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신세대가 열광하는 가요 들여다보기

“내게 들어와 펌프질을 해…” 노골적 性 묘사, 욕설, 분노의 ‘종합선물세트’

  • 이승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jda@donga.com

    입력2006-03-29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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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섹슈얼 코드, ‘누나’

    신세대가 열광하는 가요 들여다보기
    ‘연하남성과 연상여성’으로 이뤄진 커플은 더 이상 새로운 트렌드가 아닙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엔 “어린 남자 한번 못 사귀어보고 시집가면 평생 후회한다”는 말까지 돌 정도니까요. 그래서인지 2004년 당시 고교 3학년생이던 가수 이승기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지닌 감성을 직설법으로 표현한 노래 ‘내 여자라니까’로 금방 스타덤에 올랐죠.

    모성애를 자극하는 곱상한 얼굴의 이 고3 소년이 다음과 같은 노랫말을 구성지게 부를 때 많은 ‘누나’가 뒤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이 노래는 ‘누나’를 사귀는 수많은 연하남의 노래방 ‘18번’이었죠.

    “나를 동생으로만 그냥 그 정도로만 귀엽다고 하지만 누난 내게 여자야. 누나가 누굴 만나든지, 누굴 만나 뭘 하든지, 난 그냥 기다릴 뿐. 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게.”

    이렇게 ‘누나’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 노래가 유행한 지 2년이 지난 2006년. 공주병 걸린 듯한 콧소리를 자랑하는 탤런트 현영이 3월 초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누나의 꿈’이라는 곡을 들고요. 이 곡은 발매 1주일이 채 안 돼서부터 젊은층 사이에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경쾌한 멜로디의 이 노래는 ‘내 여자라니까’에 대한 답가(答歌) 형식으로, 연하남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누나’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알쏭달쏭 글쎄 넌 모르겠지. 신비로운 눈빛이 너를 부르는 걸 피하지 마. 즐겨. 느껴. 이제야 비로소 내 꿈 속 마침 주인은 너라니깐. call me. touch me.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 누나의 마음을 봐. 사랑 가득해. 나이 따위가 어때. hold me. kiss me.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 누나의 꿈을 찾게 믿어 주겠니…나의 덫에 걸려, 묶여, 아무데도 못 가. 찜했어. 너만이 내게 보이는 동안 못 가. 별수없어…나만 믿어. 따라만 와.”

    처음에는 “나이 따위가 어떠냐”면서 연하남을 설득하는 듯하지만, 금방 돌변해서 “나의 덫에 걸렸다. 내가 찜했으니, 넌 아무데도 못 간다. 별수없다”며 협박조로 나옵니다. 결국엔 사회 경험이 많은 장점을 내세워 연하남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유혹’하죠. “나만 믿어. 따라만 와” 하면서 말이에요.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의, 누나 누나 누나의”라는 신나는 후렴구가 붙은 이 노래는 알고 보면, 연하남자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요즘 연상녀의 의뭉스런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 극단적 여성상위 세태 노골적 묘사

    최근에는 이렇듯 여성의 시각에서 애정행각을 주도하는 내용을 담은 노랫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남자를 ‘휘어잡는’ 여성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겠죠. 남자의 급작스런 이별선언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돌아선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여성상은 노랫말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추세입니다.

