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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 임중혁 숙명여대 교수·사학 ijh@sookmyung.ac.kr

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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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오랑캐의 탄생’ 니콜라 디코스모 지음/이재정 옮김/ 황금가지/535쪽/2만원

황량한 들판을 떠돌며 국경을 넘어 약탈할 기회를 노리는 야만인들. 이것이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박힌 ‘오랑캐’의 이미지다. 중국 북방의 유목민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인 중국과 대립되는 ‘변방’이자 ‘야만인’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과연 초원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문화를 야만이라는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을까.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연구소의 니콜라 디코스모가 저술한 ‘오랑캐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이 책의 원제는 ‘Ancient China and its Enemies: The Rise of Nomadic Power in East Asian History (고대중국과 그 적대세력: 동아시아사에 있어서 유목민족세력의 흥기)’이며, 이 분야의 연구자들에게서 종래의 중화주의 역사관을 극복한 저술로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북중국에 출현한 유목민과 관련된 고고학적 정황을 밝혔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목축이 확산된 과정과 청동 야금술 및 수공업 기술을 발전시킨 문화의 등장에 관해 서술한다. 초원지대의 유목민은 일찍부터 기마술, 청동 및 철기 문화를 일구었으며, 특히 스키타이식 의장문화로 알려진 정교한 공예품은 현대인이 봐도 경탄할 만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발달된 문화가 중국 상나라 및 초기 주나라에 전파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유목민이 결코 ‘야만인’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융과 흉노의 상관성

2부에서는 문헌 기록과 그것에 담겨 있는 이념을 통해 중국인이 북방을 문화적·정치적으로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살펴본다. 중국의 고대 문헌은 문화주의적 관점으로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의 세계를 철저하게 구분한다. 많은 사람이 화하와 이적의 구분이 ‘사기’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하지만 ‘사기’ 이전에도 유목민을 이적이라고 부른 증거는 허다하다. 그렇게 불렸던 대표적인 민족이 서주시대에 활약한 험윤(?풻)과 융족(戎族)이다.

특히 융족은 중국의 내지에까지 들어와 거주하며, 주나라 공동체와 적대관계를 형성했다. 이들은 중국의 공격을 받아 점차 역사기록에서 사라져갔는데, 한편으로 중국에 동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유목집단에 흡수되기도 했다. 그후 중국은 새로운 기마 유목민족이 지배하는 새로운 군사사회와 접촉하게 되었다. 호(胡)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은 융보다 군사적으로 더 잘 조직된 집단이었다.

3부에서는 북방지역 최초의 통일제국이라 할 수 있는 흉노(匈奴)제국의 탄생 배경과 과정,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과 화친조약 등 양국의 관계, 나아가 양대 세력권 형성에 따른 국제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융과 호(흉노)가 동일민족이라고 보는 주장에 대해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흉노와 산융(山戎), 훈죽(熏粥), 순유(淳維), 귀방(鬼方), 험윤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이 명칭들이 발음상의 유사성에 불과하며, 고고학적으로 볼 때 융은 목축-정주민족으로서 유목민족인 흉노와는 다르다고 했다. 이 주장은 흉노를 선진(先秦) 시기의 북방 소수민족과 혼동해서는 안 되고, 진시황 이전에는 중국 북부에서 유목생활을 하지 않은 서방 초원의 유목민족이라는 잠중면(岑仲勉)의 설과 동일하다.

그러나 ‘사기’와 주석서는 융과 흉노의 명칭이 가지는 상관성을 끈질기게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몽염(진나라의 장군)이 북으로 융인을 축출하고 유중(楡中)의 땅 수 천리를 개척했다” “서북으로 융을 취하여 34현을 설치했고, 황하 일대에 장성을 쌓고 몽염으로 하여금 30만 군대를 거느리게 했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몽염이 축출한 세력은 ‘사기’에 한결같이 융, 융적으로 나타난다.

현재 흉노의 민족계통이 몽골족, 돌궐족, 슬라브족인지, 언어는 몽골계, 돌궐계, 이란계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가 이 부분이 현재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난제라고 하면서도 융과 흉노를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구별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히려 학술계에서는 흉노가 다양한 민족의 연합체라는 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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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혁 숙명여대 교수·사학 ijh@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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