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 임중혁 숙명여대 교수·사학 ijh@sookmyung.ac.kr

    입력2005-09-12 10: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오랑캐의 탄생’ 니콜라 디코스모 지음/이재정 옮김/ 황금가지/535쪽/2만원

    황량한 들판을 떠돌며 국경을 넘어 약탈할 기회를 노리는 야만인들. 이것이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박힌 ‘오랑캐’의 이미지다. 중국 북방의 유목민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인 중국과 대립되는 ‘변방’이자 ‘야만인’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과연 초원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문화를 야만이라는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을까.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연구소의 니콜라 디코스모가 저술한 ‘오랑캐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이 책의 원제는 ‘Ancient China and its Enemies: The Rise of Nomadic Power in East Asian History (고대중국과 그 적대세력: 동아시아사에 있어서 유목민족세력의 흥기)’이며, 이 분야의 연구자들에게서 종래의 중화주의 역사관을 극복한 저술로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북중국에 출현한 유목민과 관련된 고고학적 정황을 밝혔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목축이 확산된 과정과 청동 야금술 및 수공업 기술을 발전시킨 문화의 등장에 관해 서술한다. 초원지대의 유목민은 일찍부터 기마술, 청동 및 철기 문화를 일구었으며, 특히 스키타이식 의장문화로 알려진 정교한 공예품은 현대인이 봐도 경탄할 만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발달된 문화가 중국 상나라 및 초기 주나라에 전파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유목민이 결코 ‘야만인’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융과 흉노의 상관성

    2부에서는 문헌 기록과 그것에 담겨 있는 이념을 통해 중국인이 북방을 문화적·정치적으로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살펴본다. 중국의 고대 문헌은 문화주의적 관점으로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의 세계를 철저하게 구분한다. 많은 사람이 화하와 이적의 구분이 ‘사기’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하지만 ‘사기’ 이전에도 유목민을 이적이라고 부른 증거는 허다하다. 그렇게 불렸던 대표적인 민족이 서주시대에 활약한 험윤(?풻)과 융족(戎族)이다.



    특히 융족은 중국의 내지에까지 들어와 거주하며, 주나라 공동체와 적대관계를 형성했다. 이들은 중국의 공격을 받아 점차 역사기록에서 사라져갔는데, 한편으로 중국에 동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유목집단에 흡수되기도 했다. 그후 중국은 새로운 기마 유목민족이 지배하는 새로운 군사사회와 접촉하게 되었다. 호(胡)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은 융보다 군사적으로 더 잘 조직된 집단이었다.

    3부에서는 북방지역 최초의 통일제국이라 할 수 있는 흉노(匈奴)제국의 탄생 배경과 과정,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과 화친조약 등 양국의 관계, 나아가 양대 세력권 형성에 따른 국제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융과 호(흉노)가 동일민족이라고 보는 주장에 대해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흉노와 산융(山戎), 훈죽(熏粥), 순유(淳維), 귀방(鬼方), 험윤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이 명칭들이 발음상의 유사성에 불과하며, 고고학적으로 볼 때 융은 목축-정주민족으로서 유목민족인 흉노와는 다르다고 했다. 이 주장은 흉노를 선진(先秦) 시기의 북방 소수민족과 혼동해서는 안 되고, 진시황 이전에는 중국 북부에서 유목생활을 하지 않은 서방 초원의 유목민족이라는 잠중면(岑仲勉)의 설과 동일하다.

    그러나 ‘사기’와 주석서는 융과 흉노의 명칭이 가지는 상관성을 끈질기게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몽염(진나라의 장군)이 북으로 융인을 축출하고 유중(楡中)의 땅 수 천리를 개척했다” “서북으로 융을 취하여 34현을 설치했고, 황하 일대에 장성을 쌓고 몽염으로 하여금 30만 군대를 거느리게 했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몽염이 축출한 세력은 ‘사기’에 한결같이 융, 융적으로 나타난다.