    지난 2월, 2집 앨범 ‘다크엔젤’을 내놓은 섹시 가수 이효리야말로 그 선두주자입니다. 3년 전 ‘10 Minutes’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그녀는 ‘남자를 유혹하는 적극적인 여성’에 머물러 있었죠. ‘10 Minutes’는 나이트클럽에서 여자친구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남겨진 한 남자를 10분 안에 유혹해 내 남자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2집에서 이효리는 ‘적극적인 여자’의 모습을 뛰어 넘어 거의 ‘굶주린 암사자’에 가깝습니다. 과거 ‘섹시함(sexy)’이 컨셉트였다면, 이번엔 ‘섹시함’과 ‘거칠음(tough)’을 동시에 내세우죠. 그녀의 노랫말에는 남자를 아예 ‘노예’로 삼고자 하는 터프한 모습이 담겨 있거든요. 다음은 이효리가 부른 ‘노예’의 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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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미인대회 출신 여성 4명으로 구성된 신세대 트로트 그룹 ‘LPG’는 ‘캉캉’이라는 노래에서 “순결까지 모두 가져”라며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편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너를 본 순간, 나는 봤어. 네 주위에 널 가지려고 하는 눈들. 하지만 난 의식 안 해. 그런 헛된 시선들. 난 알아. 이제 너는 곧 나의 노예가 되니…이제 나와 놀래? 단 하루만 나와 계약 할래?…한 순간의 욕망들, 나를 위해 보여줄래? 감추려고 하지 마. 너는 나의 노예…이리 가까이 다가와 날 안아. 노예여. 베이비….”

    이 노래는 최근 서울의 일부 클럽에서 음성적으로 유행하는 일명 ‘노예팅’의 세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예팅’은 무대 위에 남자들이 ‘매물’로 나오면, 무대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여성이 ‘경매’를 통해 자신이 점찍은 남자를 ‘구입’하는, 신종 성(性) 거래라 할 수 있죠. 남자는 최고가를 제시한 여자에게 ‘팔리게’ 되는데, 남자는 그날 밤 자신을 위해 거액을 지불한 여성의 ‘노예’가 됩니다. 그녀가 요구하고 명령하는 건, 성행위를 포함해 그 어떤 서비스(?)라도 기꺼이 수행해야 하는 거죠.

    하룻밤 화끈하게 놀고 뒤끝 없이 ‘쿨’하게 헤어지는 이른바 ‘원 나잇 스탠드’와 남자를 노예처럼 거칠게 다루는 극단적인 여성상위 세태의 결합이 이런 노랫말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젠 남자를 제압하는 내용을 담은 가사가 나오고 있죠. 1990년대만 해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입니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트로트 가사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미인대회와 모델선발대회 입상자 출신 여성 4명으로 구성된 신세대 트로트 그룹 ‘LPG’가 히트시킨 댄스곡풍 트로트 ‘캉캉’을 보시죠. ‘LPG’ 멤버는 캉캉춤을 추듯 두 다리를 이리저리 쭉쭉 아찔하게 뻗으면서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캉캉캉캉 사랑해요. 캉캉캉캉 좋아해요…내 사랑을 받아줘. 내 키스를 받아줘. 저 빛나는 별처럼 쏟아지는 내 순결을 모두 가져. 내 매력을 받아줘. 내 질투도 받아줘. 자 모든 걸 가져가. 찢어먹든 볶아먹든 맘대로 해…보고 싶어 너무너무. 안고 싶어 너무너무…언제 언제까지나, 야야.”

    사랑과 키스를 받아주는 것도 모자라서 순결까지 모두 가지라고 유쾌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찢어먹든 볶아먹든 맘대로 하라고 엄포까지 놓습니다. 떠나간 남자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속으로 삭이는 여성의 모습은 이런 ‘직설법’에 점차 묻혀가나 봅니다.

    참, ‘캉캉’을 부른 그룹 ‘LPG’의 LPG는 무엇을 뜻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액화석유가스’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LPG는 ‘Long Pretty Girl’의 이니셜을 따온 말입니다. ‘길고 예쁜 소녀’, 시쳇말로 ‘쭉쭉빵빵 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스우면서도 재미난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영어 가사는 음란의 면죄부?

    알고 보면, 요즘 여자가수들이 부르는 가요 중에는 두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섹스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단 적나라한 표현은 모두 영어 가사 속에 숨겨져 있어요. 노골적인 ‘한국말’은 방송심의 등에서 걸릴 우려가 있지만, 영어를 사용하면 심의를 가뿐히 통과하거나 적어도 피해갈 구멍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효리의 2집 중 ‘깊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를 볼까요.

