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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 시 형식의 증거 ‘김상옥 시전집’

  • 이근배 시인, 재능대 교수

한국 시 형식의 증거 ‘김상옥 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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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 형식의 증거 ‘김상옥 시전집’

‘김상옥 시전집’ 민영 엮음/창비/2만5000원

대나무처럼 곧고 푸른 역사를 청사(靑史)라고 한다. 이 나라의 푸른 역사 속에는 저 고려시대부터 뻗어내려온 오직 하나뿐인 민족문학의 전통형식, 시조의 숨결이 가쁘게 뛰고 있다.

두 해 전 반세기 넘게 닫혀 있던 북녘 땅 개성에 갔을 때 내가 눈이 아프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가슴에 담은 것은 선죽교였다.

개국(開國)의 제왕이어서였을까, 태조 왕건의 묘는 새로 문무상을 우람하게 깎아 세우고 단장했으나 어쩐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반혁명의 사적(史蹟)이라 꾸미지 않은 것일까, 600년 전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선죽교는 오히려 어느 궁성보다도 높이 우러러보였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저 500년 고려왕조를 한몸으로 떠받치며 목숨과 바꾼 노래 ‘단심가’는 내 머릿속에 맨 처음 박힌 이 땅의 노래였고, 그 영원한 민족의 시가(詩歌)를 청청히 흘려보내고 있는 다리가 선죽교 아닌가. 그 다리의 이름은 선지교(選地橋)였는데 뒤에 포은이 흘린 피가 묻은 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아났다 하여 선죽교(善竹橋)로 불리게 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이렇듯 역사와 시조, 그리고 대나무는 한뿌리로 자라나고 있었으니 100년 전인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지자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등이 자결했는데 민영환의 갑옷과 칼이 있던 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았다고 했다. 그 충절을 기려 1906년 ‘뎨국신문’ 8월13일자에는 시조 ‘혈죽가 십절(十絶)’이 명누, 충현 등 10인의 여학도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이것이 곧 신(新)시조의 첫 장을 연 것이다.

치열하게 밝혀 든 모국어 혼불

올해는 광복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 모국어의 광복 60년을 기념하듯 ‘김상옥 시전집’이 우리 앞에 푸른 대나무로 솟아올랐다. 이것은 육당 최남선이 “시조는 한국시가의 본류(本流)”라고 높이 외치면서 시조의 중흥에 불을 붙인 후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 정주랑 조운에 이어 시조를 현대시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이 이룩한 단 하나의 푸른 역사다.

김상옥은 1920년 3월15일 경남 통영시 항남동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통영공립보통학교를 마친 것이 학력의 전부이다. 그는 하늘이 준 뛰어난 시재(詩才)로 보통학교 시절부터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에는 김용호, 함윤수 등과 동인지 ‘막(?)’을 창간하고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10월, ‘문장’에 시조 ‘봉선화’가 이병기의 추천으로 실리고, 이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낙엽’이 당선되었다. 동년배의 문학도들이 자유시 쪽으로 몰려갈 때 그는 시조의 물살을 일으키는 외롭고 고달픈 길을 나섰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제의 강압에 많은 지식인이 훼절(毁節)의 오점을 찍을 때에도 초정은 체포, 구금, 도피와 은신을 거듭하면서 몸이나 글을 굽히기를 단연코 거부했으며 오직 시조 창작에 몰두, 해방공간인 1947년 시조집 ‘초적(草笛)’을 출간한다.

바로 한 해 앞서 나온 ‘청록집(靑鹿集)’이 조지훈·박목월·박두진 세 시인이 각각 시집 한 권 분량이 안 되는 시를 모아 묶은 것이고, 서정주의 ‘화사집’ ‘귀촉도’가 각각 24편을 수록했던 것에 비해 ‘초적’의 41편은 시대적 어둠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모국어의 혼불을 밝혀 들었던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시조집 ‘초적’이 출간되자 시조시단을 넘어서 범문단으로부터 갈채가 쏟아졌다.

소설가이며 당대 최고의 문학논객이던 김동리는 “‘초적’의 작가 김상옥씨야말로 노산, 가람 이래 우리 시조시단의 최고봉을 섭렵한 시인으로 한번 ‘초적’을 읽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의가 없을 것”이라고 ‘민중일보’ 시 평단에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정주는 “그는 모든 사물을 볼 때마다 거기에 살다가 죽어간 옛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넋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우리 시인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눈을 가진 선수이다. 귀신이 곡(哭)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의 시 속에는 늘 귀신도 많이 참가하여 곡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으니 시를 보는 눈이 귀신의 경지에 달한 서정주도 그만 넋을 잃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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