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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너무나 추웠던 그해 여름

  • 채문수 / 일러스트·박진영

너무나 추웠던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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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추웠던 그해  여름
나는 지금도 한국통신 장거리건설국 특수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을 떠올리기 싫다.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업무로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그해 여름이 너무도 추웠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5월13일, 춘천중계소장직을 끝으로 3년여의 지방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가 그림 같은 북한강을 끼고 달리자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가벼운 기분이 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5월의 하늘은 푸르렀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짙은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주말마다 열차나 버스로 서울의 집에 갔다가 월요일 이른 아침 출근해서 한 주를 춘천에서 보내곤 했지만, 그날처럼 한가하게 차창 밖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한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늘 업무에 시달렸고 그래서 피곤했다. 언제 지방근무가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미래도 피로를 가중시키는 데 한몫 했다. 나는 늘 차에 타자마자 졸기 바빴다.

1년 반 동안 경북 문경 점촌중계소장으로 일하던 날들과 춘천 시절을 한 페이지씩 떠올리는 동안 열차는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물과 산이 그림같이 어우러진 춘천에서 회색 먼지와 소음으로 시끄러운 청량리역에 도착하자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가족이 이곳에 있는 것을.

이튿날 서울 자양동 장거리건설국에서 특수과장 발령장을 받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형초 국장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특수과 업무의 미묘한 특성을 들려줬다. 당시 정부의 통신통합 정책에 따라 한국통신이 시설과 관리를 맡은 군과 해경, 경찰, 검찰의 통신업무를 관리하는 곳이 특수과였다.

국장은 덧붙여서 올림픽 통신 지원부서의 일도 겸임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투자공사 업무를 전담한 채 과장이 송 부장을 도와 여의도 IBC(국제방송센터) 내 국내방송중계센터 시설공사 추진업무도 맡아줘야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결국 IBC에 파견 중인 송 부장과 협의해 오전엔 IBC로 출근해 그쪽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엔 장거리건설국에서 본연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통신 올림픽 전담반

제24회 하계올림픽이 9월17일부터 10월2일까지 서울에서 치러지게 되어 한국통신도 전담반을 편성해 전사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전담반의 핵심업무는 여의도 KBS 옆에 새로 지은 IBC 건물 안의 국제·국내 방송중계센터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모든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상황을 한국 방송사 중계반이 촬영하면 그 영상을 IBC까지 완벽하게 전송하는 것이 한국통신의 책임이었다. 한국통신의 전송로를 이용하도록 기술 구성이 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 영상은 IBC 청사 내의 한국통신 국내방송중계센터로 모이고 이를 주(호스트) 방송사인 KBS로 보내면 KBS가 각 방송사와 서울올림픽 중계권자인 미국 NBC 방송사(IBC 내에 있음)로 보내주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제작된 영상은 국제방송중계센터에서 곧바로 IBC 마당에 설치된 이동용 지구국으로 보내진다. 그러면 지구국을 통해 인도양과 태평양의 3만8000㎞ 상공에 떠 있는 통신위성으로 쏘아올려 각국의 방송국으로 중계되어 세계인이 보도록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보면 국내방송중계센터야말로 중계의 심장부였다.

내가 IBC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국내방송중계센터에 올림픽 경기를 중계할 장비가 거의 다 설치된 상태였다. 국제방송중계센터 또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당에 태평양과 인도양을 책임지는 2기의 트레일러로 된 이동용 지구국까지 끌어다놓아 그 위용이 대단했다.

한국통신의 기간통신망을 이용하지 않고는 올림픽경기 방송중계가 불가능했다. 한국통신은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가뜩이나 많은 기존 시설에 또 새로운 시설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각 경기장과 IBC까지 새로운 회선망을 구성하기 위해 경기장 간에 광케이블 등을 새로 설치해야 했다. 메인스타디움만 해도 많은 회선이 필요했다.

당시 우리의 광통신 기술은 지극히 열악한 상태였다. 우리 기술로 만든 광단국 장치라는 게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90M 방식(1344회선 증폭)이 고작이었다. 방송중계장치인 ‘디버스’라는 장비는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통신장비 제조회사인 D사가 만들어 독점으로 납품했는데 성능을 신뢰할 수 없었다. 특히 실내 온도가 17℃ 이상이 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한심한 장비 때문에 운용요원들은 한여름에도 벌벌 떨고 지내야 했다.

당시 외국엔 우수한 방송중계장비가 많았으나 국산화 장려 정책에 따라 수입할 수 없었다. 그나마 메인스타디움까지는 미국 로크웰사의 최첨단 장비인 565M 광단국 장치(8064회선 증폭)가 설치돼 운용요원들이 다소 위안을 받고 있었다. 이 장비는 당시 로크웰 한국지사장인 박두진씨(작고)의 도움으로 무료 임차해 설치한 것이다. 미국 카텔사의 케이블TV 장비도 메인스타디움에 설치돼 있었다. 이 장비는 올림픽이 끝나고 우리나라 케이블방송의 효시가 되는 목동 케이블방송국의 최초 설치 장비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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