    “너는 마치 나에게 지독한 마취 같이 so deep. 저 문이 닫히고 난 뒤 손끝에 스친 feeling so high. 아침은 oh shit 오지 않겠지. 저 촛불에 비춰진 so sexy put the thang on me…소릴 질러. 참지 마.”

    ‘so deep(깊이)’ ‘feeling so high(절정을 느끼다)’ ‘the thang(그것)’ 등은 감정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인 양 ‘위장’하고 있지만 성행위 혹은 성기를 암시하는 일종의 중의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일부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는데, ‘oh shit(제기랄)’이라는 욕설 때문이었어요. 이효리 측은 재빨리 ‘oh shit’를 ‘oh she(오 그녀여)’로 바꿔 나머지 방송사의 심의는 무사통과하는 기지(?)를 발휘했다고 하죠.

    가수 전혜빈이 지난해에 내놓은 ‘2:00 am’ 노랫말에 숨겨진 묘사는 한술 더 뜹니다.

    “Baby steppin steppin. 찐하게 Kissin Kissin. 넌 나의 손짓 거부 못해. 내게로 조금 더 step it down. 이 순간 가만히 down with me. 조금 조금씩 come in me. 내게로 jumpin jumpin jumpin up 날 미치게 Oh no. 조금 더 shake it shake it shake it up. 조금 더 내 허릴 잡고 흔들어…조금 더 느낌을 줘…I wanna pumpin pumpin 넌 땀에 젖어…이대로 사랑에 빠져 bounce…조금 천천히 low in me. 여기 너만의 come and get me. one two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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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혜빈의 히트곡 ‘2:00 am’은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끈적끈적한’ 행각을 묘사하는 데 영어 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글로 옮기면 민망할 정도다.

    제목 그대로 ‘새벽 2시’에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끈적끈적한’ 행각을 담은 이 노래의 가사야말로 가관입니다. ‘다가오다(steppin)’나 ‘키스하다(kissin)’는 노골적인 축에도 못 낍니다. 아예 ‘함께 엎어지다(down with me)’ ‘내게로 들어오다(come in me)’ ‘와서 나를 가져요(come and get me)’ ‘흔들다(shake it)’ ‘pumpin(펌프질하다)’ ‘탄력 있게 튕기다(bounce)’처럼 성행위 동작을 지칭하는 듯한 낯 뜨거운 단어들이 즐비하죠.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말 가사는 툭하면 방송심의에 걸리는데, 영어 가사는 잘 걸리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최근 영어 가사가 섞인 댄스곡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영어를 쓰면 의도를 숨길 수가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허스키하면서도 섹시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미국 가수 마이클 볼튼이 1995년 ‘Can I Touch You There’라는 제목의 노래를 내놓았을 때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은 당연히 이 노래가 말하는 ‘거기(there)’가 ‘성기’를 암시한다고 생각했어요. 비난이 쏟아지자 마이클 볼튼은 “여기서 말하는 ‘거기’란 상대의 마음, 혹은 신의 섭리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뜻한다”고 말함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죠. 국내 가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영어 단어들일지라도 가수측에서 “춤 동작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 세태 반영의 키워드=실업난, 동성애

    요즘 젊은이들의 가슴을 가장 짓누르는 건 아무래도 취업난이죠. 신세대는 청년실업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백수’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데 지쳤습니다. 그래서 실업자 신세를 즐김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꾀하고자 하죠.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겁니다.

    그룹 ‘더 자두’가 부른 ‘놀자’란 노래를 볼까요. 백수인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담으면서도, 직업 없이 놀아야 하는 상황을 “내친김에 계속 놀아버리자. 웃어버리자”하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자기암시를 거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삼류여고 졸업하고 백수생활 벌써 2년. 시간은 많고 미모는 없고. 일류대학 졸업하고 오라는 데 하나 없고. 돈 한푼 없고 얼굴은 되고. 내 멀쩡한 손 하얀 손으로 변해버렸네. 우우우 놀자. 우우우 놀자. 내친김에 계속 놀아버리자. 웃어버리자.”

