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한일 양국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 김호섭 중앙대 교수·국제관계학 interkim@chol.com

    입력2005-12-15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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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국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현대송 옮김/ 역사비평/223쪽/9800원

    20세기 초중반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을 침략했던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일본인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제국주의 긍정론이다.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한 것은(우익은 ‘진출’이라고 표현한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아시아 지역에 확대되는 것을 막고, 일본 및 아시아 민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다.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것도 미국이 일본의 석유 공급선에 압박을 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고 한다. 즉 전쟁은 일본이 시작했지만, 시작하도록 상황을 만든 (나쁜) 국가는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대개 우익 인물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또 패전 이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군국주의 국가 지도자들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처형한 것은 승전국의 논리일 뿐, 일본인 자신들은 전범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순국자(殉國者)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평양전쟁에 승리했다면 전쟁 영웅이 됐을 지도자들이 패배했기 때문에 전범이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최근 일본 정치가들의 입을 통해 점점 더 자주, 공개적으로 표명되고 있다.

    제국주의 역사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은 참회론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이들은 과거 제국주의 역사는 일본인 스스로 참회해야 하며, 특히 태평양전쟁은 “만대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의 전쟁”이며 일본을 “거의 망국의 위기에 몰아넣었으며” 인접국가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고 과오를 인정한다.

    1998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오부치(小淵) 수상은 “식민지 지배에 의해서 다대한 고통과 피해를 주었으며, 이를 반성한다”며 제국주의 참회론을 표명했다. 1995년 패전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국회가 발표한 결의안도 거의 같은 내용이다. 제국주의 참회론은 태평양전쟁이 일본인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스스로 반성하고 그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갖는 일본인들을 우리는 양심세력이라고 부른다.

    제국주의 긍정론과 참회론의 대립



    현실정치에서 제국주의 긍정론과 참회론 간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문제다. 왜냐하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제국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벌인 전쟁에서 전사한 일본인 군인들을 제사 지내며 추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1978년 비밀리에 합사되어 제사를 받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고 규탄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범을 포함해서 제국주의 전쟁의 전사자들을 참배하고 추모하는 행위이며 이것은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긍정하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수상은 정부를 대표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반성하는 것이라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수상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야스쿠니 신사에 5년 연속 참배한 고이즈미 수상은 공식적으로 제국주의 참회론의 역사인식을 표명한다. 그는 “A급 전범들도 전범이며 지난 태평양전쟁은 국책(國策)을 그르친 결과로서, 시작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고 국회에서 답변한 바 있다.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해서는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일본인 전몰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몰자들에 대한 추모는 개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본 문화에는 사람이 일단 죽으면 전범이라는 구별이 없어진다는 게 고이즈미의 변명이다. 일본 수상이 개인 감정의 문제, 혹은 문화적이며 종교적인 문제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감정, 역사인식, 정교분리, 문화

    도쿄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저술한 ‘야스쿠니 문제’는 제국주의 참회론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야스쿠니 신사와 그 참배 문제에 대해 쓰고 있다.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관련된 문제를 감정, 역사인식, 정교분리, 문화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첫째, 개인 감정의 차원에서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찬미 시설”이라고 반박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국가 지도자들이 제국주의를 시작할 무렵, 대외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국가가 찬미하고 최고의 영예를 부여함으로써 다른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게 하려는 의도로 만든 시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참배하는 것은 제국주의 지도자들의 의도를 수용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둘째, 역사인식 측면에서 전쟁 전사자를 애도하기 위해서는 그 전쟁의 성격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생긴 대규모 사망자와 피해자가 아시아 국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국민을 전쟁에 동원해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책임이 있는 A급 전범에 대해 일본인 스스로가 불문에 부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셋째, 정교분리라는 측면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며 정치적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천황을 위해 죽은 자들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모든 국민으로부터 찬미받게 함으로써 현세의 국민도 천황을 위해서 자랑스럽게 죽도록 유도하는 정치적 종교시설이라는 것. 저자는 전범재판에 의해 처형된 전범들이 전사자가 아닌데도 신사에 합사된 것은 그들이 천황을 위해서 희생됐다는 정치적 주장을 야스쿠니 신사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편다. 저자는 또 야스쿠니 신사가 신도의식에 따른 종교적인 국립 전몰자 찬미 시설이며 그 설립 목적은 제국주의 국가 건설에 있다고 주장한다.

    넷째,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비판한다. 한국과 중국이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 합사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야스쿠니 신사측은 “죽은 자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 일본의 고유한 문화”라고 주장한다. 전범이라도 사후에는 차별받지 않으며 그것은 일본 사회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죽은 자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 일본 문화라는 주장은 허구라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황 편에서 싸워 죽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 즉, 야스쿠니 신사에는 메이지유신 시기 천황의 반대진영에 섰던 반정부군 전사자의 위패는 들어가지 못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희생당한 적군의 영령들과 일본 민간인 사망자들에 대해서는 추모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가 죽은 자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 지식인의 과제

    야스쿠니 신사와 그 참배행위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한 다카하시 교수는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제국주의 국가를 건설했던 논리를 답습하는 것으로 국내외에 존재하는 제국주의 희생자들의 감정과 역사인식에 비추어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중국과 한국이 야스쿠니 신사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종교적 색채가 없는 국가 추모 시설”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는 전사자 추모행위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어떠한 추모 시설이건 ‘제2의 야스쿠니 신사’가 되기 쉽다고 경고한다.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의 제국주의가 확대·심화되는 역사 속에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인의 마음속에 자리잡는 과정을 검토하면서, 시설은 시설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시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정치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는 새로운 추모 시설 건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진정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많은 저술 가운데 다카하시 교수의 저서가 특히 의미를 갖는 것은 일본 지성인이 아니면 지적하기 어려운 점들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이 제기하는 역사인식의 측면뿐 아니라 일본인의 문화, 감정, 정교(政敎)분리의 측면에서 제기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비판은 그 사회에 몸담지 않으면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근본적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수미일관되는 비판이 현실정치에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한일 양국 지식인들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양심세력의 역사인식을 일본인 대다수가 보유하도록 하는 것은 일본인만의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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