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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⑥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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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집을 얻어준 서광철 아저씨, 주치의처럼 돌봐주는 약사 하윤희씨, 외로울 때면 찾아가는 영덕이. 산골 이웃들은 나누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물론 살다 보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마음고생도 하지만, 웃을 때가 더 많다. 웃고, 싸우고, 술 마시다 보면 이웃들과 맺은 정은 더욱 깊어만 간다.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권영덕·오금숙 부부네 상량식 뒤풀이 광경. 이 부부는 사람을 워낙 좋아해 계곡이 이웃들로 가득 찼다.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풍물 장단에 맞추어 춤도 추고.

내손으로 흙을 일구고 곡식을 키워보니 하늘과 산, 그리고 강을 다시 보게 된다. 논두렁 밭두렁 논길 물길 모두 앞서간 어른들의 숨결이 배어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우리 사는 산골에는 ‘보메기’란 게 있다. 논농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물길을 다잡는 일을 말한다. 산기슭을 논으로 만들다 보니 봇도랑을 만들어 계곡물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 일이 한 두 사람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1년 농사에 보통 서너 번 보메기를 한다. 봄에 못자리할 때 한 번, 가뭄이 드는 5월에 또 한 번, 그리고 홍수가 나 봇도랑이 망가졌을 때 한다.

벼 이삭이 팰 무렵 보메기를 했다. 날이 푹푹 찌니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봇도랑을 고치고 나서 논으로 물이 콸콸 흘러들어가는 광경을 보는 순간, 더없이 흐뭇했다. 그러고는 계곡에 발 담그고 보주(보메기꾼의 대표)가 마련한 술을 한잔 걸쳤다. 물가에 둘러앉으니 몇 사람 안 된다. 예전에는 열 서너 명이 함께 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다섯 사람이다. 새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삐딱밭 일궈 자식 넷을 대학에

그 많던 사람, 다 어디로 갔나. 계곡 물살 따라 사람들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해 돌아가신 분도 있고, 나이가 일흔이 넘어서며 논농사를 그만둔 분도 있다. 농사지을 마음은 있는데 몸이 불편해 못하는 사람도 많다.

서광철(71) 아저씨도 몸을 다쳐 보메기를 함께 하지 못했다. 아저씨와 나는 인연이 각별하다. 내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는 이곳에 뿌리내리게 도와준 사람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바로 광철이 아저씨다. 마을 빈 집을 알아봐주고, 허술한 집을 수리하는 일도 도와주셨다. 땅도 마을 사람들이 거래하는 값에 매입하게 해주셨다. 낯선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아저씨와 가까운 이웃이 됐다. 아저씨는 농사지을 씨앗을 골고루 나눠주셨다. 그리고 논밭을 오가는 길에 농사 때를 알려주시고, 기술을 가르쳐주시곤 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셨다. 어떤 일이든 일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믿었는데 아저씨는 그게 아니었다. 나눠주는 그 자체를 기쁘게 여기시는 게 아닌가.

그러던 아저씨가 몇 해 전 사고를 당했다. 비탈진 곳에서 경운기를 몰다가 경운기와 함께 넘어진 것이다. 경운기 뒤에 끌고 다니는 트레일러에 아저씨 배가 깔렸다. 경운기는 엔진 소리가 유난히 커 웬만해서는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그 때 나는 사고난 곳에서 멀지 않은 밭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사고를 몰랐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데 동쪽에서 아침 해가 떠올라 눈이 부셨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경운기가 넘어져 있고 몇 사람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지게를 팽개치고 달려갔다. 젊은이 한 사람과 할머니 두 분이 트레일러를 들고 아저씨를 꺼내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트레일러를 들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나오는 장 발장처럼. 부랴부랴 대전 큰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는 살아나셨다. 그러고는 또 억척스럽게 일을 하셨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보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게 많다. 두 분은 자기 땅이라고는 다랑논 몇 마지기가 전부다. 그런데도 자식 넷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모르겄어. 남의 삐딱(비탈)밭, 못 쓰는 밭 얻어서 했으니. 옛날에는 경운기가 있어, 뭐가 있어? 다 지게로 져 날랐지. 소로 쟁기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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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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