    하지만 신세대가 ‘놀자’보다 더 좋아하는 곡은 바로 힙합 그룹 ‘드렁큰타이거’가 부른 ‘5000원 송’이죠. 이 노래에는 한 백수의 이야기가 다뤄집니다.

    “지갑엔 분명히 정확히 오천원이 있었는데. 골목길 빵가게 들어가 담배 한 갑을 샀는데. 진열대 옆에 놓인 허름한 TV의 그녀는 날 날 원한다며 사랑의 눈빛을 보내줘. 그 와중 내게 쥐어준 거스름돈 겨우 오백원짜리. 분명 오천원을 꺼내서 건네줬는데. 오, 아줌마 왜 날 울리는 거야. 오, 아줌마 내 전재산인데. 오천원. 오천원. 오천원. 오천원. 내 오천원. 오천원. 오천원. 나의 나의 나의 오천원. 소중한 오천원…아줌마, 담뱃값은 분명히 천오백원인데. 오천원 빼기 천오백원….”

    이 노래에는 청년백수를 두고 상상할 수 있는 구질구질한 상황들이 모두 묘사 돼 있습니다. 전재산 5000원을 들고 동네 구멍가게에 담배 한 갑을 사러 간 상황도 그렇거니와, 마침 TV에 나온 예쁜 여자에게 한눈을 팔다가 그만 거스름돈을 잘못 받게 된 상황은 더욱 그러합니다. 남자는 끊임없이 ‘내 돈 5000원’을 되뇝니다. 신세대는 이런 백수의 처참한 모습에 연민의 정과 동병상련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러면서 역시 미래가 어둡기만 한 자기 자신을 자조하거나 위로하죠.

    한편 최근 역대 최다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영화 ‘왕의 남자’가 촉발한 동성애 코드를 가져다 쓰는 발빠른 움직임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층 사이에 동성애는 성적 소수자가 가진 일종의 ‘취향’이라기보다는, 뭔가 멋져 보이고 ‘쿨’해 보이는 트렌드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죠.

    신인 여자가수 반디가 올해 초 발표한 ‘여자를 사랑합니다’는 제목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조차 한 여성을 바라보는 다른 여성의 눈길을 담고 있어 동성애를 연상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를 어루만지면서 감싸안는 또 다른 여자의 모습은 묘한 상상을 하도록 만들죠. 결국 이 노래는 한 케이블 음악채널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대와 있을 땐 거르던 아침도 잘 챙겨내고 있어요. 그대가 없이도 혼자서 모든 걸 다 참아내고 있어요. 사랑했었던 그대의 여자. 이젠 그댈 대신해 내가 사랑해 주라고, 그대 마지막 약속을 위해 나란 여자를 사랑합니다.”

    동성애적인 분위기에 대해 가수측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합니다. “여자를 사랑한다는 건, 남자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남겨진 자아를 사랑한다는 의미다. 동성애가 아니다”라고 해명하죠. 하지만 “동성애 코드에 편승해서 뜨기 위한 홍보 수단”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저주의 ‘똥침’을 날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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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싸이(PSY)의 2집 앨범은 ‘살벌한’ 랩 가사 유행의 신호탄이다. 어른들의 세태를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그의 노래를 통해 신세대는 일종의 배설 욕구를 해소하는 모양이다.

    지금부터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랩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주로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방송에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들의 노래예요. 일부 신세대들이 인터넷을 통해 음원파일을 주고받으면서 ‘세포증식’을 거듭하고 있죠.

