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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전파되는 맹신 동물로의 회귀

전파되는 맹신 동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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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되는 맹신 동물로의 회귀

일러스트 박진영

“어,어! 누르지 마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좁은 공간 한편에서 터져 나왔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엘리베이터에 늦게 탄 한 젊은 여성이 문을 닫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그 여성이 주춤하고 손을 그냥 내리자 다른 탑승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엘리베이터는 단추를 누르면 그때부터 또 3분을 기다리거든요” 하고 말한다. 모두 그 여성이 단추를 누르는 ‘무모한 짓(?)’을 중단한 것을 기뻐하는 눈치였다.

이러한 광경은 그 다음 7호선 살피재역에서도 재현됐다. 필리핀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사람들이 다 탔으니) 엘리베이터의 목적층 단추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단추를 누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에 걸려온 옆 사람들의 제동과 간섭에 그는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문득 ‘이 사람들, 참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엘리베이터의 제어장치는 처음 버튼을 누른 시각으로부터 3분 후에 작동하는 것이지, 누를 때마다 다시 3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를 때마다 3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지식(?)은 그저 ‘들은 풍월’로 들은 대로 남의 이야기를 되팔고 있는 것이고, 그 사람들은 틀린 지식을 갖고 남에게 함부로 간섭하려 들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참 쉽게 남을 가르치려 든다. 자신이 ‘마땅히 그렇다’고 생각할 때, 남에게 강요하는 태도도 단호하다. 이것은 대단한 신념이다. ‘신념’에서 나오는 이러한 행동은 상대편과 나 모두를 위해서 좋으라고 하는 일이기에 잘못을 탓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참고 기다려라’고, 혹은 ‘참을성 없이 함부로 단추를 눌러서 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렇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떠나자고 단추를 누르면, 제어부는 곧 상황판단을 위한 안전 확인 절차인 서브루틴(subroutine)을 건너뛴 채 바로 출발할 수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단축된다. 결과적으로 전기도 절약되기 때문에 ‘떠납시다’ 하고 엘리베이터의 단추를 누르는 일은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단추 하나의 전기를 아낀다고, 오히려 무수히 많은 논리회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서 시간과 전기를 낭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문 닫는 단추를 누르려는 사람에게 ‘참을성이 결여됐다’며 비난하는 것은 더군다나 이해 못할 일이다.

한국인에게 ‘너희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처분만 기다려라’는 분위기가 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런 분위기는 억압적인 통치자에게 매우 편리한 사회환경일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처분만 기다리라’는 복종 분위기가 (지하철 객차 유리창 하나 깨지 않고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간) 대구 지하철 화재에서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게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엘리베이터라는 기계장치에 대해서까지 기다림의 미덕을 갖도록 강요하는 압력은 실생활 곳곳에서 제법 많이 관찰된다.

한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지상층에 가겠다는 단추와 문 닫는 단추를 눌렀더니, 먼저 탄 아낙들이 “손을 대면 그때부터 3분!”이라며, 또 늦겠다고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제어회로에 ‘어디에 간다’거나 ‘다 탔다’를 알려서도 안 되고 그저 엘리베이터를 타면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필자가 미소를 띠고 “잠깐만요” 하고 양해를 구하며, 엘리베이터가 떠나기 직전까지 두세 번 단추를 더 눌러 그래도 제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출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출발 단추를 다시 누른다고 해서 늦어지는 것은 아님을 증명하고 “내가 직접 설계에 관여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해줬는데도, ‘단추에 손대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사람들의 맹신(盲信)이 좀처럼 흔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정확한 지식을 쌓아 더 깊은 지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서 들은 그대로 맹목적으로 말을 옮기고, (확인해보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옮겨, 사실은 그 이야기가 잘못된 것이어서 그 허황된 소문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있어도) 남의 이야기를 쉽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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