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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

‘흑산도 유배자’ 혼 담긴 탐구일지, 200년 만에 빛 보나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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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강점기 때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자산어보(玆山魚譜)’ 진본이 현존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학계와 고문서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일지로, 일찍이 작가 이병주가 ‘민족의 교재(敎材)’라 극찬했던 책, 자산어보. 일제 강점기 국문학계의 거두 김태준으로부터 근대 우정사(郵政史)의 대부 진기홍으로 이어지는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
‘1814년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1760~1816)이 지은 책. 손암이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전라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하고 채집한 기록으로,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각 종류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필사본. 3권1책.’

두 줄만 읽어도 무슨 책에 대한 설명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백과사전에 실린 ‘자산어보(玆山魚譜)’ 해설은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보다는 자세하지만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다. 국사 교과서에 나온 자산어보에 대한 설명은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 간 후 지은 책’이 고작.

자산어보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며 아이들에게까지 회자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80년대 들어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실학(實學)에 대한 연구가 봇물을 이루면서, 그의 중형(仲兄)인 정약전의 순탄치 못한 삶도 조명받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 자산어보 번역서가 꾸준히 나오고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시절을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 소설, 기행문이 쏟아지면서 자산어보는 ‘한국 최초의 어류학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최신식 어류백과사전’ ‘당대 세계 최고의 어류박물지’ 등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산어보를 쓰기 위해 정약전은 중국 문헌을 정리, 고증하는 수준에 그쳤던 당시 저술 행태를 훌쩍 뛰어넘어 흑산도 근해의 해양 동식물을 직접 보고 만졌으며, 심지어 당시에는 금기시됐던 해부도 서슴지 않았다. 50개가 넘는 청어의 척추뼈를 일일이 세어 맞춘 그의 관찰력에는 현대 생물학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진본 소장” 주장한 石山 진기홍

정약전의 이런 저술 태도는 훗날 실학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생물학도들조차 그를 추앙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실제로 자산어보를 제대로 번역하고 소개했다는 평을 듣는 연구자의 대부분은 한학자나 실학 연구자가 아니라 생물학을 전공하고 수산청에 근무했거나 생물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1943년 자산어보에 대한 최초의 번역 해설판을 완성한 어류학자 정문기(학술원 종신회원, 1995년 작고) 박사, 1998년 자산어보를 현대어로 알기 쉽게 번역한 ‘상해 자산어보’의 저자 정석조(77·정문기 박사의 아들)씨, 그리고 2002년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통해 ‘玆山魚譜’를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힌 이태원(34·세화여고 교사)씨 등이 그들이다.

자산어보 연구자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현재 남아 있는 자산어보 필사본 8개 중 어떤 것을 사료(史料)로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보듯 자산어보는 현재 진본은 없고 그것을 후대에 누군가 베껴쓴 필사본만 남아 있다는 게 정설이다. 문제는 8개 필사본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 따라서 현재로선 정약전이 쓴 원래 문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힐 길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을 찾으려는 연구자나 기관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남 바닷가 마을 오두막의 벽지로 쓰이고 말았다는 둥 근거 없는 설만 무성할 따름이다. 혹 고문서의 메카인 서울 인사동 고서점 한구석에서 진본을 찾으려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인사동에는 자산어보 진본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취재를 하던 지난 4월 중순,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산어보 진본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으며, 그는 고문서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대가라는 내용이었다. 소문으로 알려진 ‘대가’를 추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고문서를 연구하는 사람이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우정사(郵政史)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석산(石山) 진기홍(陳錤洪·91) 옹. 진옹은 어릴 적 우표수집에 열광했던 30∼40대라면 그 이름 석자를 모를 리 없는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전주우편국을 시작으로 1961년 광주체신청장으로 퇴임하기까지 30여 년 동안 한말에 발행된 우표와 서류, 책자를 모으면서 체신문화재를 보존하고 고증하는 데 한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각종 문헌과 고증을 바탕으로 일제가 만든 ‘체신의 날’(현 ‘정보통신의 날’)을 한국 최초의 우편 행정관서인 우정총국 개국(1884년, 고종 21년) 날짜(4월22일)로 바꿨으며, 동대문 보수자료로 쓰기 위해 헐릴 예정이던 구한말 우정총국 건물을 해체 직전 살려내 체신박물관으로 만들었다. 2004년 정보통신부가 간행한 ‘우정 100년사(史)’를 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퇴직 이후 여러 신문에 우표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부터. 각종 진귀한 우표 전시회를 열어 우표 수집가와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도 했다. 진옹은 지난해 1884년 우정총국 개국의 근거서류인 ‘대조선국 우정규칙’ 등 172점의 사료와 진귀한 우표들을 체신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런 진옹이 자산어보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것은 그가 고문서 감정계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15세기 국어와 한글필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월인천강지곡(보물 398호)’을 1961년 전남 담양의 한 사찰에서 발굴한 바 있고,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용주사에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발견하고,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화폭에 옮긴 용주사 ‘미래불(未來佛)’이 단원 김홍도의 작품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70대 이상의 고문서 연구자들은 대부분 진옹에게 필적 감정을 맡길 정도이며, 그가 ‘맞다’고 말하면 그것이 곧 ‘법(法)’이 되는 실정이다. 지금껏 그가 감정한 작품 중 후일 감정결과가 뒤집어진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진옹이 소장한 자산어보가 진본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대목이다.

당대 국내 어류학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자산어보를 처음으로 번역한 정문기 박사는 생전에 8개 필사본을 모두 비교해본 뒤 진옹 소장본이 “8개 필사본 중 내용이 가장 충실하며 책의 체제나 입수 경위로 보아 저자 정약전의 자필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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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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