    ‘라다’라는 힙합 그룹의 노래 중 ‘섹시 베이비 스토리(Sexy Baby Story)’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너무나 재미난 가사’라며 인기를 얻고 있는 랩 음악인데 실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어. 내게 사과할 필요도 없어. 언제까지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되는 거니? 네가 초등학교 동창이랑 잤다는 거 때문에 내가 헤어지려고 이러는 건 아니라니까 그러네…니네 회사 4공주파 그렇게 잘 논다고? 모범 유부남 최 대리 누구랑 먼저 자는지, 넷이 돈 모아서 100만원 내기했다며? 네가 1등 했다며? 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야. 아무리 키가 170이라도 처음보다 10kg가 불어. 지금의 넌 사실 다른 사람 같아. 체중조절은 자기관리야…하나밖에 없는 동생 군대 면회 다녀온다고 너 지방 갔다 온다던 그 다음날 말이야. 전화 꺼져 있길래 저녁 때 집으로 전화했더니 네 동생이 받더라. ‘에? 저 공익(근무요원)인데요.’ 내 생일날 내 친구들 네 친구들 다 모여서 밤새 술 진탕 마시고 놀던 그날 밤 기억나? 너 집에 다녀온다더니 몸에서 비누냄새 나더라…지금도 우리 왼쪽 테이블 혼자 있는 놈이 아까부터 네 다리만 쳐다보고 있잖아.”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자리에서 남자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랩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여자친구의 난잡한 섹스행각을 비난하면서도 “내가 그것 때문에 헤어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며 ‘쿨’한 체하고 있죠. 여자친구가 직장동료들과 함께 ‘유부남 최 대리와 누가 먼저 잠자리를 하나’를 두고 100만원 내기를 벌여 결국 ‘1등’을 차지했다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남동생 군대 면회 간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남동생이 공익근무요원이었다”며 여자친구의 거짓말까지 조목조목 비난하고 있죠. 그러면서도 “내가 헤어지려고 하는 이유는 (너의 복잡한 성관계 때문이 아니라) 네가 살이 너무 쪄버렸기 때문”이라는 기상천외(?)한 까닭을 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신세대식 조롱과 비웃음이라고 할 수 있죠.

    욕설과 비난의 무차별 폭격

    사실 이런 무지막지하고 살벌한 랩 가사가 나오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싸이(PSY)의 2집 앨범입니다. 이 앨범엔 “나 완전히 새됐어!”라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 ‘새’가 들어있죠. 싸이가 2001년 대마초 흡입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직후 내놓은 2집 앨범은 ‘성인용’이라는 앨범 타이틀이 말해주듯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가사들로 가득합니다. 결국 등급위원회로부터 ‘연소자 구매 불가’ 판정을 받았죠. 이중 ‘해지면’이라는 랩의 가사를 보겠습니다.

    “멀쩡하게 생긴 년들이 사상이 드러워. 돈 많은 새끼 몇몇 엮어 큰돈 한번 벌어보려 돈 몇 푼에 온몸을 걸어. 오빠 오빠 꺅꺅거리며 다리 쫙쫙 벌려. 하루종일 디비져 자다가 사우나 가서 숙취 풀고 온몸을 닦아 미장원 가서 머리하고 가게로 나가 술 먹고 노래하고 끼 부리다가…이런 어린놈의 새끼들이 이런 좆만한 새끼들이 돈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가르치디 니네 애비들이. 하룻밤 술값으로 몇백 몇천 만원, 하룻밤 XX값으로 몇십 몇백 만원…젖 만지고 혀도 말고 부르스도 추고….”

    사실 룸살롱에서 돈을 벌려고 하는 젊은 여성들과, 룸살롱에서 헤프게 돈을 써대는 젊은 남자들을 비판하는 ‘정의로운’ 내용입니다. 다만 이를 비난하는 표현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죠. 음반 구매 타깃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타깃 마케팅과 콘서트 위주의 활동으로 ‘방송출연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최근엔 ‘아예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서 ‘살벌한’ 가사를 담는 음반 기획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싸이의 같은 앨범에 담긴 ‘처녀 논쟁’은 한술 더 뜹니다. 처녀성을 지켜야 한다는 여자에 대해 남자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는 내용입니다.

