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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하고놀자

일본과 중국 수필의 백미

‘마쿠라노소시’ ‘내가 사랑하는 삶-幽夢影·幽夢續影 ’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일본과 중국 수필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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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은 다른 사람 눈에 띄는 데 내놓기 싫다. 남들 없는 곳에서 혼자만 그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본디 성정이 쩨쩨한 탓인지 나는 그렇다. 혼자 품에 끼고 남이 볼세라 몰래 킥킥거리며 읽는 책 두 권을 꺼내놓으려고 한다. 나름대로 큰맘을 먹은 것이다. 하나는 350년 전에, 다른 하나는 1000년 전에 씌어진 책이다. 앞의 책은 청나라 초기와 말기에 산 두 사람이 쓴 걸 합본한 것이고, 뒤의 것은 일본의 한 궁녀가 지은 책이다. ‘내가 사랑하는 삶-幽夢影·幽夢續影’ ‘마쿠라노소시’가 그것이다. 가히 수필문학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이 책들을 읽는 내내 아름다운 우리말로 공들여 옮긴 두 번역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삶-幽夢影·幽夢續影’은 저자가 두 사람이다. 청나라 초기의 문장가 장조(張潮)와 말기의 문장가 주석수(朱錫綏)가 그들이다. 두 사람의 책을 한 권에 합본한 이 책은 잠언 형식의 짧은 글들로 구성된 청언소품집(淸言小品集)이다. 주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취를 다루는데, 삶에 두루 통하는 이치를 추구하되 도락이 주는 기쁨을 외면하지 않는다. 균형과 조화를 꾀하며 나아가는 문장은 거침이 없다.

그렇다고 수다스럽지도 않다.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당시에 난만하게 퍼져 있는 지저분한 풍속을 비판하는 데 통렬하고, 자연에서 심미감을 자극하는 걸 포착하는 데 날렵하다. 입신양명을 꿈꾸고 오지랖 넓히며 세간의 일에 분주하게 간섭하기보다는 한걸음 물러나 앉은 자리에서 몸과 마음의 고요를 구하고 다독이는 자의 한정(閒靜)이 문장에 배어 있다. 책 제목도 ‘숨어 사는 이의 꿈 그림자’라고 하지 않는가!

촌철살인, 금과옥조

꽃에 대해 품평할 때 지은이의 청신한 인격에서 뿜어나오는 아취(雅趣)가 느껴진다. 그의 문장은 자연스러워서 대숲에 바람이 이는 것과 같고, 계곡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것과 같다.

“매화는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초는 사람을 그윽하게 하며, 국화는 사람을 소박하게 하고, 연꽃은 사람을 담백하게 한다. 봄 해당화는 사람을 요염하게 하고, 모란은 사람을 호방하게 하며, 파초와 대나무는 사람을 운치 있게 하고, 가을 해당화는 사람을 어여쁘게 한다. 소나무는 사람을 빼어나게 하고, 오동은 사람을 해맑게 하며, 버들은 사람에게 느낌을 갖게끔 한다.”

읽는 이의 눌리고 접힌 마음을 펴주는 것은 그 문장이 삼(麻)에서 삼베(布)가 나오듯 어디 한군데 옹색하거나 억지스러운 데가 없는 까닭이다. 널리 섭렵하여 두루 통하는 식견과 핵심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조화를 이루니, 사물의 요점을 새기는 데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다정한 사람은 반드시 여색을 좋아하지만,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모두 다정한 것은 아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은 반드시 운명이 기박한데, 운명이 기박한 사람이 전부 얼굴이 예쁜 것은 아니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옳거니, 다정한 인격이 여색을 탐하는 허물도 가려주는가 보다 하고 무릎을 치는 것이다. 그 옛날에도 가족은 지극한 사랑의 대상이면서 또한 떨쳐낼 수 없는 사슬이었나 보다. 지은이는 “아내와 자식은 자못 사람을 얽매이게 하기에 족하다. 그래서 나는 화정 임포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삼았다는 매처학자(梅妻鶴子)의 이야기를 선망한다”고 적고 있다. 가족을 위해 제 꿈과 이상을 접어야 하는 오늘의 가장이나 옛 가장은 그 매인 삶의 부자유와 고달픈 처지에서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쪽을 펴고 읽어도 금과옥조 아닌 데가 없다. 글이 막히고 생각이 정체될 때 나는 이 책을 읽는다. 벌써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먼저 글쓴이들의 청신한(요즘 말로 하면 쿨하다!) 인격에 편벽된 내 인격은 일격을 당하고, 붉은 꽃과 같은 단심(丹心)이 내비치는 그 문장의 신묘함에 기가 죽는다. 쓰는 일에 얼마나 더 정진해야 이러한 경지에 오를까?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달이 연못 밑바닥을 뚫어도 물은 흔적이 없다 한다. 내 문장은 빗자루만 들어도 먼지가 사방에 날리고, 연못 근처에만 갔을 뿐인데 맑은 물이 소용돌이쳐 흙탕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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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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