌다는 비판을 생각하면 경쟁의 효용성에도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선의’와 ‘경쟁’은 양립하기가 어렵다. 경쟁에서 선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악마에게서 자비심을 구하는 만큼이나 난망한 일이다. 공정한 경쟁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선의를 가진 사람이 남이 취할 수도 있는 재화를 가로채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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