    “난 결혼 전엔 지킬 거야. 다 됐어. 나 처녀란 말이야. 어후 짜증나. 왜 이제 이야기 해…그래 너 처녀냐? 비켜 난 처녀 같은 거 안 먹어…처녀만의 시대는 끝났다…처녀는 몸이 아니라 정신. 못 생기고 처녀라 자랑하는 건 병신. 돈을 위한 섹스, 맘이 담긴 섹스, 땀 빼려는 섹스, 모두 숭고한 스포츠…내 생각엔 순결은 순전히 다 뻥.”

    이 노래에는 남녀의 음부를 일컫는 직선적인 단어는 물론, ‘삐치기’ ‘앞치기’ ‘옆치기’ 운운해 가면서 각종 체위를 나타내는 말까지 등장하는데, 차마 구체적으로 옮기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일부 신세대는 이런 욕설과 비난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가사를 반복해 듣고 부르면서 일종의 배설 욕구를 해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덕과 규율에 억눌려 산다는 피해의식이 큰 젊은이들은 이런 극단적인 가사를 통해 탈출구를 찾으려 하는 거죠. ‘모든 섹스는 스포츠’라는 도발적인 주장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구시대 유물 된 음반사전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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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리(왼쪽) 역시 신곡에서 자극적인 표현들로 여성 주도의 애정행위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렇듯 노랫말이 파격적 내용으로 치닫는 것은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사태 이후 음반사전심의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기막힌’ 노래들이 등장한 연원을 찾아 올라가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습니다. 원래 국내에서 발매된 모든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게 되어 있었죠. 그런데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음반에 수록될 예정이던 ‘시대유감’의 가사내용을 놓고 공연윤리위원회측과 서태지측이 맞서면서 사전 심의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노랫말 중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와 같은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인데다 부정적이고 현실 전복적이라는 이유로 심의불가판정을 내리고 수정을 요구했어요. 이에 서태지측은 가사를 아예 삭제하고 연주곡만 수록된 음반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강력히 반발했고, 여론은 서태지를 지지했죠.

    ‘시대유감’ 사태를 기점으로 음반사전심의를 폐지하자는 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1996년 헌법재판소는 음반에 관한 사전심의에 대해 위헌(違憲) 결정을 내리면서 음반사전심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은 음반이라도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만사가 그렇듯이 ‘표현의 자유’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현재는 제작된 음반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사후에 ‘등급 심의’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최근 신세대 사이에 알음알음으로 퍼지면서 인기를 얻고 있는 ‘신(新) 처용가’도 만약 사전심의가 존속했더라면 결코 빛을 볼 수 없었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G-마스타’라는 언더그라운드 힙합가수가 노래한 ‘신 처용가’는 신라시대 향가 ‘처용가’의 내용과 흡사한 상황을 맞은 한 남자의 이야기죠. 우연히 여자친구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남자가 느끼는 배신감을 저주의 욕설로 환치시켜 여자친구에게 내뱉는 내용입니다. 마치 실제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독백하듯 너무도 구체적인 상황과 설정이 등장하죠. 자,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이 좆 같은 세상에서 진실된 사랑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나이트에서 처음 만나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갔다고 믿었던 나. 그래, 사건 당일도 꺼져있던 너의 전화기. 하지만 별 의심 없이 논현동에 혼자 자취하던 너의 집으로 미리 준비했던 꽃다발 등 뒤로 감추고 계단 올라갔는데.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X소리. 문을 열고 들어갔어. 침대 위에서 좆만한 새끼랑 옷 벗고 레슬링하는 여자친구를 봤어. 빳데루 자세로…. 좆도 씨발 벙깠어. 소리치자 아직도 사태 파악 못 하고 천장을 뚫을 듯한 고개를 쳐든 바나나 밑에 달린 메추리알 터뜨려놓고, 나는 집으로….”

    어떻습니까. 세상이 망해가는 위험한 징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젊음의 치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지각색의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하십니까. 여하튼, 자식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건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하도 ‘X’같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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