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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축구는 죄가 없다

  • 일러스트·박진영

축구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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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죄가 없다
나는 주옥 같은 블랙 유머로 가득한 송능한 감독의 영화 ‘넘버3’를 좋아한다. 영화와 비디오테이프로 두 번씩 봤지만 잊을 만하면 영화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틀어주니 심드렁한 일상의 깊은 밤에 나는 몇 번이고 넘버3의 ‘명대사’를 탐닉하곤 했다.

이 참에 생각해보라. 최민식, 한석규, 송강호, 이 세 배우가 동시에 출연하는 영화를 만나기가 쉬운가. 안석환, 박광정, 박상민에 더해 이미연까지 열연했으니 한국 영화 신(新)르네상스의 초기 라인업이라지만 이만한 구색을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 영화의 백미는 많은 주인공이 아니라 절묘하고 유익한 대사들이다.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송강호, 밑천 없이 노회한 안석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인 박광정이 장면마다 기록에 남을 만한 명대사를 날린다. 이 영화는 탁월한 감각의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에서 이름을 날린 송능한 감독이 브라질의 축구스타 호나우딩요처럼 신묘한 드리블을 보여준 한판의 축구였다고 할 수 있다.

아, 축구. 그렇다. 이 귀한 지면의 앞 말이 길었다. 정색하여 다시 말하건대, 나는 얼마 전 ‘넘버3’를 심야의 어두운 소파에 앉아 또 보았던 것이다. 역시 최민식! 이 영화에서 깡패보다 더 폭력적이고 직선적인 다혈질 검사 마동팔로 등장하는 최민식은 “너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는 통렬한 가르침을 내릴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기억에 남을 만한 대사를 풀어냈으니, 거친 표현이 있지만 인용해보기로 한다.

“내가 제일 좆 같아하는 말이 뭔 줄 아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 정말 좆 같은 말장난이지. 솔직히, 죄가 무슨 죄 있어? 죄를 저지르는 좆 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

월드컵의 시즌이다. 4년마다 돌아온다. 2002년의 4강(强)에 오른 체험 때문에 월드컵은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다. 16강 진출이 관건이지만 그 문턱만 넘으면 혹시 8강을 넘어 4강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월드컵이니 가능한 상상이다. 조별 리그를 통과하면 경기는 단판 승부의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병참기지의 포화를 모두 동원하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축구 때문에, 정확하게는 월드컵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서울시가 시청 앞 광장을 입도선매하는가 하면 대기업과 방송사들이 앞 다퉈 광장을 선점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그뿐인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월드컵 마케팅은 오로지 ‘애국심 마케팅’으로 흐르니 막상 애국을 하려다가도 애국심 타령에 괜히 짜증마저 생길 판이다. 특정 국가의 애국심에 호소할 이유가 없는 다국적기업이 세계를 대상으로 세련된 광고를 내보낼 때 한국의 기업은 ‘대∼한민국’에 ‘하나 되는 한국인’으로 재탕을 하니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처럼 어수선한 판이 벌어지자 일부는 축구와 월드컵이 과열 현상을 낳은 장본인이며, 결국 스포츠는 대중의 심리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역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오랜 견해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이른바 ‘3S 정책’ 말이다. 섹스, 스크린, 스포츠. 이 세 가지 문화는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희석시키고 그릇된 사회상을 갖게 만들어 결국 지배 세력의 심리적 조종 장치가 되고 마는 것이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 액면 그대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은 문제가 된 사회의 상태를 섬세하게 판별해 조심스럽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요컨대 나는 ‘넘버3’의 최민식이 “죄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말한 것처럼 “축구가 왜 죄가 있나, 그것을 악용한 사람이 나쁜 놈이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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