    현재 흉노의 민족계통이 몽골족, 돌궐족, 슬라브족인지, 언어는 몽골계, 돌궐계, 이란계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가 이 부분이 현재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난제라고 하면서도 융과 흉노를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구별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히려 학술계에서는 흉노가 다양한 민족의 연합체라는 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호복기사와 만리장성

    전국시대에는 호복기사(胡服騎射)의 채택과 장성의 축조라는 기념비적 사건이 있었다. 호복기사는 유목민의 의복을 입고,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형태로 고구려 무용총벽화에서도 그 모습이 발견된다. 중앙아시아의 이란계통 파르티아 유목민이 이런 자세로 활을 잘 쏴서 ‘파르티안 샷(Parthian Shot)’이라고도 한다. 근대적 무기가 출현하기 이전에 쏜살같이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며 쳐들어오는 기마전술의 전술적 가치는 정착 농경민족의 처지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중국은 호복기사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만리장성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북방을 정복하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어적 구실보다는 군사적 공격과 영토팽창이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흉노연합의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진나라가 중원을 통일한 후 몽염 장군을 보내 오르도스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군사 행동이 흉노제국을 형성한 원동력이 됐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묵특(冒頓) 정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4부에서는 역사 서술 체제, 사료 수집과 비판 등의 면에서 동양 역사 서술의 전범으로 평가되는 ‘사기’를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사기’의 ‘흉노열전’이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씌어진 유목민에 관한 최초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만 ‘사기’로 인해 북방 유목민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사마천이 ‘사기’에 유목민을 무질서한 야만인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사마천이 ‘사기’에 흉노를 기록한 방식을 들어 ‘오랑캐에 우호적인 사람’이라고 보일 정도로 객관적이라고 봤다.

    사마천의 ‘사기’ 새롭게 조명

    그렇다면 사마천이 흉노제국을 비롯한 이민족의 역사를 ‘사기’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사마천이 북방 유목민을 중국사의 영역에 포함시켜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서술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봤다. 다시 말하면 북방 유목민이 제국의 규모를 이룰 만큼 위협적인 존재가 됐고, 중국인은 이러한 현상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열등하고 흉포한 존재로만 인식되던 주변 민족을 생략하고는 중국 역사를 도저히 기술할 수 없는 대외적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 진시황 시기부터 한 무제 때에 이르기까지 주변 이민족과 영토확장 전쟁이 빈번해져 중국 주변지역에 대한 민족적, 지리적 이해가 넓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북방 유목민을 중국역사의 일부로 통합하는 방법을 꾀했고, 그 방법으로 찾은 것이 점성술적 음양이론인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다. 이에 따르면 천체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지상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하늘의 별들은 저마다 땅의 각 지역을 관장한다. ‘흉노열전’에 묘사된 흉노의 땅을 지배하는 별은 전쟁과 재앙을 상징하는 형혹(熒惑·화성)이다.

    저자는 사마천이 과거 중국 역사에서 활약한 이방인들과 흉노를 연결하는 허구적인 계보를 설정함으로써 흉노가 지니는 무섭고 신비스러운 본질을 제거하고, 극복할 수 있는 존재, ‘이미 알고 있는 범주’로 환원해버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북방 길들이기’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사마천의 주장은 그렇게 명쾌한 설명인 것 같지는 않다. 흉노의 기원설 역시 사마천이 단순히 일찍이 있었던 설을 채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우리는 북방 이민족의 역사를 중국사 연구의 부수적 존재로만 인식해왔다. 중국인이 기술한 역사서에 얽매여 중국인이 가졌을 편견에 등한했던 것도 사실이다. 역사 서술의 행간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학자 본연의 자세이지만, 우리는 어느덧 중국인의 시각으로 역사를 봐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문헌에만 의존하는 연구전통에서 벗어나 고고학적 자료 등을 도입하고, 역사서의 행간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으려는 디코스모의 연구자세는 배울 만하다. 다만 저자가 흉노 유목제국의 권력구조, 내부의 민족구성, 귀족체제 등과 같은 문제들을 고찰했더라면 ‘동아시아사에 있어서 유목민족세력의 흥기’라는 책의 원제에 더욱 접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